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한 자루 / 맹난자
가난한 침선공이 바늘을 의지하듯 나는 평생을 붓 한 자루에 기대어 살아왔다,
미술이나 음악처럼 비싼 재료나 고급 악기가 요구되지 않는 문학은 다만 붓 한 자루면 가능했기 때문이다. 돈이 들지 않는 독서 또한 고단孤單한 내게 유일한 피난처이며 솟대와도 같은 성역이었다. 생의 수혈輸血을 나는 그곳에서 공급받았다.
책과 붓 한 자루, 내 삶의 기둥이었다. 어느 결엔가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되어, 수없는 봄 가을을 지나 이젠 낙하落下 직전의 한 그루 나무로 버티고 있다. 그동안 부질없이 쏟아낸 내 그들은 어떠한가? 타인의 고통을 배제한 자기만족의 감정유희가 아니었던가. 내세울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의 지적 허영심으로 포장된 자기 위선은 아니었던가? 만년에 이르러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보게 되는 것이다.
문학은 인생의 등불이다. 어두운 밤,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하며 넘어진 자를 위해 주저없이 손을 내미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손길이어야 한다.
내가 쓴 글이 남을 기쁘게 한 적이 있는가. 삶의 용기를 준 적이 있었는가? 내 붓은 무엇을 써 왔는가? 그러다 춘원(이광수)선생의 「붓 한 자루」가 떠올랐다.
"붓 한 자루, 나와 일생을 같이 하련다(…). 쓰린 가슴을 부듬고 가는 나그네 무리. 쉬어 가세. 내 하는 이야기 듣고나 가게."라고 썼던 춘원 선생의 붓은 일본의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에게 가야마미츠로香山光郞라는 창씨개명으로 이런 편지를 썼다.
"…내 자식 되어다오라는 선생의 말을 들은 지 5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선생의 간곡한 부탁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중략)이제부터 조선의 올바른 민족운동은 황민화의 한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일강제병합이 되었을 때 『매천야록』을 쓰고 있던 황현 선생은 그 붓으로 "나는 죽어야 할 아무 의미가 없지마는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쯤 죽지 않으면 얼마나 애통한 일이겠는가?"라고 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하직하였다.
붓은 그 자체가 하나의 정신이다. 붓은 자신의 언행을 욕되게 하지 않는 선비, 양반, 학자, 작가를 지칭한다. 『걸리버 여행기』를 썼던 조나단 스위프트는 아일랜드를 지배했던 영국 정부의 정책을 통렬하게 공격했다. 특히 착취적인 화폐정책을 과녁으로 익명의 서한을 날렸다. 영국정부는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으나 끝내 그 정책을 포기하고 말았다. 펜이 칼보다 무서운 이유다.
우리의 삶을 외면한 문학활동은 유리벽 안에 갇힌 목소리다. 말이 인간의 표현인 것처럼 문학은 시대정신의 표현이다. 문학은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높은 인문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족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민족개조론」을 썼던 분이 어째서 자기 서재에 일장기를 걸어 놓고 조석으로 목례를 하였는가? 춘원은 일본이 제공한 온갖 특혜와 달콤한 미끼에 붓이 흔들렸던 것이다. 이利냐 의義냐? 내 마음의 천칭天秤에게 묻는다. 그때 2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공자의 말씀이 들려왔다. "시 300편에 사무사思無邪."
문학에 어찌 삿된 것이 있겠는가. 더구나 수필은 비허구적인 문학이어서 언행의 일치가 요구된다. 삶과 글이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 진솔한 자기 고백과 성찰, 이것은 수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 시인의 붓이 기록한 순수의 맹세다.
왜 인간인가? 물음에 답하는 통렬한 자기 성찰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내 붓이 쏟아낸 말들은 아궁이에 넣어도 아깝지 않ㅇ느 하나마나한 말들이었다. 말 이전에 자연이 있었고, 자연의 그 침묵 속에서 나 또한 편안해지고 싶다. 이제는 물 속의 흙인형처럼 녹아 자취마저 없고 싶다.
붓 한 자루, 내 그림자여! 잘 가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