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리 / 김정화
하늘에 빗금이 그려진다.
수리새 한 마리가 태양을 향해 솟아오른다. 바람에 커다란 날개를 내맡긴 채 가끔씩 물결치는 몸짓은, 인간이 아무리 많이 가져도 자신보다 행복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문맹을 깨쳐 만물을 다스린다하나 두 발로 무겁게 디디는 한, 마음껏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다. 새들은 가벼운 깃털의 흔들림만으로 하늘을 온통 차지했으니 물질로 행복을 저울질 할 수 있을까.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새들의 비상이 부럽기만 하다.
더 가까이에서 새들의 군락이 보고 싶어졌다. 서쪽으로 제법 기울기는 했으나 남은 햇살은 충분했다. 고속도로를 여기저기 달리면서 지나쳤던 산들을 곰곰이 생각하니 새들의 모습이었다고 여겨진다. 단풍으로 불이 붙은 늦가을 가지산은 청둥오리들의 군무였고, 동학사에서 본 겨울 계룡산은 타버린 재로 덮인 양 금방이라도 휘파람새가 나타날 듯하였다. 지난 해, 차창 밖으로 지나쳤던 화왕산은 잔설로 물기 머금은 한 마리 도요새 마냥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산처럼 들도 새를 맞이하는 뜨락임은 마찬가지다.
인적이 드문 우포늪은 자연의 소리로 광활하다. 바싹 마른 갈대잎은 겨울바람으로 몸을 비비고 작은 물떼새들은 종종거리며 자맥질하고 있다. 고개를 낮춰 귀 기울이니 늪에 서식하는 수생식물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저 멀리 쪽지벌에서 '홋호홋호'하는 고니의 외침이 울려오면 기러기떼는 '과우우우'답하며 깃털을 털기 시작한다. 박자 없이 소리치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승전보를 안고 오는 군사들의 함성소리를 닮았다. 닫힌 마음에서 모처럼 시원스레 회오리바람이 인다.
울음소리. 나도 저 새들처럼 한때 무척 소리를 질렀다. 격정에 사로잡혔을 때, 실패에 대해서 발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고함치고, 억울함에 대해서는 분노로 대들었다. 뜻밖의 이별에 대해서는 세상을 향해 통곡을 하였다. 그 시간들도 세월에 묻히는 운명을 지녔는지, 이제는 숨비소리가 가슴에서 낮게 들려올 뿐이다.
탐조. 서두르지 않고 지그시 겨울 철새들을 바라본다. 새를 살피는 일이란 원시시대를 만나는 길이다. 나는 두 손에 갈돌을 든 유목인이 되어 중생대 시기에는 호수였을 늪둑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청둥오리 떼들이 귀향을 위해 몸을 키우느라 뻘 속에서 먹잇감을 찾고, 풀씨를 찾는 쇠기러기들은 발자국을 부지런히 남긴다. 가끔씩 무리에서 벗어난 서너 마리가 북녘 고향을 응시하기도 한다. 새를 살피다 보면 내 발이 오래 그 자리에 박혀있으면 싶다.
출현. 은빛 털을 가진 큰고니 한 마리가 갈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늙은 소나무 사이로 비친 석양을 등에 업고 외발로 곧추 선 자세에서 생명의 기운을 전해 받는다. 저 새도 혹한기를 피할 시베리아를 꿈꾸겠지. 상처로 얼룩져도 돌아갈 고향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한 삶이다 싶다. 그러지 못한 처지라면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휑한 바람이 일게다.
두어 달 전의 일이다. 새내기 운전자가 되어 이십 년 만에 고향 마을을 찾았다. 예전의 마을이었던 들판에는 넓은 도로가 뻗어 있고, 유년시절의 사람들과 동네 집들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둑방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니 조그만 집터가 나왔다. 나온 게 아니라 외딴집 흔적을 가까스로 찾아낸 것이다. 흙덩이 사이로 땅을 밟아보았다. 마당에 그림자를 드리우던 무화과 잎사귀가 흔들리는 듯한 환영이 비쳤다. 가끔씩 얼룩무늬 비비새가 쉬어가던 작은 개울과 닭 무리가 놀던 갈대숲 자국도 조금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소리들은 온데간데없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소멸은 초가집 추녀에 달린 제비집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 어미 새는 새끼 제비를 위해 좁은 제비집에 들어가지 않고 전깃줄에 앉아 비를 흠뻑 맞았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비가 오면 늘 부엌으로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퀭한 제비 모습에 철없는 자식들만 남겨두고 이십 년 전에 떠난 부모님이 겹쳐지면서 가슴이 후루룩 비로 젖는다. 부모가 되는 일은 온 몸을 적시는 희생이라던 어머니의 말이 자식을 키우면서 비로소 제비소리와 함께 떠오른다.
갈대 사이로 보이는 세상이 편안하다 하면서 두어 시간을 앉아 있었다. 겨울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여린 석양이 따스하다 느끼면서, 구름 사이로 훠이훠이 나는 저 새들을 닮고 싶다 하면서, '엘 콘도 파사'를 조용히 흥얼거려 본다.
인간은 날지 못하는 새다. 마추피추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대 잉카인들도 자신이 새였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살던 곳을 잃고 쫓겨난 콘도르처럼 나 또한 겨울철새의 무리에서 뒤처진 한 마리 새가 아닐까 싶다. 씁쓰레한 마음을 피하듯 고개를 내리니, 물 속에는 깃털을 드리운 내 그림자가 이미 반쯤 흔들리고 있다.
늪 가장자리에서 겨울 풋바람이 매섭게 밀려온다. 얼마 후면 저 새들도 귀향할 게고 새 울음으로 충만한 저곳은 한동안 정적의 늪으로 남을 게다. 하지만 봄이 되면 남쪽에서 날아온 도요새들이 두런거리며 한철 집을 지을 것이다. 빛살을 맞은 연록색 매자기 군락 안으로 논병아리들도 오종종 몸을 드러내고, 왜가리가 골풀 사이로 의연한 자태를 한껏 뽐내면 다시 늪은 활기를 돋우리라.
늪은 매년 침묵으로 새들을 기다린다. 불현듯, 내 고향도 언제나 그곳에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발걸음이 급해진다. 멀리 고향마을에서 연기 같은 훈김이 뭉클 불어오는 듯하다. 겨울 저녁의 우포늪이 다시 활기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제 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