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교수의 문학 강의를 듣고

 

                                                              이경구 (시애틀 거주)

 

 

   재미수필문학가협회에서 ‘제1회 미주 Essay Day’를 제정하고 ‘2013년 가을 문학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 있는 로텍스 호텔에서 11월 15일부터 11월 17일까지 진행되었다.

   세미나 첫째 날 저녁에 성민희 회장은 개회식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요지의 개회사를 읽었다. 이 개회식에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은 물론 동쪽 워싱턴 디시, 알래스카 주, 서북쪽 워싱턴 주의 수필 애호가들이 참가하였다.

 

      “Essay Day는 사흘 간의 세미나와 이틀 간의 문학 여행, 총 5일간 진행되며, 한국의 저명하신 문학

   평론가 ‘임헌영’ 교수께서 ‘문학과 인간의 운명’이라는 심도있는 강의를 들려 주시게 됩니다.······

      한결 같던 한국 바라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이민자의 문학,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이곳 미국에서 미

   주 문인들이 함께 하는 장을 마련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진정한 이민자의 문학’이란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따라 외쳤다. 로스앤젤레스라는 땅은 우리들의 문학을 꽃피울 환경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교민이 살기에 좋은 터이기 때문이다. 회의장 밖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이어서 보통 키에 아담한 체격을 가진 임헌영 교수가 참가자 앞에 나타나 '제1강 염라대왕을 위한 판타지

―문학은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시작하여 “저는 그렇다고 믿습니다”라는 말로 긴 시간의 강의를 끝냈다. 참가자들 사이를 오가며 다음과 같은 말로 운을 뗐는데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은 누구나 생각하는 존재. 문학은 현세에서 모든 인간을 나체화시켜야 하는 작업. 무덤

   까지의 비밀을 현세에서 파헤치는 임무. 그래서 문학인은 현세의 염라대왕, 그러나 형벌 아닌

   용서와 축복을 내리는 염라대왕."

     

   괴테는 “위대한 작품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으면서 우리를 변화시킬 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물 흐르는 듯한 목소리로 연회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를 우스갯소리로 웃기며 직접 쓴 교재를 가지고 강의를 진행하였다.

    둘째 날 아침 나절에 임헌영 교수는 ‘제2강 마신의 아내의 사랑법―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의을 하였는데,『천일야화(Arabian Nights)』에 나오는 이야기며 플라톤의 『국가론(Republic)』에 쓰여 있는 학설이며  문학의 정의에 관한 설화와 이론 중에서,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가 지었다는 ‘대범물부득기평즉명 (大凡物不得其平則鳴)’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무릇 존재가 그 평안을 얻지 못하면 울게 된다는 뜻이란다.

   도시락 점심 식사가 끝나자, 임헌영 교수는 ‘제3강 아킬레우스의 분노―문학과 인간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였다. “명작이란 누구나 만나고 싶은 인간상을 형상화하는 작업”이라는 첫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또 톨스토이는『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불행의 모양이 나름대로 다 다르다”라고 했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 네 번째 강의 제목은 ‘제4강 안티고네는 왜 무죄인가―윤리의식과 문학 사상, 정숙과 불륜의 틈새에서’인데, 교재 중에서 “우리들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의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시대를 비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Ours is essentially a tragic age, so we refuse to take it tragically.)”라는 말로 시작되는『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내가 읽은『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1958년에 미국의 한 출판사가 남근이며 자궁이며 성기의 이름을 삭제하고 다른 말로 바꾸어 간행한 것이었다. 미국에서 완본(unexpurgated edition)이 나온 것은 1959년의 일이다.  

   셋째 날 강의 제목은 ‘제5강 원숭이 재판―신앙과 문학’이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단편『두자춘(杜子春)』의 내용을 들려 주었다. 도사가 되기를 꿈꾸었던 주인공 두자춘이 도사인 철관자(鐵冠子)에게 고행을 수반하는 갖가지 테스트를 받은 뒤에 도사가 되기를 거절하며 “······무엇이 되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작정입니다.”라고 했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강의 제목은 ‘수필 쉽게 쓰기’이다. 오에 겐자부로 (大江健三郞)는 감나무의 어린잎이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광경을 관찰하고 ‘생애 첫 문학적 각성을 경험하였다’라고 하지 않는가. ‘관찰’은 내가 좋아하는 낱말이다.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글쓰기도 소개하고 "단일주제, 단일소재로 중심을 잡아 풀과 가위를 이용하여 글을 써 보도록 하자."라고 역설하였다. 한국 수필계의 원로인 윤오영, 피천득, 목성균의 수필도 소개하고 윤오영의「달밤」이 잘 되었다고 덧붙였다. 참가자가 앞에 나가서 자기 작품을 읽고 질문을 받는 개인 작품 합평회도 있었다.

   정오가 지나서 세미나가 끝나니, 불그레하던 임헌영 교수의 양볼이 좀 붉게 보였다. 희고 긴 눈썹 밑의 눈은 안도하는 빛을 띠었다. 문학 강의에 심혈을 기우렸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임헌영 교수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어떤 여성 문인은 "임헌영 교수 멋져!" 하고 소리쳤다.

   임헌영 교수는 ‘수필 쉽게 쓰기’에 대하여 강의할 때에 “기행문에는 주제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어색하게 들렸다. 기행문을 쓸 때에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나열만 한다면 개성이 있는 글이 되지 못한다. 기행문을 쓸 때에도 주제를 가지고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기행문 여러 편을 쓰다 보니, 기행문에도 주제가 있어야 함을 터득하게 되었다. 육십여 년 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산정무한(山情無限)」이라는 수필을 다시 읽고 기행문에도 주제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구인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엮은『중학생이 알아야할 수필』에는 「산정무한」이 실려 있다. 구인환 교수는 그 책에서 ‘이 작품은 기행문의 백미(白眉)’라고 하였다. 그 글에 대한 작품 해설은 다음과 같다.

 

      “이글은 대중소설가로 널리 이름을 날렸던 정비석이 금강산에 올라 그 승경과 

   유적을 보고 금강산의 정기를 기행 수필의 형식으로 쓴 명수필이다.······수필은 이와

   같이 삶이 약동하는 문장이 될 수도 있고, 조약돌에 흐르는 물과 같이 잔잔할 수도 

   있다. 더불어 이 글은 금강산의 정기와 같이 박력 있고 힘 있는 강건체의 문장으로

   글의 선명성을 부각시키고 있음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윤오영 수필가는 생전에『隨筆文學入門』이란 명저를 남겼다. 저자는「산정무한」수필 중에서 “산 전체가 요원(燎原)한 화원(花園)이요, 벽공(碧空)에 외연(巍然)히 솟은 봉봉(峰峰)은 그대로가 활짝 피어오른 한 떨기의 꽃송이다.······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짜면 물에 행궈 낸 빨래처럼 진주홍(眞朱紅)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라는 대목을 책에 게재하고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금강산을 유람하여 도중에서 단풍의 숲을 걸으며 묘사한 대문이다. 전체가 다

   단풍의 붉은 것을 극구 표현하려는 글이다. 그러나 금강산이 아니라도 단풍이 짙은

   산중 수림은 다 이럴 것이요, 단풍이 붉다는 것은 풍림을 걸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천어 만어가 겨우 단풍의 붉은 점밖에 그린 것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작자의 새로운 시적 발견을 찾을 수 없다. 사경(寫景)의 어려운 점이 여기 있다.”

 

   정비석의「산정무한」은 묘사문의 백미는 될지언정 기행문의 백미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글의 말미에 마의태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희로애락이란 표현도 있지만, 단풍의 정기에 눌리어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작자의 사생관(死生觀)이 담겼으면 한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에게는「여행에 관하여(Of Travel)」라는 에세이가 있다. 그 글의 서두에는 “Travel, in the younger sort, is a part of education; in the elder, a part of experience.”라는 말이 나온다. 교육에 도움이 되고 소중한 경험을 얻는 여행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래야 작자의 인품이 풍기는 기행문을 쓸 수 있지 않겠는가.

   임헌영 교수의 문학 강의는 나에게 동서 고금의 문학에 눈을 뜨게 하고 수필에 대한 안목을 넓혀 준 명강의였다. 임헌영 교수의 강의 교재는 좋은 수필 교재를 찾기에 갈급(渴急)해 하는 재미 문인들에게 수필 쓰기의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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