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식 같은 하루 / 남태희
직장인에게 일요일은 달콤한 후식 같다. 한 주에 닷새 근무하는 사람이야 덜하지만 일요일 하루 쉬는 사람에게는 아껴 먹는 디저트처럼 감질난다. 밀린 잠도 자야하고 미룬 집안일도 해야 한다.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여 못다 한 인사들도 챙겨야 한다. 일요일 내내 평일 못지않게 나름 종종댄다.
눈을 뜨니 아침 아홉 시다. 이불 속에서 좀 더 꼼지락거리며 휴일의 평화를 즐길까 하다 벌떡 일어난다. 커다란 머그잔 가득 커피를 타고 티브이 리모컨을 무의식적으로 켰다가 끈다. 한구석에 쌓아 올려진 책과 우편물을 정리해야겠다는 강박에 마음이 바쁘다. 읽은 책들과 읽어야 할 책들, 답을 줘야하는 책을 분리한다. 봉투에 적힌 신상은 검은 매직으로 지워버린다. 몇몇 책을 책꽂이에 꽂으며 나의 글도 이렇게 남에게 때론 선택의 짐이 되는 건 아닌지 잠시 의문을 가지며 세탁실을 향한다.
겉옷과 속옷, 흰옷과 유색 옷을 나눈다. 나누어진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풀어 돌린다. 윙윙 돌아가는 옷들을 보며 인생은 빨래와 같다고 생각한다. 엎치락뒤치락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과 불편한 사람, 의지하고 싶은 사람과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 함께 여행하고 싶은 사람과 잠시도 같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 등등 평생을 쪼개고 분리하며 사는 것 그게 산다는 것인가 싶어 잠시 서글프다.
타조깃털 먼지떨이를 들고 청자와 백자의 먼지를 턴다. 안방과 건넛방 사이 반닫이 위에 오종종한 가족사진과 청자 화병 하나와 청자 달항아리 하나, 백자 달항아리 하나가 묵묵히 조왕신처럼 앉아 있다. 옛것을 흉내 낸 반닫이며 청자 백자 모두가 모조품이다. 모조폼의 먼지를 털고 있는 것이 진품 타조깃털 먼지떨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도 진실보다 거짓이 때론 목소리를 높이고 인정받을 때가 있지 않은가.
서둘러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마치니 햇살이 거실 가득 넘실댄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욕실로 향한다. 몸을 씻으며 청소를 한다. 욕조를 문지르고 세면대를 닦아내고 변기통도 싹싹 솔질한다. 공중목욕탕처럼 수증기로 가득찬 거울을 닦고 세숫대야에 세제를 풀어 바닥을 쓸고 나면 목욕 끝, 아니 청소 끝이다.
정오가 다 되어 첫 끼니를 먹는다. 모아둔 찬밥과 남은 나물을 비우는 날이다. 쫑쫑 쓴 묵은 김치에 먹다 남은 나물과 참치 한 통, 굴 소스 한 숟가락으로 거한 아침을 차린다. 햇살이 티브이 화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 들어온다. 티라미수나 마카롱을 음미하듯 조금씩 아껴 먹고픈 휴일 낮이 한참이나 남아 마음이 넉넉해진다.
노트북을 챙겨 시장 모퉁이 카페 2층으로 향한다. 차 한 잔을 들고 앉아 창밖 풍경을 내려다본다. 휴일의 느긋함 때문일까. 사람들의 걸음이 느릿하니 여유롭다. 떡볶이집을, 반점 앞을, 빵집 앞을 서성인다. 점심을 먹으러 식구들끼리 가까운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리라. 휴대폰을 보며 걷는 사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걷는 가족, 계모임이라도 하고 오는지 수다스레 걷는 중년의 여자 한 무리가 여유롭다. 모처럼 나처럼 한갓진 사람들을 보니 흐뭇해진다. 때마침 오토바이가 그 사이를 누빈다.
자세히 보면 바쁘기도 하다. 닫힌 옷가게들, 열린 음식점들 앞 노점에는 과일 바구니를 펼친 아주머니와 집에서 만든 비누를 들고 앉은 할머니가 팔 물건들을 전시하느라 굼실거린다. 두 분 다 등이 굽었다. 상품이 돋보이면서 수북해 보이게 나름의 장사수단을 동원하고 계신다. 안쪽 한편에는 물미역을 둘둘 말아 놓았다. 누군가 휴식을 취하려면 타인의 노력이 있게 마련이다. 방금 건져 올린 물미역 한 오리처럼 삶이 반들거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느릿느릿 글을 쓰다 말다 거리를 보다 말다 커피를 마신다. 참 좋다. 오후의 차 한 잔과 글을 쓰는 여유라니! 소곤소곤 속삭임, 의자 끄는 소리마저 정겹다. 연인들의 다정한 눈길과 가벼운 스킨십, 과외수업 중인 색다른 풍경마저 흥미롭다. 스쳐가는 생각들을 겨우 잡은 문장들이 노트북 안에서 오늘은 제목이라고 주십사고 매달리고 있다.
예전에 누군가가 할 일이 없어 무료하다며 잦은 푸념을 했다. 그 말이 자랑처럼 들려 아주 잠깐 우울했던 적이 있다. 지금 여섯 날을 열심히 일한 뒤 갖는 조금의 느긋함에 감사하다. 오전 내내 집안일에 매달려도 일이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집안일을 하는 시간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이어서 편안하다. 쓰고 싶은 글, 읽고 싶은 책과 함께할 수 있고 차 한 잔의 여유도 가질 수 있으니 그만하면 됐다며 스스로 다독인다. 휴일의 단잠처럼, 아껴먹는 디저트처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 한 줄 보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완벽함이겠다. 아까운 휴일이 혼자 즐겨도 조금씩 줄어든다.
이제 노트북 안에서 숨죽이고 있는 글에게 제목을 주어야겠다. -후식後食 같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