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못한 길에 대하여 / 김상립

 

 

자려고 누웠는데 쉬이 잠은 안 오고, 갑자기 오래전에 보았던 흑백영화 ‘길’이 생각났다. 주인공이었던 차력사 잠파노의 길도, 그에게 팔려간 백치 소녀 젤소미나의 길도 떠올랐다. 그들의 길을 추적하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읽는다. 내친김에 나태주 시인의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라는 시집을 빼어 들고 한 참이나 뒤적인다. 내가 이미 80고개를 넘어서서 그런가, 갑자기 사람의 길이 자꾸 떠오른다.

학창시절 나는 농촌운동가가 되고 싶었다. 당시에 우리 농촌은 너무나 낙후되고 가난하였기 때문에, 전체 인구 중 절반이나 되는, 농촌 인구가 잘 살아야 우리 모두가 행복 해지지 싶어서였다. 또 그 힘든 길을 누가 쉽게 나설 일이 아니기에 더욱 가고 싶었다. 나는 그 일이 적성에도 맞고, 무척 잘할 것만 같았다. 하여 신설된 K대학 축산대학으로 진학을 했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갔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노력 만으로는 농촌운동을 잘할 수가 없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일에는 능력은 물론이지만, 일정한 조직도 필요했고, 많은 자금도 있어야 했다. 당시로서는 국가에서 농촌운동을 도울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게 있을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농촌 운동이랍시고 학생들끼리 시작은 했는데, 날이 갈수록 고민은 깊어가고 방법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내 사정을 아신 우리학교 총장님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캐나다의 St. Francis 대학의 농촌 발전 프로그램을 이수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더구나 유학을 마치고 나면 매월 상당한 자금을 5년간 지원해 주기로 약속받았으니, 내 구상은 날개를 단 셈이었다. 우선 나는 동료들에게 하던 일을 맡기고 유학 준비에 몰두하였다.

그런데 일을 앞장서서 추진하시던 S대학의 외국인 교수가 내 서류를 지니고 한국으로 오기 위해 공항으로 나가다가 심장마비로 곧장 미국 육군병원에 실려가는 바람에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말았다. 내가 소명처럼 주어진 길을 찾아 일하게되면, 평생토록 한 길만 가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고 빌었는데, 하루아침에 줄 끊어진 연 신세가 되고 말았다. 허무하고 허망한 나날을 술로 지내다 보니, 사회에 진출할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나는 서울역 부근에서 농산물 도매상도 해보고, 공무원으로 들어가 사회개발계획을 입안하는 업무를 하면서, 농촌에 직접 뛰어들 수 있는 기회를 용케 잡았다. 하지만 돌연 고위층이 관련된 사건사고로 정책까지 취소되는 바람에 기회를 잃고 말았다.

맥 빠져 공무원도 그만두고, 졸업 후 3년이 지나서야 배합사료 회사에 첫 취업을 했다. 사료산업이 초창기라서 나에게 여러가지로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믿었지만, 막상 현장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실제로 농가에서는 부업으로 가축을 조금씩 기르고 있었기에,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농민들과 소통이 가능할 것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에 따른 식생활의 변화와 현대식 배합사료 공장의 등장으로 축산업은 급속히 산업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아울러 전업 축산업자들이 우후 죽순처럼 생겨 나서, 축산업은 전통적 농업과는 별개의 산업분야로 성장해 나갔다. 심지어 대 기업까지 진출하여 사료시장마저 치열한 경쟁판이 되고 말았다.

나의 직장생활은 먹고 사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보람이나 의미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날이 갈수록 안타까움이 커져서, 기회가 닿기만 하면 업계를 떠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재학 시절의 영문학 교수를 만나 희곡작가의 길을 추천받아 한동안 고민도 했고, 정계 입문에 대한 권유에 혹하여 자칫 그 길로 갈 뻔도 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농촌문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다니던 직장에 계속 머무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느새 세월은 흘러 내가 회사에서는 점점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고, 조직 내에서 책임이 커지니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그 동안 농촌에서는 새마을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농업협동조합이 전국적으로 많이 생겨나, 과거와 같은 농촌운동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하고 싶은 일을 가슴에 품고서, 정작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면서, 갈등하는 직장인으로 살았던 날이 너무 길었다는 생각에 몹시 착잡했다. 그래서 나는 퇴직하면 곧바로 시골로 내려가 순수한 농부로 살면서 내 자신을 참회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퇴직을 수년 앞두고 아내가 중병을 얻어 병원에 묶이는 바람에 그 계획마저 실현 불가하게 되고 말았다.

지나고 보니, 인생이란 어디쯤가면 정해둔 목표가 이루어지고, 얼마쯤 더 가면 어떤 새로운 결실이 얻어지기 때문에 걷는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주어진 길이나 생계를 위해 다급하게 찾은 길도 그만 두지 못하고 평생을 가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길이 있는 반면,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 길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렇게 가고 싶어 애태웠어도 끝내 가지 못한 길은, 결국 나의 길이 아니었다. 그 길이 절실했으면 엎어지든 자빠지든, 기회를 기다리지 말고 가야 했던 것이다. 그 길은 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지 않은 길이었다.

결국 나의 길 하나 하나가 나를 종점으로 모두 연결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게다. 설령 내가 각설이 타령을 하고 지냈거나, 포장마차를 운영했거나, 남의 구두를 수선하며 살았다 해도 그게 진짜 나의 길이었던 것이다. 설령 내가 어떤 길을 갔더라도 선한 마음으로 정직한 걸음을 떼었다면, 아무런 후회나 미련을 가지지 않는 게 오히려 삶에 도움된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좋은 길, 나쁜 길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수필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주어진 나의 길이라 생각하고, 생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걸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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