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열차 맨 뒤 칸에 서서
지나온 시절의 영사기를 돌리면

쏘아 올린 포탄에
아이들의 신발이 멀리 날아가고

산불에 집을 잃은 새들의
완전한 멸종을 슬퍼하는 이들이
저마다 작은 행진을 벌이고 있어요

 

이제는 작은 것을 말하고 싶어요
(하략)



―주민현(1989∼ )

 

세라 페니패커의 ‘팍스’라는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전쟁 중이야. 인간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어. (중략) 잡초도 자라지 않아. 토끼하고 뱀, 비둘기하고 쥐, 전부 다 죽었어.” 전쟁은 인간의 싸움 따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전쟁은 모든 것의 죽음이다. 사람도 죽고, 동물도 죽는다. 땅도 죽고, 강도 죽는다. 지상이 지옥이 된다니 두렵기 짝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쟁을 잊을 수 없다. 지구상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인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꽃 없는 묘비’는 전쟁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포탄 대신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싶다. 우리는 멸종 대신 기쁨을 이야기하고 싶다. 거대한 집단과 집단의 힘겨루기 대신 저녁의 풍경을 고요히 바라보고 싶다. 시인은 전쟁을 잔혹하게 묘사하지 않고, 전쟁의 반대에 있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시인이 찾아주는 ‘작은 것’들을 헤아리다 보면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평범한 일상이 새삼 소중하다. 우리에게는 ‘가느다란 기쁨’이 언제고 필요하다. 이것이 비단 우크라이나만의 바람일까.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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