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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싯딤나무가 등장한다. 싯딤나무는 그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수원(水原)을 찾아 짧게는 수십 미터, 깊게는 5~600 미터까지 뿌리를 뻗는다고 한다. 기네스북에 오른 싯딤나무의 뿌리가 2㎞나 되는 것도 있다.
싯딤나무는 그 뿌리가 수원에 닿아 있기에 열사의 사막에서도, 물 없는 광야에서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막 한 복판에 우뚝 서있는 싯딤나무의 그늘은 쉼과 안식을 제공해 준다. 죽음 같은 광야에 다다른 나그네와 동물들에게 한낮의 뜨거운 태양열기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된다. 시편 63:1에는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라는 고백이 있다.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이 바로 광야이다. 이러한 땅에서,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영혼과 온몸으로 주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심정을 함축하고 있다. 다윗이 유대광야에서 쓴 글이다.
그 만큼 절실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간구하는 심령이 어떠한지를 싯딤나무를 통해 공감하게 된다. 아무리 보아도 마르고, 거칠고, 볼품이 없는 데다 가시로까지 덮인 이 나무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이유가 된다면 그것은 저 깊고 깊은 물의 근원까지 뿌리를 내려가며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음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싯딤나무는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온통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사막의 거친 모래바람에 이러 저리 뒤틀린 가지, 깊이 뿌리를 뻗기에 높이 자랄 수 없는 나무, 물이 절대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흔적들로 두텁고 거친 껍질 그리고 단단한 옹이들 때문에 평범한 목수라도 결코 선택하지 않는 나무다. 그런데 이 나무가 지성소에 들어가는 유일한 나무가 되었다. 왜 하나님은 싯딤나무의 그 조각목으로 하나님의 증거판을 담을 언약궤와 궤를 메는 채(출 25:10~13), 진설병상과 상을 메는 채(출 25:23~30), 성막(출 26:14~37), 번제단과 단을 메는 채(출 27:1~8), 분향단과 단을 메는 채(출 30:1~5)까지 여럿을 만들게 했을까? 그리고 그 위에 정금으로 입혀지는 영광을 누리게 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 다다르기 위해 뿌리를 내린 구원받은 죄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량 받은 이 죄인이 그 같은 볼품없는 싯딤나무였다는 자기 발견에 전율이 느껴지는 것이다. 본래 ‘싯딤’이라는 단어는, 히브리 원어로는 ‘시팀’이며 ‘괴롭히는 가시’라는 뜻이 있다. 또 싯딤나무는 굵지 않고, 손쉽게 다룰 수 있도록 무르지도 않고, 곧게 뻗지도 않은 비틀려진 재목이다. 한 마디로 어느 종류이건 가구를 제작하기에 적합한 나무는 아니다. 더구나 척박하게 자라난 탓에 거칠고 뒤틀린 나무가 하나님의 지성소에 쓰이는 기구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차라리 레바논의 백향목이라면 모를까. 그런데 선택 받은 한 그루의 싯딤나무가 잘려져서 장인의 손에 들려져 깎이고 다듬어져 원래의 모양에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모습대로 변화된 조각목이 된다. 바로 쓸모 없던 나무가 거룩하게 구별된 나무로 변한다. 거기에 마침내 빛을 발하는 정금이 입혀졌다. 세속적 가치관으로 볼 때는‘불합격’ ‘부적격’ ‘함량미달’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할지라도 그 위에 하나님은 정금이라는 은혜를 덮으시며, 가장 거룩한 곳 ‘지성소’에 두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신 것이다. 이름도 없는 광야 땅 한 구석에서 고독하게 뿌리를 내린 한 그루 싯딤나무 사진을 보며 바로 나, 그런 나를 사용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느낀다. 행복함과 고마움, 감사함이 그 척박한 땅 유대광야를 바라보는 내 마음을 채운다. 그러나 눈을 돌이켜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 되심이 흔들리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 의심되고, 성령의 사역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을 도모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그래서 마틴 로이드 존스는 “권위의 종말 시대”라고 말한다.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으라고 외친다. 초목이 우거지고, 향기로운 꽃들이 지천에 널린 천국 같은 세상이지만 복음의 향기를 맡을 수 없고, 십자가가 흔하고, 때마다 울려 퍼지는 예배당의 종소리는 들려도 예수님이 해답이다(Jesus is The answer)는 외침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교회도 예수님 말고 다른 해답이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싯딤나무는 생명수를 찾아 수백미터 그 척박한 땅을 뚫고 뿌리를 내린다. 싯딤나무는 [오직 예수]라고 외치고 있다. 유일한 생명 예수... 예수님 만이 모든 것의 전부이시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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