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섶 / 배영주

 

 

몇 해 전 길을 가다 식물 파는 가게에서 관상용 머루 포도나무를 들여왔다. 알갱이가 앙증맞아 덥석 안고 왔는데, 넝쿨이 자라면서 옆에 있는 식물을 휘감아 자꾸 귀찮게 한다. 매번 줄기를 싹둑 잘라내어서인지 몸통에 이파리만 무성하고 열매 맺을 기미는 없다.

올해는 영양제를 듬뿍 주고 줄기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니 푸른 잎을 연거푸 품어낸다. 기댈 곳이 필요했던 줄기에 지지대를 받쳐 주었더니 덩굴이 섶을 휘감아 타고 올라간다. 이번 해엔 묵묵히 기다려 볼 참이다. 때가 되면 열매 맺을 날 있을 터이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오래되어 이곳저곳 아프다고 트집을 잡는다. 첫아이를 낳은 후 두 번의 유산 끝에 둘째가 태어나 뽈뽈 기어 다니며 자란 아파트다. 하세월 한곳에서만 살다 보니 지난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선뜻 이사하지 못하고 여태 머물러 살고 있다. 내부 수리를 염두에 두고 있던 차에 요즘 아파트 내부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여 모델하우스에 들렀다. 직원이 하도 친절하게 안내하기에 나는 마치 당장 계약이라도 할 태세로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견본주택 아파트 내부는 별천지처럼 보였다. 반듯하게 세팅된 모든 공간이 눈부셨지만 내 시선은 아늑하게 꾸민 별도의 서재에 머문다.

머리맡에 두고 자주 보곤 하는 책이 몇 권 있다. 그중 몇 권은 일본의 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인 와타나베 쇼이치의 책이다. 고서 수집가이자 장서가인 그는 방대한 장서를 갖춘 서재가 별도로 있다고 한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글을 쓰고 책을 집필했다. 그의 서재와 견줄 바는 못 되지만, 소박하나마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읽을 수 있는 정갈한 서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택전시관을 빠져나온다.

유리알처럼 맑은 새집에 너저분하게 들쭉날쭉 책이 쌓여있다면 보기가 거북할 것이다.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오래되어 책이 여기저기 좀 나뒹굴어도 무심히 지냈다. 그런데 모델하우스를 다녀온 후부터 발치에 차이는 책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버려야지 하면서도 쌓아두기만 했던 책들.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며 책과 눈싸움을 벌인다.

누구나 책장의 책을 정리하고 버린 경험이 한 번쯤 있었으리라. 아이를 위해 사다 모았던 여러 종류의 책을 버린 이후론 책을 버린 적이 없다. 여러 해 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언젠가 쓸모가 있지 싶어 창고에 쌓아둔 책이 결국 버림치가 되었다. 질끈 동여맨 뭉치를 풀어본다. 금방이라도 '네'라고 대답할 것 같은 출석부 여백엔 '눈동자가 커다란 학생', '미소가 예쁜 학생' 등 빽빽하게 적어놓은 메모가 꼬물대고 있다. 과거의 환영에 미소를 보낸다.

송곳과 드라이버가 쓸모가 다르듯, 여태 내가 사들인 책의 용도가 각기 달랐다. 영어 관련 도서들은 주로 생활 유지의 셈법이 얽혀 있었고, 마음을 다독일 목적으로 산 것은 인문학책이다. 문학 단체로부터 보상 없이 넙죽 받아 무더기로 쌓아두었던 책도 있다. 책이 넘쳐나다 보니 건성으로 훑어보는 폐단이 생겼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더니 빈말이 아닌듯하다. 공짜로 받은 책을 들춰보니 밑줄 친 흔적이 없다. 건성으로 읽었다는 생각에 미안함마저 든다. 반면에,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전공책과 대학에서 강의했던 책엔 빨간 밑줄과 삐뚤빼뚤 악필로 적은 메모가 곳곳에 유영하고 있다.

버리지 않고 책장에 남겨둔 책을 훑어보니 대부분 문학책이다. 나를 버티게 해 주었고 앞으로도 내가 기댈 섶이 될 책이다. 가족의 건사를 위해 쉼 없이 일을 했으나, 정작 내 몸 돌보는 일엔 소홀했다. 쪼맨한 몸뚱이 안에 뭔 놈의 혹들이 그토록 악착같이 기생하고 있었을까. 위험 직전의 육종肉腫이 제거 된 후에야 질주만 하던 일을 줄였다.

오랜 세월 두꺼운 책과 씨름하던 둘째 아이의 책도 차마 버릴 수 없었다. 곳곳에 포스트잇이 붙어있고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해진 법과 관련된 책들을 정리한다. 수시로 코피가 터지고 피곤함에 지친 아이를 위해 어미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챙겨주고 마음을 다독여 주는 일이었다. 소낙비 쏟아지는 날엔 우산을 들고 독서실 문 앞에서 마냥 서성였다. 늦은 밤, 맥없이 돌아오는 둘째를 기다리던 숱한 날이 지나갔다. 책 섶에 기대어 힘겨운 공부를 하던 둘째가 청운의 길로 들어섰다. 참수리 목 부분의 형평, 공평을 나타내는 저울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바른 잣대로 잘잘못을 가릴 줄 아는 민중의 섶이 되길 소망하며,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명문장가인 이태준은 그의 수필집, 《무서록》에서 '서점에서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라고 책에 대한 애착을 나타냈다. 나도 일상에 필요한 물품을 사들일 땐 몇 번을 견주다 결정을 내리지만, 인문학 책을 사는 일엔 주저함이 없다. 요즘은 서점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여 책을 살 수 있고, 모바일 앱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네모난 각을 만지고 더듬고 살풋 풍기는 잉크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책의 실물 촉감을 선호하여 요즘도 문학책을 끌어 모은다.

포도나무처럼 덩굴지거나 줄기가 가냘픈 식물이 의지해 자라도록 옆에 꽂아주는 것을 섶이라 한다. 부모라는 버팀목이 내겐 없었다. 방황하던 청소년 시기에 책이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다. 책은 나를 버티게 해준 섶이었다. 그렇게 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어 지금껏 책을 읽다 잠이 들곤 한다.

머리맡에 또 책이 착착 쌓인다. 어쩔 수 없다. 책은 내 마음을 꿋꿋이 지켜주는 나의 섶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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