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한 항생제 / 류인혜 

 

 

 

언제부턴가 명치끝이 무겁고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위가 아프다는 말을 듣자마자 수면 내시경을 권했다. 그래서 쉽게 진단이 내려졌다. 촬영된 화면은 내가 보기에도 이상했다. 위궤양이 심하고, 십이지장이 온전하지 않다 했다. 나이가 들어 보여 신뢰가 가는 의사 선생님이 위장약을 팔 주 동안 먹으라고 했기에 그 말을 따랐다. 환자가 온전히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의사다. 의사의 말에 의심이 간다면 병을 고치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먹기 힘든 약을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었다.

 

위장약의 복용이 끝나자 다음에는 남아 있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cobacter Pylori)균은 위궤양을 일으키는 균이라서 박멸을 해야 된다고 하였다. 의사 선생님의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표어나 포스터에서 흔히 보던 낱말이라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인데 박멸이라니 정말 무시무시한 세균을 몸 안에 감추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처방전을 받아서 간 약국의 약사는 한술 더 뜬다. 이 약은 강력한 항생제가 포함되어 있어 위에 부담이 되니 그렇더라도 참고 먹어야 된단다. 그래선지 약을 복용하던 2주 동안에는 정말 환자처럼 지냈다.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박멸의 전쟁은 이라크 전쟁보다 더 실감이 났다. 강력한 항생제는 몸 안의 다른 세균까지 없애는지 하루하루가 몸이 녹초가 될 만큼 힘겨웠다. 약이 필요한 것을 지금까지 무시해 왔기에 약에 대한 전투력이 약한 잡균의 서식지도 박멸의 이름으로 초토화되나 보았다. 오래 머물렀던 곳을 떠나는 균들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강력한 항생제는 사람의 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신문을 읽을 때나 TV로 뉴스를 볼 때, 상식 밖의 이상한 사회현상을 접하면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불신과 부패와 거짓과 오만과 사치와 술수가 가득한 모든 곳에 적용되는 항생제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하러 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존경받는 지도자라는 단어였다. 온 국민이 마음으로 존경할 수 있는 범국민적인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지, 그런 꿈같은 일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제각기 아비 없는 자식처럼 살아가기로 작정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는 신뢰할 지도자라는 결론을 얻었다.

 

정확한 시기는 잊어버렸지만 신문의 한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국민(초등)학교 저학년 때가 맞을 것 같다. 어느 날 신문에 큰 활자로 별이 떨어졌다는 말이 시선을 끌었다. 별은 밤하늘에 높이 떠서 반짝이는 것인데 어떤 별이 왜 떨어졌는지 너무 궁금해서 식구들을 붙잡고 물었다. “해공 신익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대답은 더욱 이상했다. 신문의 사진은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든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광경이었는데 사람이 죽었다면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되지 도리어 땅으로 떨어지다니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아득히 하늘에 있는 별이 되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바라볼 수 있는 행복함을 주는 존재란 어떤 힘을 가져야 될까.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신뢰하여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분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여러 경구들은 살아오면서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특히 아이를 키울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운 일곱 살 지나고, 미친 열 살이 지나야 온전한 사람 구실을 한다고 하셨기에 아이들이 잘못을 하더라도 수용하며 열 살이 되도록 인내하여 기다릴 수 있었다. 길 가다가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강요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열 살이 되도록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열 살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가 아닌가 싶도록 도처에 공동체가 지녀야 될 기본적인 도덕심도 서로에 대한 공경심도 사라져 간다. 이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가 될 올바른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은 아닐 것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