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역시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한자리에 지그시 앉지 못하고 있다. 벌써 한 달 째이니 야속할 정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창밖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정리가 덜 된 곳을 찾아든다. 지저분한 것을 못 보는 성격 탓도 있다. 아니다. 지금껏 가져보지 않은 나만의 새로운 공간이 생긴 탓일까. 그 공간에서 좋은 작품을 낳고 싶은 강박감도 한몫했으리라.
네모난 서재에 나를 가둔다. 모든 것과 단절하고 골방에 들어박히듯 방문을 굳게 닫는다. 우선 나를 유혹하는 황홀한 야경을 블라인드로 덮어버린다. 이제 나의 눈에 보이는 건 모니터 화면과 색뿐이다. 손을 모으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글감을 찾고자 여러 책을 뒤적이나 별수가 없다. 시간만 죽이고 앉아 있다.
나의 영혼이 빠져 버린 듯하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 생각도 나지를 않을까. 걸어온 길을 되짚듯 이사 오기 전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남편과 딸과 아들, 시어머니를 모시니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식구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거실 양 벽면이 책장이고, 긴 탁자가 책상이다. 거실과 의자가 있는 식탁, 침실 구분 없이 모든 공간의 나의 서재였다.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식구들은 알아서 자리를 피해 주는 것 같다. 나 또한 가족이 곁에서 떠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무엇보다 나의 글을 가지고 대화의 장이 열린다. 가족은 내 글의 첫 독자이다. 남편과 딸은 글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니지만 내가 볼 때는 인정사정없는 평론가다. 어색한 문장을 예리하고 꼬집는다. 그 부분을 퇴고하여 더 나은 글로 거듭난다. 가족이란 이름을 떠나 독자에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고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십수 년을 해온 나의 행위를 강제로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마음을 다잡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나를 새로운 공간에 길들이기, 아니 방이 나를 길들이기인가. 자유로이 비상하는 새의 날개를 붙잡아 방안에 앉힌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틀 안에 나를 가두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별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빛을 준다고 했던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내로라하는 국내외 작가들의 서재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게 된다. 소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서재는 집안 어디에나 있단다. 집안의 모든 공간이 자신의 서재이고, 자신의 서재는 단지 하나의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기의 작가인 베르베르 서재의 환경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에 놀랍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소설 “엄마를 부탁해”로 큰 인기를 얻은 신경숙 작가도 비슷하다. “자신의 서재는 둥지이다. 집 전채가 그냥 서재. 그냥 책이 있는 집. 책이 숨 쉬고 저희와 소통하고 있는 그런 살아 있는 공간이다.”라는 말이 마음을 울린다. 나를 구획한 공간에 애써 가두려고 했던 발상이 오산이라는 걸 깨닫는다.
돌아보니 나의 서재도 둥지였다. 내 마음의 상태가 그린 환경이나 사물과 어울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자연스럽다.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도 마음속에 걱정이 가득하다면 즐거울 수가 있겠는가. 눈앞에 서재가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도 즐기는 방식도 다르다. 조정래 작가는 어제가 영혼의 보물창고이자, 내 삶을 구속하는 영혼의 감옥이란다. 그는 나와는 다르게 골방에 들어야 글이 써진단다.
노후에는 한적한 산방에서 지내고 싶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친밀히 벗하고 싶어서다. 그곳에서 은자처럼 살아도 좋으리라. 많은 지식인이 일속산방을 회자한다. ‘일속산방’은 ‘좁쌀만 한 집’이란 뜻이다. 집안일을 잘 못하고 시와 옛 글만을 좋아한 지식인, 말년의 황상(1788~1863)이 살았던 집이다. 그의 집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좁쌀’만 했지만, 그의 서재에는 온 세상이 들어 있었단다.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동경인가. 그저 상상만 해도 좋다.
지금은 예전처럼 나를 자유로이 놓아두련다. 열린 공간은 모두 나의 서재다. 방 크기가 크든 작든. 책을 읽는 공간이 어디든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내가 지은 글도 만인을 위한 글이니 함께 나누는 삶이어야 한다. 새로운 공간은 선인처럼 문화를 논하는 산실의 장으로 열어두고 싶다. 내 방식대로 ‘방’, ‘너를’ 길들이기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