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둥이와 물망초 / 전성옥
며칠 전 명함을 해 갔던 손님이 재차 찾아왔다. 다시 해야겠단다. 클레임이구나 생각했다. 편집디자인 일 중에서 클레임 빈도가 상당히 높은 것이 명함이다 보니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고객은 클레임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 사진을 넣고 새로 만들어 달라했다.
우리 사무실에서 명함은 ‘종합예술’ 이라 불린다. 명함이란 것이 이름과 전화번호가 찍힌 작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온갖 장르와 갖은 스킬이 동원되는, 미니어처 격전지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까닭이다. 가로 8.5cm 세로 5cm 남짓의 작은 지면에 수많은 정보가 들어간다. 이름과 전화번호는 필수이며, 각종 주소와 로고, 사진, 때로는 광고도 들어가고 영업직에 종사하는 이들은 취급하는 물품들을 넣기도 한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뒷면에 약도를 넣어 달라, 가격표를 넣어 달라, 앞면 내용을 영문으로 넣어 달라. 그리고 무엇보다…, 멋진 디자인을 해 달라. 이쯤 되면 어지간한 전단이나 포스터가 ‘명함’을 못 내밀 판이다. 작은 것은 단지 종이 면적과 가격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기 지상주의자’다. 큰 것이면 많은 금액을 지불함에 무리가 없고 작은 것은 가격도 낮아야 된다 생각한다. 제품의 소재도 영향을 미친다. 보석이나 고급의류, 전자기기 등과는 그 대접이 다르다. 머리를 쥐어짜며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애써 디자인을 했건만 결과물은 그저 종이에 불과하다.
이 탓에 지면(紙面) 디자이너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이깟 종이 한 장 얼마나 한다고’ 그 종이에 담긴 디자이너의 노력과 시간, 아이디어는 간 곳 없다. 그 디자인을 만들어내기까지 해 온 공부며, 쌓아온 경력이나 재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어쨌든 결과물은 종이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그깟 종이 인쇄물 중에서도 크기가 가장 작은 명함은 오죽하랴. 디자이너들과 사업주들이 크게 반기지 않은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작업을 하고도 별다른 직업 성취감을 느낄 수 없는 것에 그러하고, 사업주 입장에서는 도무지 수익을 남길 수 없는 구조라 그러하다.
어느 업종이나 남지 않는 걸 뻔히 알면서 경영 구조상 팔지 않을 수 없는 물품들이 있다. 손해를 보면서도 팔아야 하는 제품들이 있는 것이다. 지면디자인 업계에서는 명함이 대표적인 예다. 디자인비가 제대로 포함되지 않는 명함 제작에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까다로운 고객의 경우 끊임없이 수정을 말하고 디자인 변경을 요구한다.
그뿐 아니다. 고객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하는 김에 로고‘나(!)’ 하나 만들어 넣어 달라. CI를 그려 달라. 로고와 CI 전문업체에서는 난이도에 따라 엄청난 제작비를 요구한다. 한 업체의 상징물을 만드는 작업이라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체 입장에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지적생산비와 시간당 인건비를 포함하면 무리한 가격은 결코 아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명함 한 통 제작하며 배보다 배꼽이 큰 부탁을 하는 것이다.
물론 고객이 이러한 유통구조나 가격 상황을 알지 못해 그럴 수도 있고, 단골인 경우 그저 편하게 생각해서 별다른 의도 없이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명함은 애물단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물론, 로고를 그리는데 비용이 들어간다, 수정을 거듭하면 작업비가 추가된다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야박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마음이 쓰이고, 심한 경우 고객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명함을 재작업 하러 온 고객을 대하고 나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다른 면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명함이라는 작은아이를 두고 어쩔 수 없이 맡아 기르는 업둥이쯤으로 생각했고, 일하다 발에 걸리는 골치 아픈 종합예술이라 타박했었다. 주저하던 그 고객은 명함 왼편에 자기 사진을 넣어달라며 멋쩍은 듯 웃었다. 내세울 것 없는 이가 얼굴을 파는 허세로 보일까 걱정을 했었는지 이내 말을 이었다. 이름과 상호만으로는 사람을 기억하기 어렵더라며, 자신이 그러할진대 자기 명함을 받는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일 터이니 잘 기억되도록 본인 얼굴을 넣어 달라 했다.
짜르르, 가슴에 잔금이 번져왔다. 내가 타박하는 작은 종이 한 장이 실상은 간절하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스치고 부딪치고 만나는 세상이지만, 역으로 그만큼 사람의 부재 속에서 살아간다. 한 마을 전체가 피붙이와 같고 말하지 않아도 품앗이를 해주던 그런 시절이 지금은 아니다. 그 수많은 관계의 대부분은 이해에 의해 정의된다. 쉬이 만나고 쉬이 잊혀진다. 자신을 각인시키는 것이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명함 한 장을 건네며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치 ‘나를 기억해 주세요’ 하고 건네는 물망초 한 송이처럼.
모니터에 작업창을 띄운다. 골치 아픈 종합예술이 물망초 밭으로 변했다. 나는 물망초를 키워내는 화원지기가 된다. 고객 이름을, 사이안 100, 마젠타 80, 옐로와 블랙 30의 진한 옥빛으로 넣는다. 조금 옅은 색으로 상호는 크고 두껍게, 전화번호는 살짝 두껍게 넣는다. 중년 남자의 얼굴 사진을 당겨온다. 꼼꼼하게 수정한다. 얼굴색도 보정하고 삐져나간 머리칼도 정리한다. 고개가 틀어진 것 같아 사진을 반대쪽으로 살짝 돌린다. 가득 핀 물망초 속으로 고객의 얼굴을 넣는다.
마우스를 움직이며 기원한다. 이 사람을 기억해 주세요. 잊지 말아 주세요. 이 명함을 지갑 속의 꽃으로 오래 꽂아놔 주세요. 그리고, 물망초를 피워낸 어떤 손의 수고도 기억해 주세요. 오늘부터, 명함은 기도의 다른 이름이 된다.
<좋은수필 202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