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속 엣세이데이(EssayDay)
강 화 식
가을 냄새가 짙어지며 뭔가 허전해질 때쯤 엣세이 데이가 찾아왔다. 그 동안 몇 년을 길 없이 머뭇거리며 내가 그린 그림속에서만 살다가 오랜만에 그 속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좀더 유연한 사고를 갖겠다는 다짐도 했다. 가방을 들고 주춤주춤낯선 길을 찾아 발자국을 옮기는데 주최측의 반가운 인사 멘트가 들리고 낯 익은 문우들의 얼굴도 보이기 시작했다.
시를 쓰는 나는 그동안 재미수필가 문학가협회의 열정적인 모임을 부러워했었다. 물론 임헌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한편으로는 수필가들로부터 열정의 기를 받기 위해서도 왔다. 행사 임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많은 자극을 받으며 강의에 임했다.
지금까지 세 번째 교수님을 뵙지만 전에는 느껴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말해주는 것 같은 흰 회색의긴 눈썹. 쌍꺼풀이 약간 내려가 선함이 번진 눈. 범상치 않은 눈썹이 착한 눈을 지켜주는 듯 하다. 그리고 세월을 되돌린 듯반짝거리는 복숭아 빛 두 뺨에서 청년의 신선함을 준다. 이렇게 묘한 대조를 이룬 교수님의 얼굴에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마치 타임머신을 보는 것 같다.
1)문학은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 문학은 인간의 운명을 바꿈. 2)문학이란 무엇인가 -- 문학은 자기 삶의 아픔과상처를 치료 하기 위한 분비물. 3) 문학과 인간학 -- 문학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 작업(인간의 본능). 4)윤리의식과 문학 사상, 정숙과 불륜의 틈새에서 -- 문학은 새로운 윤리를 창조해 나가야 함. 5)신앙과 문학. 이렇게 다섯 강의를 단비 맞듯 흠뻑 맞았다. 그리고 연일 이어지는 화려한 날씨 속에 화려한 알곡 같은 말씀들을 (특히 인문학과 신화에 대한 강의는 압권이었다.)차곡차곡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필 쉽게 쓰기’ 까지 주옥 같은 이틀간의 강의에 모두가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었다.
“시인이란 세계의 인정받지 않은 입법자(Poets are the unacknowledged legislators of the world)”, “시인은 세상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대신 울어 주는 것” 을 강조하신 글과 말씀을 평생 기억하고 교수님의 색깔과 건강도 그대로 있길 간절히 바라며 문학 기행을 떠났다.
죤 스타인백 기념관(National Steinbeck Center)에 가서 그가 남긴 명작들을 떠올리며 잠시 문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봤다. 살리나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레드우드(Henry Cowell Redwoods)로 떠났다. 기차를 타고 레드우드의 절경을 품으며탁해진 눈과 마음을 씻었다. 거대한 나무에 엄지 손톱만한 솔방울을 보면서 자연에도 여지없이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치 행글라이더를 타고 가을의 끝자락을 몇 일간 날아 다니다 온 느낌이다. 엘에이서 하루 밤의 새로운 감성을 쌓았던, 시애틀에서 온 신순희, 박미리씨가 벌써 궁금해지는 일상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다시 추억을 충전하고 돌아온 힘으로 익숙한 통증과 외로움을 견딜 것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부실한 나한테 콩나물 밥을 손수 들고 호텔방으로 찾아온 회장님과 그 외에도 힘써 주신 임원진들을비롯 운전까지 해주신, 화진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2013년 11월)
성영라 13.11.28. 06:46
강화식 시인, 감사합니다!
이번에 세미나부터 문학기행까지 함께 해주시고, 후원의 마음도 얹어주시고.......
함께 가는 문우의 길, 따뜻하지요~~~? ^^
┗ 빛나리 13.11.29. 05:09
고맙습니다. 주저하고 머뭇거리지 않게 모두가 도와줘서 좋은 추억과 인연을 간직하게 되었어요. 행복 했었습니다. (강화식)
김영강 13.11.28. 12:11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좋은 시간 가지셔서 참 기쁩니다.
한데, 임헌영 선생님을 어찌 그리 잘 묘사하셨지요? 그 부분에서는 저절로 미소가...ㅎㅎㅎ.
┗ 빛나리 13.11.29. 05:20
성모 마리아는 며느리가 없어서, 이브는 시어머니가 없어서 제일 행복한 여자라고 합니다. 저는,저를 걱정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살 맛이 납니다. (강화식)
신순희 13.11.28. 13:52
강화식 시인님, 궁금했는데 반가워요.
우리가 젊었더라면 더 많은 문학 이야기로 밤을 꼬박 샜을텐데 아쉽게도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 했지요.
건강하시죠?
'꿈'으로 쓰는 수필은 아직도 진행중인가요?
┗ 빛나리 13.11.29. 05:24
신순희씨의 "목소리" 자기 징벌적 불안이 조금 보이지만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소설로 써도 좋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밤을 새우며 깊은 문학 얘기를 나누지 못한게 저도 아쉬워요. 두 분 다 독서량이 만만치 않으니 곧 일을 내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미리씨의 독서 의식에 박수를 보냅니다. '꿈' 이야기,비록 이번에 합평은 받지 못했지만 계속 쓰고 있습니다. (강화식)
성민희 13.11.29. 00:02
강화식 선생님.
멋진 후기 올려주셨네요. 고마와요.
작은 배려와 사랑에도 이리 감동하시니 그 마음이 참 곱습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감동의 여운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고마와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더 큰 사랑을 주고 싶은게 모두의 마음이겠지요.
이번 에세이데이를 통해 진심으로 도와준 사람들, 특히 강화식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이
제게는 또 다른 보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참 축복 받은 행사였습니다.
┗ 빛나리 14.03.29. 15:22
"기분 전환" (김소월) 땀, 땀,여름 볕에 땀 흘리며 호미 들고 밭 고랑 타고 있어도. 어디선지 종달새 울어만 온다. 헌출한 하늘일 보입니다요, 보입니다요. 사랑, 사랑, 사랑에, 어스름을 맞춘 임 오나 오나 하면서, 젊은 밤을 한소리 조바심할 때, 밟고 섰는 다리 아래 흐르는 강물! 강물에 새벽 빛이 어립니다요, 어립니다요...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소월 시인의 기분 전환이 생각나 올렸습니다. (강화식)
조옥동 13.11.29. 13:21
강화식 시인,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재미수필가협회 3일간의 문학강의에 한시간도 빠지지 않고 이어서 문학여행을 마치고 이처럼 맑은 표정으로 글을 올려 주어 정말 기쁩니다. 내 마음속으로 시인의 건강을 좀 염려 했었는데 문학에 대한 열정이 몸도 지켜준 것 같아요.
빛나리 14.01.01. 15:19
고맙습니다 조옥동 선생님!!! 선배님들께 이렇게 늘 걱정을 드리는 몸을 갖고 있어 부끄럽게 생각 합니다. 그렇지만 좋아서 하는 일은 가끔씩 통증을 잊게 해주기도 하지요. 아주 대학교 교수이면서 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저렴한 투자가 1. 쓰고 이야기 하고 2, 책 읽고 3, 여행을 해야 함 이라고 말했었지요. 비록 환경이 힘들더라도 가장 저렴한 투자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강화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