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어수선했다. 나는 나대로 새로운 주거지에서 어영부영하였는데 날마다 잠을 자니,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한 스무날, 네팔에 다녀왔다. 지난해, 지진으로 어마어마 어마무시 엄청나게 부서진 카트만두에서 코와 입을 가리고 발이 아프도록 걸었다. 온 도시가 쓰레기더미 같았다. 그곳 거리에 사람들이 깨진 벽돌처럼 많았다. 도시 전체가 암울하여, 그 누추함과 측은한 눈망울을 오래 쳐다보기도 민망했다.
그런데 그들은 눈이 마주치면 어이없게도 바보처럼 웃는다. 뚝딱대는 망치 소리, 짐을 져 나르는 아낙들 곁에 아이들이 노동놀이를 하면서도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어쩌다 저 꼴이 되었나?' 어처구니없는 가운데에서 어색한 몸짓으로 어정쩡 어질게 웃는 사람들, 흙먼지 풀풀 날리는 폐허에서 희망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어'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도 그들처럼 '어'하고 싶다. 좀 더 어줍게, 좀 더 어눌하게 살고 싶다. 엄살떨지 않고 어슷어슷 대파를 썰어 어묵탕과 어리굴젓 어물쩍 버무려서 식탁을 어방치기로 차려야겠다. 손자의 장난감이 거실에 어수선하게 어지간히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어도 보이지 않는 척, 눈앞에 어스름 어렴풋하게 어둑어둑한 장막을 쳐야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물어물 어정버정 날들을 보내고 싶다. 어수룩하게 어금버금 어슬렁어슬렁 어즈벙어즈벙 어치렁어치렁 굼떠도, 남편과 아이들 대소가 친인척과 대한민국은 어라 차차! 제자리를 지키며 잘 돌아갈 것이다.
어찌하였든 나는 '어'라는 변방에 서고 싶다. 어벙하게 어기적어기적 지내노라면 한 해 두 해 세 해…. 어서어서 윤택한 삶을 꿈꾸던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이가 어린이 식탁에서 밥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난다. 아이 아비가 굵고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 이름을 부르며 호통친다. "괜찮아,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고 하니, 아들이 어미를 호되게 나무란다. 집에서 괜찮다고 하면 밖에 나가서 그 버릇이 그대로 나온다며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손자 앞에서 제 어미를 또박또박 가르친다. 어렵소! 어이가 없다. 어안이 벙벙하다. 그렇다. 괜히,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떨결에 저도 모르게 고함친다. 할머니와 아비가 싸우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제 풀에 놀라 양쪽 눈치를 보며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잠시 어리광이지, 가만 놔둬도 어련 무던하게 잘 자랄까. 참 별것도 아닌 일에 삼대가 맞섰다. 할머니는 아이를 껴안으며 "아냐, 괜찮아. 할머니는 괜찮아."라며 나이가 들어 '할머니사람'이 되면, 그까짓 거 아무렇지도 않다고, 할머니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지혜 주머니가 있다고, 그 주머니 안에 '포기'라는 단어를 얼른 집어넣었다고, 조곤조곤 아기에게 이야기했다. 어리둥절하여 한참을 빤히 쳐다보더니, 아이는 말귀를 알아들은 것처럼 제 아비 품으로 가 안긴다. 아들이 한마디 한다. "할머니 한번 안아 드려."."
숨소리 파닥이는 손자의 가슴이 따뜻하다. 하품이 크다. 금세 잠이 들 것이다.
"괜찮아, 괜찮다."라고 말했다. 이즈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정말, 나는 괜찮은가? '괜찮다'라는 말속에는 괜찮고 싶은 소망이 들어 있다. 비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마스테이Namaste*" 두 손을 모은다. 네팔에서 배운 인사말이다. 나에게 '나마스테이'는 '괜찮아'의 동의어다.
'남는 것이 시간밖에 없다'는 말은 그건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니라고 여겼었다. 요즘 나는 이 말을 아주 살뜰하게 실천하려고 한다. 마음이 한가롭고 싶다. 그동안 강행군했던 세월을 보상하는 시간, 유배의 휴식을 누리고 있다.
유배생활의 특징은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점이다. 아이들 혼사 후, '할마'라는 신조어로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전업주부가 아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손자가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 동안, 오전 오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다. 내 주위의 지인들이 '그 짓을, 왜?' 하느냐며 어리석음을 따끔하게 꼬집어 준다. 어중간한 이순耳順의 나이에 어린 손주들 스케줄로 바쁜 '여사'를 다른 말로 '미와 친한 여자'라 한다며 우수개소리인 양 말해준다. 자신들의 일상을 다행으로 여기며 안도의 숨을 쉰다. 어떤 이는 선심 쓰듯 "손자 실컷 봐서 좋겠네." 부러운 듯 말한다. '그렇게 잘난 척하시더니…', 사실 고소하게 여기는 눈빛이 역력하다. 아니라고? 왜, 그리 꼬였느냐고? 세상에 어느 누군들 '제2의 인생'을 황혼육아로 시작하고 싶겠는가. 요즘 신세대들은 육아를 교양도 품위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며 '야만의 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 있으면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마음자리가 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스스로 존중한다. 그리고 그대께서 나와 같은 일상을 어렵사리 자의든 타의든 택하셨더라도 "괜찮습니다, 나마스테이" 그대를 존중하려고 한다.
어머, 참! 황혼육아의 묘약妙藥도 있다.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9시 뉴스 화면 앞에 곯아떨어진다.. 그런데 아는가? 손자의 똥이 얼마나 어여쁜지. 고 작은 입으로 어찌나 잘 받아먹고 잘 싸는지 그저 고맙기만 하다. 똥 빛깔이 볼수록 기특하여 어깨가 어둔해지고 허리가 점점 어그러지는 것도 잊는다. 사골이 뽀얗게 우러나는 대비마마 어부인의 곰삭는 골병이다. 어차피 세월이 한 세대 지나면, 어명御命이 아니더라도 내 몸은 백골이 진토 되어 임을 향한 단심가가 될 것이다.
어느 선배분이 네 명의 손주를 돌보며 해마다 럭셔리 해외여행을 다니신다. 명품 옷을 입고, 오페라, 연극, 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가족 식사를 함께 한다며 자식이 베풀어주는 '복지'를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넌지시 내손을 맞잡고 육체는 '피폐'하고 정신은 '황폐'해지는 그 어려운 일을 왜 자처했느냐며 어릿어릿 눈자위가 물기까지 어린다. 육아보다 더 힘든 "황혼육아 우울증은 어쩌시려고?" 글쎄다! 문득문득 가라앉는 '손주블루'증세를 누가 어루만져 줄 것인가. 밤 한 공기와 오이지무침 하나로 혼자 TV 보며 먹는 식사 시간을 꿈꾼다. 기차 창밖을 내다보며 홀가분하게 떠나는 여행이 얼마나 그리운지, 그놈(?)의 자식들은 절대 모른다. 어슬막에 아들 손자, 며느리를 위해 진수까지는 아닐지라도 비지땀으로 간한 성찬을 차린다. 밥 수발 덕분에 살비듬도 표정도 날이 갈수록 넉넉하여 어정 잡이 관세음보살상이 되어간다.
그래도 나는 "어부바"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어린 손자를 어른다. 어진 심성으로 어긋나지 않게 어엿한 행실을 하는 시기까지 한동안 '어'에 머물 것이다. 그것이 어리석은 어미의 얼간이 사랑임을 어림짐작한다. 순수하게 오직 내 것을 다 내어주고도 순직할 수 있는 고귀한 이름, 나는 아이를 낳은 '어미'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진정한 어른의 작위爵位는 '어머니' 그리고 '어버이'라고 어거지 어록을 새긴다.
'이런들 엇더며 져런들 엇더료,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리.'
"어랑어랑 어허야, 어허야데야 내 사랑아~♬"
*나마스테(산스크리트어: नमस्ते)는 인도와 네팔에서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만났을 때뿐만 아니라 작별할 때도 사용한다.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뜻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