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발자국으로 / 손광성
장마가 그친 뒤 강으로 나갔다. 담요 서너 장 넓이 모래톱, 참 편안했다. 그 위에 새 발자국이 연속무늬로 나 있었다. 도요새였을까. 아니면 관이 멋진 댕기물떼새였을까. 얼마나 머물다 날아간 것일까. 한 번쯤 뒤돌아보기도 했을까. 모래톱 중간지점에서 새의 발자국은 끝이 나 있었다. 눈물 흔적 같은 건 없었다.
언제나 호의적이던 건 아니라 해도 두서너 블록 걷다 보면 낯익은 사람 하나쯤 만나기도 하고, 식어가는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봄비 내리듯 정담을 나누던 살가운 사람들이 사는 거리. 어쩌다 목이 컬컬해서 밀고 들어간 주점에는 환하게 나를 반겨주던 주모도 더러는 있었는데.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던 해 섣달그믐이던가? 시나브로 소진된 젊음이 아쉬워서, 아니, 살아온 날들이 그러했듯이 살아갈 날들도 별로 달지 않을 것 같아서, 친구들을 불러 술판을 벌였다. 명동에서 시작한 것이 무교동을 거쳐 신촌에서 끝났다. 30 백열등 포장마차에서 마지막 잔을 털어 넣고서였다.
가끔 어깨동무도 하고 가끔 비틀거리기도 했으리라. 살아낸 지난 세월 자주 흔들렸던 것처럼. 그러니까 50년 전, 그때는 다섯이 함께였는데 지금 내 곁에 남은 건 등이 굽은 나의 그림자뿐이다. 하나는 치매로 요양원에 보내지고, 하나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둘은 먼저 갔다. 앞서간 사람이 불러낸 것인지, 뒤미처 간 사람이 그리워 따라나선 것인지, 아무튼 그렇게들 갔다.
무대는 그대로인데 등장인물만 바뀌는, 결코 재등장은 허락되지 않는 인생극장. 그래도 우리는 땀과 눈물을 아끼지 않았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좋은 역이든 나쁜 역이든 맡겨진 배역에서 저마다 모두 주역이었으니까. 어이없는 실수에 자책하기도 하고, 공허한 박수에 우쭐대기도 하면서, 죽음은 삶의 마침표가 아니고 느낌표여야 한다고 우기면서, 때로는 새벽 빗소리에 깨어 뒤척이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 부는 벼랑 끝에 날 세워보기도 했다. 밤바다에 나를 띄워 보내고, 독경 소리를 좇아 출가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여든하고도 아홉이란 세월. 세월이 날 가르쳤다. 삶의 길은 거기 있지도 않고 저기 있지도 않고, 다만 하루하루 살아내는 여기 이곳에 있음을 말이다.
어느 날인가 나도 익숙했던 이 무대로 다시 복귀할 가망은 없지 싶은데, 다행히 허락된다면, 오늘처럼 비 그치고 볕이 고운 날을 기다려 강으로 가고 싶다. 모래톱 위에 무심히 떨어진 버들잎이어도 좋고, 한 마리의 나그네새여도 좋겠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졸다가 새의 발자국으로 떠나도 괜찮지 싶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내 발걸음이 잠시 주춤거리긴 하겠지만, 수평선 너머 구름 높이에서 한 번쯤 되돌아보면, 살아낸 날들이 한참 아득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