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수선 / 심선경
시장 골목 귀퉁이에 서서 유리문 안쪽을 훔쳐본다. 불은 켜졌는데, 작업대에 가게 주인은 없고 객들만 너덧 명, 마치 고요한 정물화처럼 앉아 있다.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의 찻잔처럼, 따스한 빛을 머금고 서로를 비추며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시간 속에 녹아든 그림처럼 부드럽게 어우러져 있다.
“화장실 갔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먼저 온 손님들은 혹여 내가 그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지 못할까 봐 물어보지도 않은 질문에 친절한 답변을 한다. 비어 있는 둥근 의자에 나도 세상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 앉아 본다. 객들은 그곳에 오래 있을 생각인가 보다. 누군가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고, 또 누군가는 수선이 끝난 듯한 옷을 낡은 다리미로 눌러 모양을 잡기도 한다.
이 수선집 남자를 사람들은 주氏라고 부른다. 그는 한때 시내 이름난 양복점의 재단사였다고 한다. 맞춤양복이 기성복에 자리를 내어주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곁을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가위와 바늘을 놓지 않았다. 제법 유명세를 떨쳤다던 주氏가 어쩌다가 이 재래시장 한 모퉁이까지 흘러와 낡은 재봉틀 몇 대를 놓고 옷 수선이나 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들 인생에 우여곡절이 없으며, 파란만장한 삶의 고비가 매번 비껴가기만 했을까. 손님 중의 한 사람은, 주氏가 이제껏 벌어놓은 돈을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몽땅 잃었다고 넌지시 말해주었다. 구태여 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얼굴과 이마의 깊은 주름살은 수선집 남자의 과거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내가 이 낯선 도시로 이사 와서 몇 안 되는 단골 음식점을 돌며, 솜씨 좋은 옷 수선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모두가 한결같이 이 집을 추천했다. 첫 방문때, 뽀글뽀글한 파마머리가 잘 어울리는 수선집 주氏의 나이는 60대 후반으로 보였고, 바싹 야윈 체구지만 눈빛엔 총기가 가득했다. 하루에도 쉰 명이 넘게 밀려드는 주문에 수선품 목록과 의뢰인 이름을 기록하는 것도 아닌데, 맡겨놓은 옷을 찾으러 오는 손님의 얼굴만 보면, 정확히 의뢰자의 물품을 찾아 건네주는 그가 마냥 신기했다.
주氏가 종종걸음으로 가게에 들어섰을 때, 이미 얼굴을 익힌 나와 그는 서로 가벼운 눈인사를 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50대 중반의 여자가 커다란 종이가방에서 폭 넓은 흰 천을 꺼내 작업대로 갔다. 커튼을 만들어 딸아이의 창문에 달아 줄 것이라 했다. 그는 너비와 길이를 재차 확인하고는 가위로 천을 쭉 가르고 나서 재봉틀 바늘판의 노루발 밑에 슬쩍 집어넣더니 일사천리로 박음질을 끝냈다. 거기다가 흰 천에 작은 나비와 꽃 모양의 무늬를 새겨 넣어 자칫 밋밋했을 뻔한 커튼을 멋진 장식품으로 변신시켰다. 그런데 이 작업을 완성하는데 고작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사천 원만 달라는 주인의 손에 수선 값을 더하여 칠천 원을 쥐어 주며 달아나고, 주인은 더 받은 삼천 원을 들고 손님을 쫓아간다. 자기 것을 챙기기에 급급한 세상인데, 이곳에 오면 내가 살면서 쌓아온 모든 상식이 일순간 무너진다.
손주의 애착 인형을 강아지가 물어뜯어 못쓰게 되었다며, 내 옆자리의 할머니가 그것을 원래대로 복구해 달라고 했다. 너무 새것처럼 보이면 아이가 낯설어하니 어떤 부분에는 일부러 낡은 천을 덧댈 수도 있다며 할머니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그에게 신뢰감이 두터워졌다. 주氏는 다양한 방식으로 천 조각을 맞대어 보고 인형의 몸통을 여러 번 감싸 보기도 하더니 결국은 의뢰자인 할머니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 기립박수까지 받아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그의 손끝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하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수시로 들었다 놨다 한다.
누구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 나도 아껴온 니트가 있었는데 너무 자주 입다보니 한쪽 팔꿈치에 구멍이 났다. 낡은 니트지만 그것을 되살리려는 내 마음을 주氏는 깊이 공감하는 듯했다. 니트의 올 하나, 결 하나도 다치지 않게 매우 신중한 손놀림으로 재봉틀의 바늘을 움직였다. 팔꿈치 한쪽이 헤졌지만, 두 군데 모두 조각천을 덧대어 박음질한 니트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옷으로 다시 태어났다. 완성된 옷을 앞뒤로 살피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내게, 고친 옷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는 주氏가 잠시 내 눈에는 신비한 마법사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는 바쁜 중에도 수선한 옷을 반드시 다림질해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과거 양복점에서 일했던 습관이 몸에 배어 그런지 그것만은 꼭 지켜야 하는 자신만의 철칙이 있었다.
수십 개의 수선집 중에서도 유독 이 가게에만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작품들은 단순한 수선을 넘어, 시간을 초월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주氏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바늘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고, 그 소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듯했다.
항상 수선집 사장의 건강을 염려하는 단골손님들은, 일에 빠져 밥때를 놓친 그를 위해 요기가 될만한 간식을 사 오고, 영양제 같은 약을 챙겨 오기도 한다. 주氏가 없는 이곳을 상상조차 하기 싫어, 나도 가끔 박카스 같은 피로회복제를 사다가 가게 냉장고에 넣어두곤 한다. 그는 강하게 손사래를 치며 “그냥 오지 않고 왜 이런 것들을 사 들고 오냐?”며 타박을 놓지만 내심 흐뭇해하는 눈치다.
주氏의 가게는 그저 그런, 옷만을 수선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삶의 무거움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손님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 주氏의 선한 마음은 바늘 끝에서 피어나는 실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이 수선집은 마치 시간의 교차로 같다.
주氏의 작업대는 그의 삶의 축소판이다. 그곳에서 이 남자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쏟아내고, 삶의 희로애락을 엮어낸다. 낡은 재봉틀은 단지 하나의 기계가 아니라, 그의 마음과 영혼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주氏는 그 그릇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의 작업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신명 나게 벌이는 한 판 춤이다. 천을 재단하고, 바느질을 하며 그 속에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는다. 낡은 재봉틀은 사람들의 사연들을 찬찬히 읽어가며 지난 시간에 걸쳤던 헤진 기억들을 다시 이어준다. 언젠가 그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잊혀질지 모른다. 그러나 달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주氏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진정한 예술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담아내는 것이며, 낡은 재봉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였다는 것을. 그가 만든 옷들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들이었다. 야무진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나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고, 나 역시 내 삶의 조각들을 어떻게 꿰매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시장 수선집 주氏의 재봉틀 소리는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그 진동은 영원히 내 영혼을 울리며, 나를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