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흙이 되려나 / 이병진
흙이라고 다 같은 흙이 아닐진대
흙의 성질이 도자기의 질감을 바꿀진대
딱딱해서도 물러도 안 되고
입자가 거칠거나 색이 도드라져도 안 되고
1300℃의 불을 무던하게 견뎌야 하고
가마의 시커먼 손장난에도 진득해야 한다
혹여 귓불에 뜨거운 바람이 들어오더라도
몸을 비틀거나 마음이 갈라져서는 안 된다
그래야 매끈한 세상을 만나고
나무처럼 버티는 힘이 생기고
한낱 질그릇과는 결이 달라질 터
저 흙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것
풍파에 뒤틀려 불순한 나는
어느 화장터에서 몸을 뜨겁게 굽더라도
반듯한 자기磁器 하나 못 얻을 나는
죽어 어느 골짜기에서 어떤 흙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