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티분 냄새 / 서해숙
올해는 유난히 송홧가루가 많이 흩날린다. 발코니에 흩어진 노오란 가루를 닦아내다가 유년의 기억속 여행을 떠난다. 그녀에게선 늘 코티분 냄새가 났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손가락이 길었던 그녀는 동네어귀의 정숙이네 집 뒤란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았다. 살림살이래야 양은 냄비와 사기그릇 몇 몇 개가 전부였다. 내가 단발머리를 나풀대고 달려가면 그녀는 언제나 코티분내가 나는 품으로 나를 안아 주었다. 우리 집에서는 오빠와 남동생이나 먹던 홍시나 곶감이 그녀의 집에서는 내 전용 주전부리였다. 나는 나만 바라기 하는 것 같고 서울말을 하는 그녀가 엄마보다 좋았다.
인네라고 했다. 할머니를 포함한 온 가족들이 그녀를 인네라고 불렀다. 나는 그녀의 성씨가 몹시 궁금해서 할머니께 물었었다. 할머니와 작은엄마 삼촌까지 모두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그녀의 이름은 ‘김인네’라고 일러 주었다. 나는 그녀의 방문 앞에 가면 아예 대 놓고
“인네요! 내 왔니더”
라고 했다. 그녀는 늘 반겨만 주었지 내가 부르는 호칭 따윈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다 자라서 김인네는 김 여인네를 하대하는 말임을 알았다. 나는 너무나 부끄럽고 그녀에게 미안해서 그녀의 고향 쪽을 보고 낯을 붉혔다. 그녀의 고향은 인천이라고 했었다.
엄마에게서는 늘 땀내가 났다. 머리에는 늘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엄마의 웃는 모습은 기억의 저장고를 아무리 뒤져도 없다. 머리에 늘 무엇을 이거나 양손에 들고 있지 않으면 부엌일을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그 집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 연유의 첫째는 코티분 때문이었다. 우리엄마에게는 없는 코티분이 그녀에겐 있었고 내가 가면 고운 문양의 분통을 조심히 열어서 콧잔등부터 톡톡 두드려서 정성껏 발라 주었다. 가끔 코를 벌름거려 그 가루향을 흡입하면 동화 속 주인공이 되었다. 코 안 가득 분 냄새가 번지면 하루에 한 번 오는 우체부 아저씨의 빨간 자전거가 유일한 교통수단인 산골에서 사는 내가 도시아이가 되는 느낌이 들어 우쭐해졌다. 또한 내 속도 코티 분가루가 하얗게 화장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할머니와 부엌일을 하는 여자들이 그 인네의 흉을 보는 듯 하면 나는 눈을 흘겼다. 왠지 그녀는 내가 보호해 주어야할 것만 같았다. 엄마는 무슨 연유인지 내가 그 집에 드나드는 걸 나무라지 않았다. 내가 그 집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가끔 오시고 그 인네는 버선발로 달려 나가 아버지를 맞이했다. 아버지와 함께 주전부리를 먹고 있으면 정숙이네 어메가 나를 불러내어 우리 집으로 가라고 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어른들만의 룰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내 머리칼을 파마까지 해 주었다. 젓가락 같은 싸리 꼬챙이를 달궈서 양볼 옆의 머리를 휘감고 잠깐만 있어도 꼬불꼬불 파마가 되는 것이었다. 눈썹도 그려주고 입술연지도 발라주고 매일 코티분을 발라 주었다. 그 복장으로 노는 것도 지겨울 즈음에도 아버지는 이제 오시지를 않았다. 큰들의 우리 논이 대여섯 마지기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할머니가 한숨을 쉴 즈음이었다. 오빠와 언니가 중학교엘 다니는 때이기도 했다. 우리 집 부엌에서는 엄마가 정성 들여 아버지 밥상을 차리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김인네는 내 머리칼을 빗어 주다가 말을 걸었다.
“너 인천이 어디 있는지 아니? 인천은 말이야 서울 옆에 있어. 가보고 싶지 않아? 바다도 있고 등대도 있다. 나랑 가면 다 보여줄게 가자. 나 따라 인천가자”
책에서나 봤던 바다가 진짜 있고 등대도 있다니 나는 호기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왠지 엄청난 큰일인 거 같아
“응 인네야 가보고 싶어 그렇지만 엄마한테 물어 보고 와서 말해줄게‘
“거기가면 맛있는 과자도 많고 기차도 있다. 내일 네 옷 챙겨 와서 나랑 가자“
그날은 집으로 오는 길이 참 멀게 느껴졌다. 나는 인천엘 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이것만은 꼭 엄마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어렵사리 손국수를 여러 장 밀고 계시는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나를 무릎에 앉히시곤 눈을 크게 뜨고 다짐을 받으셨다. 나직나직한 저음이 고함치는 소리보다 위력이 있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는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잘 들어라. 그 인네가 인천 가서 널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다. 내일부터는 절대로 그 인네네 집에 가면 안 된다”
그러시더니 사랑방의 할머니에게 달려가서 뭐라 뭐라 말씀을 드리는 것이었다. 엄마의 말씀을 들으신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아 끄셨다. 할머니도 절대로 코티분내가 나는 그 집엘 이젠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인네가 보고 싶은 것 보다 코티분이 바르고 싶어져서 몇 번이나 할머니를 졸랐지만 허사였다.
그 후 내가 부엌과 광을 오가면서 들은 얘기로는 그 인네가 마을을 떴다고 했다. 몇 번이나 보따리를 싸서 아랫마을까지 아버지의 배웅을 받고는 갔다가 되돌아오다가 드디어 영원히 가버렸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나를 감시하는 눈은 없었다. 나는 정숙이네 뒤란의 침침한 그방엘 가 보았다. 몇 가지의 가재도구가 보였다. 책보를 덮어 놓았던 그녀의 화장대 위에 코티분 통이 있었다. 내가 올 줄 알고 그녀가 남기고 간 것이었을까? 얼른 치마 속에 감추었다. 디딜 방앗간에서 몰래 뚜껑을 열다가 그만 다 쏟아버렸다. 꼭 콩가루 같이 생긴 분가루가 어찌 그리도 가비얍게 흩어지던지.
지금도 그 분 냄새가 가끔 그리워진다. 그 인네는 그 길로 바다와 등대와 기차가 있다는 인천으로 가긴 했을까?
송홧가루가 길섶까지 노오랗게 물들인다. 산책길에 그 가루가 꼭 그 시절의 코티분가루 같아 코를 흥흥대었다. 안방까지 날라든 송홧가루를 닦아 내다가 그 시절 그녀가 몹시 그리워진다. 그때 내가 그녀를 따라 인천으로 갔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좋은 글 올려 주셔서 즐감했습니다.
이런 찡한 글을 읽으면, 나도 써야지. 하는데 아직도 못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