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샘달에/김영화
봄이 다가오며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의 끝 달이다. 가뭄과 산불로 오매불망 기다렸던 단비가 대지는 물론 우리 마음까지 촉촉히 적셔준다. 우리집 뒷마당의 매실나무는 1월 내내 눈처럼 하얀 꽃이 피고 지더니 젖먹이 아기엄마 젖꼭지 만한 파란 열매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렸다.
새해의 여운이 아직은 남아있으면서도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가득한 달이다. 한 해의 입구에서 밝은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몽실몽실 올라온 매실이 봄을 재촉한다. 계절의 갈피에서 꽃이 피고 지듯, 살다 보면 인생도 저마다의 시기와 기간의 수 많은 갈피가 있다.
인생의 한 순간이 접히는 그 사이 사이를 세월이라 하던가? 간 밤에 일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를 꿈에서 뵈었다. 누군가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창밖을 내다 보니 아직 캄캄한 이른 새벽이다.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에 눈물이 흐르는 내 얼굴이 보인다. 동생들이 어머니의 젊었을 때의 사진을 내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나는 어머니와 많이 닮았지만 서로 애틋한 모녀간은 아니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을 떠나 시내로 나와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다 결혼하고 미국으로 왔다. 내가 철이 들어서 어머니와 함께 가장 오래살아 본 기억은 어머니가 LA에 오셔셔 우리와 8개월 계셨을 적 이다. 그 때 처음으로 서먹서먹했던 우리 모녀는 서로를 알게 되었고 모녀간의 진한 정을 주고 받았다. 어머니는 첫쩨 딸인 나를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키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이달에 내 생일이 있다. 여의치 않은 형편에 나를 낳으시고 온갖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생일을 맞이한다. 어머니와 나는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았는지, 그 추억의 갈피들이 가슴 아프고 코끝이 찡해진다. 딸은 어머니의 인생까지도 닮는다는 옛말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나 역시 과묵하신 어머니를 닮아 살갑고 정다운 성격이 아닌데다 두 아들을 늘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하라고 제촉하며 이민 초년생의 스트레스를 그들에게 풀었던 것 같아 왠지 뒤가 캥긴다. 이월의 꽃샘추위 같았던 우리 모녀사이 보다는 화롯가에 앉아 따근한 군밤을 까서 입속에 넣어주던 우리 할머니 손길같은 포근한 어머니로 아들이 추억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들에게 물어보기 겁이난다.
이월은 일년 열두달 중에서 가장 짧은 달로 빠르게 지나가서 아쉽고, 하루하루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마치 아주 맛있고 귀한 음식을 아껴가며 먹고 싶은데 아무리 조금씩 천천히 먹으려 해도 쉽게 사라지는 것 같다. 내 영혼에 살이 될 만한 귀하고 흥미로운 책을 한 절씩 맛있게 되새김질 하며 읽고 싶은데 밤 새워 읽어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가? 어머니와 자식처럼 소중한 관계나 어떤 인생의 갈피에서도 이월은 너무 빠르게 지나 후회와 연민과 행복의 깨달음이 피어나는 달이다.
파란 꿈으로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여 추위, 가뭄, 산불 같은 고난이 우리 인간관계나 삶을 어렵게 하더라도, 뒷 마당의 작은 매실처럼 우리안에 사랑으로 토실토실 살 찌워야 겠다. 이월을 새롭게 맞이하고, 보내는 모든 사람에게 잘 익어가는 매실향이 평화의 향기되어 멀리멀리 땅끝 까지가 퍼지길 바란다.
이월, 시샘달은 ‘고생 끝’이 아니고 ‘파이팅’ 싸워 이겨내서 꽃을 피우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