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없다 / 정성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한우를 파는 식육식당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한우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그 가게의 벽에 적혀있는 글귀였다.

"한우 사주는 사람을 주의하세요. 대가 없는 한우는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입니다."

한우의 가치를 일깨워 주면서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는 글귀였다.

그걸 보며 나는 고3 때의 담임선생님을 떠올렸다. 졸업 한 달 앞둔 우리에게 선생님은 평소보다 목소리를 높여 말씀하셨다.

“누가 이유 없이 비싼 밥을 사주거나 고가의 선물을 줄 때는 다 목적이 있는 거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마라. 세상에는 공짜가 없단다."

짧은 말이었지만 분명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실감했다. 아버지 기일에 학교 일직이 걸려서 선배 교사에게 일직 날짜를 바꿔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어떻게 고마움을 전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퇴근 후에 자신의 차로 교외에 나가서 밥을 먹고 오자고 했다. 사십 대 남자 교사와 초임 여교사가 단둘이 밥을 먹으러 멀리 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건 곤란하고 제가 선생님 일직을 두 번 서 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어~" 하며 말을 길게 빼더니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부탁은 빚이 되었고, 빚은 덫이 되어 돌아왔다.

공짜를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에게 다가온 공짜에 대해 잠시 주저하거나 개운치 않음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나눠주었다. 그 돈을 나눠준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 주민센터에 2차 지원금은 언제 주느냐는 문의가 빗발쳤다. 몇 차례의 재난지원금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국가부채를 크게 늘려놓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 세대와 우리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빚으로 남았다. 게다가 후유증까지 생겼다. 땀 흘려 일하기보다 그럴듯한 서류를 꾸려 나랏돈을 타낼 궁리를 하거나 남의 돈을 가로챌 기회를 엿보는 사람이 늘었다. 이렇듯 공짜는 몸을 써서 일하려는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내가 자랄 때는 다들 어렵게 살았다. 한 반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는 몇 되지 않았고 나머지 애들은 거의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그래도 우리는 그러려니 했다. 그 시절로부터 겨우 오십 년이 지났을 뿐인데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서울 강남의 고급 아파트 한 채가 집주인에겐 자부심이 되면서 그의 자녀에게는 하나의 신분이 되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만든 '수저 계급론'까지 나돈다. 몹시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면 흙수저, 그리고 은수저, 금수저를 거쳐 최상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면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이런 말이 나도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못할 때, '나는 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생각을 스스로 떨치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다. 흙수저로 출발했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재계의 CEO가 된 인물을 보면, 삶이란 '개척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번쩍이는 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도 문제다. 늦둥이 아들을 둔 지인이 있는데, 아들이 하도 대학을 다니는 둥 마는 둥 하길래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 계획인지 물었다고 한다. 아들의 대답은, “아빠의 건물 중 하나를 넘겨주면 그거 팔아서 세계 여행이나 하며 살고싶다."고 하더란다. 더는 그 집의 재력이 부럽지 않았다.

시간도 일을 한다. 공짜를 기대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신의 일에 몸과 마음을 쏟다 보면 반드시 보람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삶에는 거저 얻어지는 게 없으니 오히려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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