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새 / 조미순
고동색이 바림된다. 머리에서부터 꼬리에 이르자 밀색으로 고인다. 몸에 물결 무늬가 어룽진 검지손가락만 한 녀석을 보고 있다. 마치 책꽂이에 붙어버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일까.
집 앞 산을 오르다 샛길로 접어들었다. 망해사 뒷마당과 통하는 길이다. 간밤에 장대비가 유리창을 때리고 우릉우릉 몸부림친 바람의 흔적이 산길에 낭자했다. 어지럽게 흩어진 나뭇잎과 동강난 나뭇가지들이 발에 툭툭 걸렸다. 승탑지 방향으로 몸을 틀었을 때였다. 저만치 계단 입구에 새 한 마리 앉아 있었다. 탁, 탁 발소리를 내며 다가서도 움직임이 없었다.
‘ㄴ’자 모양의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이게 왜 새로 보였을까? 이리저리 살피다 가방에 넣었다. 조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나무 속에서 새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귀가 짧은 쪽은 머리로, 긴 쪽은 몸통을 삼으면 되겠다는 그림이 그려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십여 년 연필 깎던 실력을 발휘할 기회였다.
내 안에도 새가 있다. 젊은 시절, 남편의 실직과 방황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월세방을 전전하며 약값조차 마련할 수 없는 빈곤에 떨었다. 정신적 위안처라도 찾고 싶었다. 그러다가 주민센터에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돌쟁이 딸은 업고, 두 살 터울의 큰딸 손을 잡고 매주 그곳에 드나들었다. 절반도 못 읽고 책을 반납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잠시라도 소유할 수 있음은 위로가 되었다. 다독상으로 국어사전을 받았다. 아마 그즈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글을 끄적이기 시작한 것이.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방바닥에 엎드린 채 일상을 그려냈다. 남편 직장에서 사원 가족 공모전을 할 땐 그걸 준비하느라 머릴 싸맸다. 밤새 문장과 씨름하다 고개를 들면 흩어진 원고지가 시간의 발자국이 되어 있었다. 마구 뜯어내 나뒹구는 미완의 문장들. 어린 새의 서툰 날갯짓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펜을 놓고 싶지 않았다. 서툴다는 건 다듬어져 가는 여정의 다른 표현이었으므로.
나뭇가지에 칼을 갖다 댄다. 송진 때문인지 칼질이 어려워 진땀을 뺀다. 손끝에 힘을 주다 보니 어떤 부분은 필요 이상으로 깎여 나간다. 몸통을 다듬을 때는 산고를 겪는 어미새가 된 기분이다. 깎아낸 흔적을 사포로 문지른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니 제법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름을 지었다. ‘소나무 송松’자를 풀어 쓰니 ‘木’과 ‘公’ 이 되었다. 상대를 부를 때 성씨에 ‘공’자를 붙여 부르는 것처럼 ‘목공’이라 칭하자 녀석은 ‘목공새’가 되었다. ‘공’은 귀하고 높은 신분을 상징하니 이름 하나로 품위를 더한 격이다.
모 문예지에 완료 추천되었다. 스승도 동인도 없이 혼자 문장과 씨름한 결과물이라 벅찬 선물이었다. 내 글이 활자화되어 책에 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어쩌다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저절로 어깨가 올라갔다. 자랑하고 싶어 입이 간지러웠다.
그러나 뿌듯함도 잠시였다.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 나름 퇴고 한 작품을 다시 보면 쓰는 동안의 조바심까지 행간에 고였다. 형상화는 송진처럼 찐득거리고, 의미화는 옹이처럼 우툴두툴했다. 구겨진 원고지가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아이들 학원비 지출이 많아 방문교사 일을 하게 되었다. 집집이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몸이 고단해질수록 내 안의 새도 무거워졌다. 마치 글쓰기에서 도망갈 핑계를 찾은 것처럼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열다섯 해가 그렇게 흘렀다. 날개가 퇴화하고, 근육마저 굳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목공새와 눈이 마주친다. 혹여 새가 되고픈 바람 품고 있었냐고 내가 묻는다. 이 물음이 메아리 되어 내게로 돌아온다. 책상에 펼쳐놓은 습작 노트에 목공새 그림자가 얼비친다.
마음에 파문이 인다. 아무리 오래 갇혀 있었다 해도 제 본능을 숨길 수 없다. 새는 새다. 비상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언제가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개를 퍼덕일 목공새를 그려본다.
이탈리아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안에 형상이 갇혀있다고 믿었다. 그의 조각은 돌에서 대상을 꺼내는 작업이었다. 팔맷돌을 들고 골리앗을 쏘아보는 <다윗>은 대리석 폐석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돌가루를 뽀얗게 뒤집어쓴 미켈란젤로와 그렇게 마주한다.
나무 안에서 새를 본 나도 손을 베어가며 애쓴 보람이 있다. 목공새에게 시선이 머문다. 암팡진 날개가 부풀어 오르는 듯하다. 햇살이 비치는 탓이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펜을 든다. 습작 노트에 「목공새」라고 적는다.
문득 어깻죽지가 뻐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