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노래 / 박월수
유월 아침은 안보다 밖이 끌린다. 초여름 마당의 안부가 궁금한 탓이다. 울타리에 흐드러진 인동꽃이 옆집 아주머니처럼 다정하다. 인사를 건네듯 밤새 품었던 향을 아낌없이 펼쳐 놓는다. 꽃 이름에 걸맞은 깊고 진한 향이다. 코로만 맡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매혹적인 꽃술을 탐하고 싶어진다. 꽃차를 마시려면 손이 많이 가야 하는데 마음은 벌써 차를 우린다. 찻잔 속에서 피어나는 꽃을 떠올리며 한껏 향을 머금는다. 감미로운 꽃 향은 음미할수록 배가 고프다. 인동이 덩굴째 식혜 속으로 들어간 까닭 중엔 묵은 향기의 기억으로 허기를 달래고 싶은 맘도 있었을 게다.
마당엔 꽃 향을 좋아하는 개가 산다. 이름하여 낭만 개다. 툭하면 꽃 덤불에 코를 처박는다. 신이 나면 꽃가루를 얼굴 가득 묻힌 채 온 마당을 뛰어다닌다.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었던 오월엔 가시 많은 찔레 덤불에 코를 처박는다. 신이 나면 꽃가루를 얼굴 가득 묻힌 채 온 마당을 뛰어다닌다.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웠던 오월엔 진자리에 인동덩굴이 올라타 꽃을 피우니 저도 덩달아 이마를 높이 치켜들고 꽃 냄새를 맡는다. 향기만 먹고도 배가 부른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뜀박질을 한다. 마당 귀퉁이에 핀 초롱꽃이 개의 통통한 엉덩이에 부딪혀 화들짝 놀란다. 초롱꽃 속에 들었던 벌이 기겁을 하고 달아난다. 무겁도록 매달린 커다란 꽃무더기 한참 흔들린다. 접촉 사고를 일으킨 녀석은 아는지 모르는지 향이 연한 꽃에는 관심이 없다. 또 다른 꽃 냄새를 찾아 탐닉하느라 바쁘다.
쥐똥나무도 지나는 바람을 꼬드겨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옅은 분향이 옆구리를 잡아끈다. 떨어질 준비를 하느라 노란빛이 더 많은 인동을 뒤로하고 슬그머니 쥐똥나무 곁에 섰다. 쥐똥만 한 열매보다는 발길이 붙드는 향 때문에 눈길 머무는 나무다. 자잘하고 순박한 흰 꽃에서 내뿜는 향이 그윽하다. 사과꽃 알갱이를 솎아 줄 때면 과수원 뒷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친근한 분향이 스며들곤 했다. 좀체 끝날 것 같지 않은 일에 지쳐갈 즈음 뜻밖의 선물마냥 풍겨오는 쥐똥나무꽃 향은 상큼한 위로였다. 향기로 인해 떠오르는 풍경은 늘 아름답다.
꽃향기만으로 배를 채우기엔 무리인가 보다. 낭만 개가 뛰노는 모양이 영 시들하다. 창고에서 녀석 밥을 한 바가지 퍼내어 준다. 있는 대로 흔들리는 짧은 꼬리에 말보다 더한 감사와 기쁨이 묻어있다. 흐뭇하게 돌아서는데 울타리 너머 뻐꾸기 소리 요란하다. "홀 딱 벗 고, 홀 딱 벗 고" 하며 우는 걸 보니 검은등뻐꾸기다.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는 네 음절의 새소리가 음흉하기보다 경쾌하다. 어찌보면 경상도 남자를 닮았다. 처음 본 여자를 "됐나" 한 마디로 엮어 뽕밭까지 직행한 이도 더러 있다니 경상도 남자들의 언어 방식은 검은등뻐꾸기 울음보다 통쾌하고 거침없다. 실없이 웃다가 중성화 한 낭만 개를 내려다보니 처량하고 미안하다. 함께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자위한다.
챙겨야 할 식구가 또 있다. 음식 찌꺼기와 사료를 넘치도록 담아 멀리 떨어진 닭장으로 간다. 길 양쪽에 개망초꽃이 눈부시다. 망초향은 수줍고 은밀해서 그 향을 모르는 이도 많다. 망초 꽃밭을 지나다 보면 아는 길도 잃을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향이다. 혹할 것 같은 꽃 향을 맡으며 닭장으로 가는 길엔 어떤 낙원도 부럽지 않다. 주인의 발소리를 눈치챘는지 닭들이 활개를 치며 운다. 맛있는 먹이를 내어주고 저희들이 낳아놓은 건강한 알을 가져가라는 소리다. 시골살이의 좋은 점이 말하지 않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일상이 느긋하고 향기롭다.
닭장에서 꺼낸 알을 물가에 앉아 씻는다. 알 하나를 톡톡 깨트려 그대로 삼킨다. 날것에서 나는 비린 맛이 없어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다. 차지고 고소하다. 음식 찌꺼기까지 살뜰히 챙기며 닭을 키우는 보람 같은 게 느껴진다. 분명 비리지 않은 알을 먹었는데 비린 향이 날아든다. 계곡 너머 만개한 밤꽃이 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저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나 보다. 벌레를 닮은 징그러운 꽃이 나무를 하얗게 뒤덮었다. 첫 수꽃 지고 나면 늦게 피는 암꽃이 더 진한 향을 뿜을 것이다. 아무리 예쁘게 보려 해도 생김새와 향기 탓에 대접받기 힘든 꽃이다. 그럼에도 꽃이란 이름을 지녔으니 밉지 않은 구석이 하나쯤은 있을 터이다. 밤꽃은 밤에 보아야 빛나는 꽃이다. 세상 모든 꽃이 어둠에 갇혀버린 깜깜한 밤에 저 혼자 잔칫집처럼 불을 환히 밝힌다. 밤꽃이란 이름을 얻게 된 이유를 나는 밤꽃 핀 밤에 짐작하게 되었다.
유월은 향기로운 계절이다. 유월의 들꽃이 내뿜는 향기는 연인의 손길보다 달콤하다. 오래 음미할수록 깊은 정이 들고 한번 각인된 냄새는 몸에 밴다. 유월은 꽃을 보며 향기로 기억되는 사람을 떠올리기에 좋은 계절이다. 유얼이 다 가도록 떠올릴 이름이 있다는 건 아직 그리움이 남았다는 말이다. 그립다는 건 아직 내게 남은 향기가 있다는 뜻이다.
인동꽃 덩굴 위로 다투어 피려고 준비하는 칡넝쿨이 보인다. 칡꽃 향기 흐드러지면 이미 칠월이다. 칠월에는 향이 다른 바람이 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