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로 / 허숙영
전통 찻집 장식장 안에 정좌하고 있는 놋쇠 화로를 들여다본다. 화로는 텅 비었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듯하다. 거리를 뒤채는 낙엽은 죄다 쓸어버릴 기세의 겨울바람에 등 떠밀려 들어간 그곳에서 화로는 차향보다 먼저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동그랗게 부른 배 둘레를 돋을새김한 당초문이 허리띠를 두르고 세 개의 발로 당당하다. 부식이 시작되어 우둘두둘한 생의 에움 흔적은 힘든 세월을 이겨냈다는 증거이자 훈장이다. 한때는 불덩어리를 가슴에 품은 채 아이들의 발갛게 언 볼과 곱은 손을 펴주는 일에 열정을 쏟은 화로였다. 마음깊이 꾹꾹 눌러 다져넣은 상처야말로 그를 한없이 강하게 만들어 주저앉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보다. 어쩌면 대장간 모루 위에서 담금질 될 때부터 예견된 일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댓잎 수런거리는 소리, 화로에 툭툭 아버지 담뱃재 터는 소리가 들린다. 대숲에 둘러 쌓여있던 황금빛 초가와 함께 어린 날의 빛바랜 기억이 하나둘 되살아난다. 호롱불 일렁이던 한지 방문에는 떨어진 양말 뒤꿈치를 깊던 어머니의 실루엣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종고모가 갖다 주는 자투리 안팎을 덧대어 시나브로 예쁜 복주머니를 만들던 어머니. 복주머니에 당신의 염원을 수놓는 동안 충신처럼 곁을 지키던 화로도 같이 흔들거린다. 밤늦도록 친구네 사랑방에서 놀다 들어가도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목은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고 싸늘한 윗목에 앉은 어머니는 내가 황소바람을 몰고 들어서면 꽁꽁 언 손부터 잡아끌어 화롯불에 녹여주었다.
민낯의 무덤덤한 우리 집 무쇠 화로는 겨우내 안방 지킴이었다. 놋그릇에 담긴 물에 살얼음이 버석버석하게 앉던 온돌방 윗목 구석에서 어머니의 긴긴밤을 지켜주었고 형제들을 불러 앉히는 중심축이 되었다. 묵묵히 붙박이처럼 한 곳에만 눌러앉아 있어 방바닥에 누릇누릇 부스럼 딱지를 만들어 놓던 화로의 엉덩이에다 어머니는 누덕누덕 기운 방석을 받쳐주었다
‘그래 너도 참 힘들겠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힘줄 도드라진 손으로 닦고 또 닦으며 빛을 내던 것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가 아니었을까. 배고픈 어린것들에게 풋바심조차 해볼 땅 한 뙈기 없는 타향에서 하소연을 받아들이고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화로뿐이었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늘 만들던 복주머니의 가장자리를 반듯하게 다듬을 때는 화롯불에 꽃아 둔 인두가 제격이었다. 인두와 화루불만 있으면 구겨진 하루도 반듯하게 펴고 시린 계절도 따뜻하게 넘길 수 있었다. 성냥이 귀했던 그때는 불씨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불씨가 꺼질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 딸 열둘을 낳았지만 일곱이나 잃었다. 아들을 낳지 못해 시앗의 온갖 수발을 다 들며 진창에서 허우적대던 외할머니를 보아와서인지, 종부로서의 의무였는지 아들에 대한 집착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전쟁의 화염 속에서 아들 셋을 한꺼번에 잃고 생병을 얻어 서푼어치도 안 되는 전답을 정리하고 고향을 떠났다. 일가붙이 하나 없고 텃세 강한 씨족마을에 뿌리내렸지만 비바람에 생채기투성이였다.
어머니는 득도한 것처럼 담담했지만 나는 그 아픔의 깊이를 짐작만 할 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흠 잡히지 않으려 아침마다 가르마 반듯하게 머리를 빗어 비녀를 꽂고 소지를 올렸다. 하지만 아들 얻어서 다시 오마고 눈물로 약속했던 고향산천과의 약속은 소지 불꽃처럼 하늘만 떠돌다 사라져 버렸다.
뜨거운 불을 담고 해탈한 듯 고요히 앉은 화로를 보듬는 것으로 나락에 떨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가슴속 잉걸을 다독이며 참아내야만 하는 것이 여러 사람을 덥혀주는 화로의 임무였다.
화로는 언제 다시 훨훨 타오를지 모를 숨죽인 불기운을 안고 있었다. 바람의 힘을 빌려 일어서려 했으나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살면서 다하지 못하는 말들, 이루지 못하는 꿈을 가슴깊이 간직한 채 옛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집안의 불덩이는 다 쓸어 담아 다독이는 화로가 되어야만 했던 어머니가 얼비친다. 뜨겁다는 내색도 하지 못하고 가슴에 재가 되어 쌓일 때까지 불덩이를 품어야 했던 종부의 자리, 불사신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 어머니다. 그러노라니 관절마다 녹이 쓸어 삐걱거린다.
이제는 종부가 따로 없고 아들딸도 차별 없는 세상이다. 방구들이 기름보일러로 바뀌면서 윗목 아랫목도 따로 없다. 화로도 마루 밑으로 옮겨 앉아 쉬는가 싶더니 어느 결에 사라져 버렸다. 화로만 어머니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식들도 하나둘 자기자리를 찾아 그 좁은 방에서 벗어났다. 늘그막에 어머니도 아랫목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곁에는 외로움만 비집고 들어앉았다. 겹겹이 접힌 주름 사이로 아픔이 배여 들어 화병으로 굳어갔다.
뜨거운 불을 보듬기만 한 어머니의 삶이 화로를 닮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화병은 빠져나가지 못하는 불을 품고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인두로 화로 속 불길을 재우듯 응급실에 실려 가 다독이기를 수 없이 되풀이하지만 속 깊이 묻어둔 불은 완전히 비워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완치되지 못하는 병 때문에 자식을 낳은 날이 가까워오면 생솔가지 매운 연기를 머금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집안을 일으켜 세울 씨 하나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고스란히 내놓은 종부의 삶이 뜨겁다 못해 화농으로 얼룩졌다.
옹이 하나 만들지 않고 위로만 키를 키운 열대 나무들은 혹독한 추위를 겪어낸 나이태의 무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를 것이다. 어머니는 속으로 화를 삭일 때마다 아리게 나이테를 만들었을 것이다.
내 어머니의 시린 겨울을 덥혀주던 화로도 전 생애를 뜨겁게 살아 냈으니 지금쯤은 불덩이에 댄 얼룩무늬를 간직한 채 또 다른 누군가의 추억을 불러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금얼금 얽은 화로를 다시 본다,
‘내 삶도 괜찮았다 싶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불씨를 지켜냈거든.’
평온하게 굽어보는 늙은 화로의 잠언을 듣는 내 마음이 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