아침이슬 / 김귀선
산골 농막에서 맞은 아침이었어요. 농막 주위와 길옆에 풀잎이 휘어지도록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지요. 농막 뒤편 감나무와 대추나무에서도 ‘툭 툭’ 물이 떨어지고 있더군요. 며칠간 구름 낀 날씨라 혹여 비가 왔나 했는데 이슬이었어요. 도대체 저 많은 물기가 밤새 어떻게 생겨났나 싶더군요. 떨어질 듯 말 듯 애처롭게 매달린 모습이 그렁그렁한 눈물 같았어요. 문득 어젯밤 일이 떠오르더군요.
지난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어요. 다섯 여자의 왁자했던 시간을 윗목에 밀쳐놓고 편할 대로 누워 잠을 청할 때였지요.
우후움~~무어~~~~~~우후움~~무어~~~~~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음향은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듯 퍼석했어요. 잠깐 헛소리를 들었나 했을 때 또다시 느릿한 쉰 울음이 들려왔어요. 왜 갑자기 소가 울까? 몸이 아픈 건가? 짐작해 보니 이제껏 소가 울고 있었으나 떠들고 노느라 우리가 듣지 못했던 것이었어요. ‘소가 왜 울지?’ 나의 혼잣말에 친구들도 웅성웅성하더군요. 그 울음소리에 다들 쉬이 잠들지 못했나 봐요. 며칠 전 새끼가 팔려간 건넛마을의 암소라고 하더군요. 피를 토하듯 울어대던 처음에 비하면 애끓는 정도가 많이 사그라진 거라고 농막 주인이 말했어요.
그랬구나!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넋 나간 어미 소의 모습이 상상되더군요. 말라버린 눈물샘에 눈물 고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이제는 들리지 않나 하면 또 그 소리가 건너왔어요.
우후움~~머어~~~~~~우후움~~머어~~~~~
느릿느릿한 저음은 구슬프게 흘러왔다가 축축하게 사라져갔어요. 밤은 깊었으나 잠은 오지 않고 소의 울음만이 방안을 채우고 있었어요. 쓸쓸함에 푹 젖은 내게 어렴풋이 그 옛날 친정 아랫집의 정지 바람벽에서 흘러나오던 서러움이 다시 들려왔어요.
주운~아~~꺽꺽~~주운~아~~꺼억꺽~꺽~
밤마다 아랫집 아줌마가 부르던 그 이름은 맏아들 병준이 오빠였지요.
초가삼간인 아랫집은 가난했지만, 든든한 맏아들이 있어 남부럽지 않았죠. 준이 오빠는 동생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며 자신은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어요. 저녁답이면 그는 바소쿠리 가득 지고 온 소꼴을 좁은 마당에 부려 놓고, 축담 옆의 소죽 솥 아궁이에 불을 넣었어요. 수수 빗자루를 깔고 앉은 채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지요. 겨울이면 동생들 썰매를 만들어주느라 철사와 나무토막을 마당에 널어놓고 몇 날 며칠을 뚱땅거리기도 했어요. 농사일은 물론이고 무엇이든 말없이 척척해내는 맏아들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해 여름날이었지요. 준이 오빠의 쪽방에서 낮에도 계속 라디오 소리가 들리더군요. 댓돌 위엔 준이오빠의 검정 고무신도 나란히 놓여 있었고요. 준이 오빠가 왜 방에만 있는지, 이제껏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 아랫집을 내려다볼 때마다 나는 궁금했어요.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난날이었어요. 웅성거리는 소리에 마당을 나와 보니 ‘아이구 뜨거워라. 몸이 불떵어리대이.’라며 옻밭골 봉식이 아재가 준이 오빠를 들쳐 업고 사립문을 막 나왔어요. 이불 보따리를 안은 아줌마가 흙 묻은 몸뻬 차림으로 뒤따랐어요. “주~운아~ 주~운아!” 아줌마가 애탄 목소리로 아들을 부르자 그는 ‘으으 으으’ 소리만 낼 뿐이었어요. 봉식이 아재의 잰걸음에 그의 축 늘어진 팔다리가 힘없이 흔들거렸어요. 삼거리에 대기했던 노란 택시가 된소리를 내며 빠져나갔고,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흩어지며 제 집으로 돌아갔지요.
그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어요. 이름도 생소한 뇌수막염이라 하더군요. 감기인 줄 여겼던 그의 부모는 며칠만 쉬면 낫겠지 했던 것이었어요. 병원만 가면 훌훌 털고 일어날 줄 알았던 열여섯의 준이 오빠는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혔고, 부모는 겉옷처럼 걸치고 다녔던 그의 지게를 산소 옆에 놓아 주었어요.
그날부터 밤마다 들려오던 아랫집 아줌마의 울음,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할 즈음이면 끈끈하고도 슬픈 울음이 들려왔어요. 아무리 누르고 눌러도 목젖을 밀고 올라오는 억울함이었어요. 서러운 그 소리는 제 어린 가슴을 아릿하게 파고들었어요. 일만 오지게 시켰다고, 제대로 입히지도 배불리 먹이지도 못했다고, 약 한 첩 못 써본 채 허무하게 보냈다고, 그것이 분하고 원통하다고 했지요. 밤마다 들리던 울음은 일 년 정도 지나자 좀 숙지막하더니 명절 때만 한 번씩 들리곤 했지요.
‘에구! 그 원통함을 우째 잊겠노. 낮에는 허부고 뜯고 일한다꼬 잊었다가 조용한 밤만 되면 뭐가 꽉 채 올라오는 기 그때는 실컷 눈물을 쏟아뿌래야 답답하던 쐑이 말개진다 카이.’
삼십 년이 지났을 즈음, 아랫집 아줌마는 맏아들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어요. 그 비통함이 어찌 말끔하게 사라질 수 있었을까요. 애써 잊은 척했지만, 그리움은 세포 줄기마다 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듯 그날 밤은 어릴 적 동네에서 보았던 슬픈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랐어요. 인물 좋은 맏아들을 바닷물에 잃고는 실성해 머리 풀고 동네를 돌아다니던 두산댁, 뒷산 애장밭에 애를 셋이나 묻어야 했던 암곡댁 며느리, 열 살에 죽은 식이, 처녀 적 죽은 남이가 아련하게 생각났어요. 가슴속에 묻어야 했던 그 어미들의 한과 눈물에 코끝이 매워지더군요.
친구의 농막에서 머물던 그 시간은 달빛도 없는 밤이었어요. 창문의 위치만 희미하게 감지될 정도로 방안은 깜깜했어요.
우후움~~머어~~~꺼억~꺽 주~운아~~우후움~~머어~~~꺼억~꺽 주~운아~~~~
어둠이 짙게 고인 밤, 도랑의 물도 풀숲의 벌레도 숨죽인 듯 들리지 않았지요. 낮게 아주 낮게 어미들의 울음만 밤새 흐르고 있었어요.
“아이구! 이슬 흥건한 거 보이 오늘은 구름 한 점 없겠대이.”
마당을 나온 친구가 한 마디 하더군요.
그날은 오랜만에 저 멀리 산봉우리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디맑고도 투명한 날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