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그 우편물이 도착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무료로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보낸 통지서이다. 지금까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날아들기 시작하더니, 그 이후로 한동안 잊을 만하면 각인시키듯 부쳐오곤 한다.
우편물을 보는 순간 야릇한 기분에 젖어든다. 아, 내가 이 날 이때까지 무사히 살아남았구나. 잠시 감사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반평생 넘는 세월 동안 크게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고, 설사 졌다 하더라도 한두 번의 가벼운 통원치료에 그쳤던 적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주마간산 격으로 내용을 주욱 훑어보고는 선 자리에서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나의 행동을 두고 별 희한한 사람이라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왜 거저 주어진 기회마저 굳이 마다하느냐고.
물론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괴짜의 소행 정도로 치부될 게 뻔하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남들이야 어떻게 여기든 나대로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서 취하는 경솔한 행동이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땅의 사오십 대 남성 사망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같은 연령대에 비하여 그 비율이 무려 한 배 반가량에 이른다는 통계자료도 보고되고 있다. 그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심장병이나 순환기계 질환, 암 따위를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비를 낮춤으로써 국민의료보험료를 절감해 보자는 취지로 건강검진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나 싶다.
기회가 와서 검진을 받는 것 자체야 하등 나쁠 것이 없고, 굳이 탓할 일도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나처럼 일부러 외면하는 행위가 훨씬 불경스러운 태도일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시책에 동조하지 않는 것도 썩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달리해서 생각해 보면 그게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문제일 터이다.
「우부가愚夫歌」라는 조선 후기 가사 작품이 있다. 요즈음 말로 쉽게 풀이를 하자면 '어리석은 사내 이야기를 그린 작품'쯤 될 것 같다. 그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매팔자로 무상출입 매일 장취 게트림과 이리 모여 노름 놀이 저리 모여 투전질에 기생첩 치가하고 외입장이 친구로다 <중략> 병날 노릇 모두 하고 인삼 녹용 몸 보키와 주색잡기 모두 하여 돈주정을 무진하네
아둔한 사내의 떳떳하지 못한 행실을 이렇게 꼬집어 놓았다. 평소에 몸을 잘 간수할 생각은 않고 육신을 혹사시키는 온갖 나쁜 짓은 다 하면서 몹쓸 병 걸려 죽을까 봐 건강에 좋다는 인삼 녹용 같은 보양제나 찾는 것이 얼마나 용렬한 짓이냐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병이 들기 전에 다스리고 의원은 이미 병이 들고 나서 다스린다." 퇴계 선생께서 한평생 장수長壽의 비법으로 실천했던 『활인심방活人心方』에 나오는 글귀이다. 백 번 천 번 동의를 표하고 싶은 금언이 아닐 수 없다.
병이 생기기 전에 잘해야지 일단 병이 난 후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만날 천날 건강할 줄 알고 몸을 아무렇게나 굴리다가 정작 죽을병 걸렸을까 봐 지레 겁을 먹고 건강검진에 목을 매는 행위가 과연 바람직스러운지 한 번쯤 돌아보자는 뜻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육식을 멀리해 왔다. 건강에 해롭다는 술 담배 같은 기호식품과는 애당초 인연을 맺지도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 일여덟 시간가량의 충분한 수면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잡기에 빠지지 않고 늘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쓴다. 거기다 가정불화의 근본 원인이 되는 오입질 같은 부정한 행위와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아왔다. 지인 가운데 몇몇은 이런 나를 두고서 머리만 깎지 않았지 수행승이나 진배없다며 농을 건네 오기도 한다.
이같이 평소 최대한 절제된 생활로 건강을 지키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끝내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그렇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때 가서 치료를 받겠다는 것이 수십 년 동안 지켜 온 어쭙잖은 소신이다.
오늘에 충실한 삶을, 내일 죽어도 후회 없을 인생을 가꾸어 가고 싶다. 이것이 내가 한사코 건강검진 통지서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찢어 없애버리는 이유라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