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잠겨 있던 문이 드디어 열렸다. 멀쩡한 건물이 오랫동안 폐허처럼 버려진 것 같아 자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참이었다. 오랫동안 문이 닫혔다는 건 경제 불황이라는 현실과 맞닿아 있고 그 파장은 의외로 넓은 것이기 때문이다. 불법 주차를 막기 위해 걸어둔 쇠사슬이 풀린 것도 희망으로 다가와 기분이 좋았다.

 

어느 아침, 가게 앞에 커다란 화환 하나가 서 있었다. 화환에는 ‘돈 세다 잠드소서’라는 문구가 쓰인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요즘 트랜드에 어울리는 쌈박한 문구가 대박 나기를 기원하는 최상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여유는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력을 지닌다. 신년을 맞아 쉽게 볼 수 있는 동영상 운세에도 건강운보다, 애정운보다, 재물운이 제일 우선순위에 있는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황금만능 시대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새삼 경제관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우게 된다.

 

문을 연 가게는 요즘 가장 흔한 베이커리 카페였다. 도심 곳곳에 한 집 걸러 카페가 성행하지만, 카페 외의 다른 품목은 더 절망적이라는 반증인 것 같아 환영할 일은 아니지 싶었다. ‘돈 세다 잠들라’라는 문구는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덕담이지만 따지고 보면 어불성설이다. 언제부터인가 카드 사용이 일반화된 뒤로 현금을 사용해서 거래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편의점에서 몇백 원짜리 물건도 카드로 결제하는 세상, 그것이 거래의 기본이 된 지 오래다. 우리 아이들만 해도 지갑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도 넣지 않고 다니니 현금의 실효성이 얼마나 미미한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과연 ‘돈 세다 잠들 일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기에 오히려 더 간곡하게 다가왔다. 물론 그 문구가 이 사업으로 인해서 ‘돈을 많이 벌라’는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한 30여 년쯤 지인이 주유소를 경영하던 딸이 너무 장사가 잘돼 돈을 다 세지 못하고 검은 비닐봉지에 쑤셔 넣는다고 자랑하던 것이 떠올랐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대부분 현금이 상용되던 때라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말이 허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돈의 가치가 너무 떨어졌다는 말을 한다. 그 사실은 물리적인 현금을 쥐어보지 않은 채 모바일 거래에서 오는 과정에서 더욱 실감한다. 예전 얄팍하지만 봉투에 담긴 가장의 월급을 현금으로 세면서 돈의 중요성, 그리고 월급을 받기 위한 노고까지 절절하게 체감했다. 또한 한 장 한 장 세는 감각 끝에서 돈은 희망으로 부활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현시대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지녔지만, 숫자로만 확인시키고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기만 하다. 돈의 힘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돈을 좇는 것이 부도덕하거나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다만 정당한 노동의 가치 아래서 분명히 인정되는 댓가가 되고 그에 준한 자존감으로 자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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