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에 대한 오해

 

 

 이 글은 나는 무명작가다를 중간, 중간, 보강하면서 고쳐 쓴 글이다.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을 문학의 장르로 나눈다. 흔히들,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수필이라고 한다. 이렇게 쉽게, 거저먹는 게, 문학이라면 못할 사람 없다.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부담 없이 쓴 글이라면 필경, 신변잡기는 될 수 있어도 문학으로서의 수필은 될 수 없다.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글은 대부분 느낌과 감정이 주를 이루는 반면, 사색과 상념이 빠져 있다. 문학으로서의 글이 되려면 작가의 작중 자아가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병존해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작중 화자의 자아가 개별성과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변잡기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적은 수필체의 글을 말하는데, 감성적ㆍ주관적ㆍ개인적ㆍ정서적 특성을 보인다. 위에서 말했듯이 문학은 작중 화자의 자아가(에서는 시적 자아, 서정적 자아라고도 함) 개별성과 보편성을 담보해야 한다. 쉽게 말해 나(개별성)의 얘기면서도 우리(보편성)의 얘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변잡기가 무의미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런 글쓰기를 통해서 표현 욕구를 해소하거나, 자기 치유의 효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로서, 문학으로서의 글은 아니란 말이다. 왜냐하면 신변잡기는 오직 자기 얘기뿐이기 때문이다.

 신변잡기라 치부되는 글은, 에피소드에 의미 부여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 작가의 시선이 개인적 자아에서 사회적 자아로 확장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인적 자아란 사유의 대상이 부모. 자식, 형제. 친구 등 나에 국한된 것이며, 사회적 자아란 사유의 대상이 나를 벗어난 공동체와 존재론적 고뇌를 말한다.

 어린아이는 나만 생각하지만 어른이 되면 남도 의식하게 된다. 또 어린아이는 꿈만 꾸지만, 어른이 되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안 할 수가 없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교훈과 감동하기 받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지만, 신변잡기는 개별성과 개인적 자아만 있기 때문에, 온전히 문학으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이다.

 문학의 기능에는 도덕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이 있는데, 도덕적 기능이란 공자가 한 말로, 삶의 교훈을 얻는 것을 말다. 쾌락적 기능이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정신적 쾌락을 말한다. 신변잡기는 보편성과 사회적 자아가 없으므로, 도덕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따라서 문학이 될 수 없는 명백한 이유다. 쾌락적 기능이 예술성을 담당한다면 도덕적 기능은 철학성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신변잡기는 철학성 부분에서 결정적 결격사유가 있다.

 

 나는 예술가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나는 예술가다. 내 비록 무명작가지만 작가정신만은 언제나 투철하다. 그래서 수필 한 편 한 편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썼다. 혹시라도 나중에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면, 첫째,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둘째, 탐미적 체험을 통해 영혼이 고양될 수 있기를 셋째, 인문적 교양이 충족될 수 있기를.(그래서 스스로 너의 글은 언제나 지적이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반드시 작가가 독자에게 져야 할 책무로 위로, 탐미적 체험, 인문적 교양,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글을 썼다.

 그러기 위해서 글 쓸 대상을 포착하면, 나만의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의미 부여,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깊은 사유가 있어야 했다. 문학성, 예술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기존의 것을 답습하지 않기에 늘 새로워야 한다. 그래서 창작은 언제나 어렵고 고통스럽다.

 

 

                                           하와이 소녀

 

 

 

 지인의 부탁으로 하와이 한인 사찰 한글학교에서 일요일이면 교포 이 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인지라 일종의 사명감으로 봉사하는 일인데 벌써 일 년이 넘었다.

 그 한글학교 학생 중에 크리스틴이란 십일 학년 여학생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이 학년인데 아버지는 중국계고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다. 이 아이는 공부 잘하고 발랄하고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는 조금은 머슴애 같은 아이였다.

 곱상한 얼굴과 달리 사내 녀석같이 씩씩한 크리스틴이 삼 주 만에 한글학교에 나왔다. 그동안 심한 감기, 몸살로 아파서 못 나왔다. 그러나 사람 인상이 갑자기 이렇게 다를 수도 있는지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정말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운동을 좋아해서 늘 검게 그을려 있던 얼굴은 하얘졌고, 생동감 있고 자신감 넘치던 눈빛은 떨리는 듯, 수줍은 듯, 다소곳해져 있었다.

 항상 질끈 동여매던 긴 머리는 풀어져서 하얗고 조그만 얼굴을 가리고 있는 옆모습은, 크리스틴이 아닌 다른 사람이 와 앉아있는 것 같았다. 너무도 생소하고 낯설어 그 느낌을 굳이 말하자면, 그냥 아팠던 게 아니라 무슨 커다란 열병을 앓고 난 사람 같았다. 마냥 명랑하기만 하던 여자아이가 감수성 어린 소녀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는 허심한 눈빛, 창백한 얼굴, 연붉은 입술, 자판을 두드리는 가늘고 긴 손가락은 더없이 섬세해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이제 본토로 돌아가야 하므로 다음 주까지만 크리스틴, 너를 가르친다고 하니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하고 얼른 돌아섰다.

 

 다실(茶室)로 갔다. 차 향기가 은은한 다실엔 하안거(夏安居) 목적으로 방문 중인 통도사 스님 세 분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황송하게 국화차를 공양받고 다실을 나왔다. 햇살이 눈 부셨다. 저만치, 크리스틴이 생각에 잠긴 듯 풍경소리 맑게 울리는 경내를 거닐고 있었다.

 약간 마르고 큰 키에, 언제나 활력 넘치던 녀석의 뒷모습이라곤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쓸쓸해 보였다.

 나무와 꽃과 새들이 노래하는 산사의 뜨락을 거닐어도 인간의 뒷모습이 예외 없이 슬픈 건, 동물로서 일체의 방어력이 상실된 무구한 형상 때문이 아닐까.

 걸음을 멈추고 예쁘게 피어난 수련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목젖이 아려왔다.

 

 평소 익숙했던 것들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는 일을 자메뷰(미시감)라 하는데, 크리스틴이 왜 갑자기 생경할 정도로 낯설었을까.

 그가 안겨준 미시감(자메뷰)을 알 길이 없다. 내 기억의 오류라고 인정해야만 합리적 대답이 될 것 같다. 아니면 그가 한 사람에서 한 인간으로 아니면, 한 여자아이에서 한 소녀로 변모한 바로 그 변곡점을 목격한 것일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헤르만 헷세를 빌려 말하면 크리스틴이란 새가 알을 깨고 나온 고통과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을 내가 목도한 것일까.

 혹시 이 짐작이 맞는다면 크리스틴이 이제부터 경험해야 할 삶의 매운맛. 쓴맛이 안타깝다.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순결한 인생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최소한 발에 흙이 묻길 바라며, 최소한의 상처만 받고, 최소한만 아프고, 진자리보다는 마른자리에서 편안한 삶을 구가하길 기원한다.

 

 하루하루 살면서 나를 깨우는 건 바람, , 구름, , 풀벌레 울음소리, 등도 있지만, 떨리는 소녀의 눈빛, 그 가늘고 긴 손가락도 있다.

 

 

 “하와이 소녀”, 이 짧은 수필 한 편(원고지 10) 쓰는데, 십 년이 걸렸다면 믿을까. 수필이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쉽게 쓰는 글이 아니란 증거다.

 소녀에 대해 설명과 묘사를 마음에 들게 했어도, 소녀가 안겨준 미시감(낯설음)에 대한 의미 부여를 못 해서 글을 완성할 수 없었다. 십 년이 지난 후 그 의미(철학성)를 깨닫고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의미 부여란 보편성과 사회적 자아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 상태를 점검하게 되는 실존에 대한 탐색이었다.

 

 “한 사람에서 한 인간으로 아니면, 한 여자아이에서 한 소녀로 변모한 바로 그 변곡점을 목격한 것일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헤르만 헷세를 빌려 말하면 크리스틴이란 새가 알을 깨고 나온 고통과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을 내가 목도한 것일까.”

 

 이것 때문에 비로소 문학으로서의 수필이 완성되는 것이다. 문학성이 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말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새로움깊이. ,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 부여,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를 말한다. 새로움이 문학의 예술성을 담아낸다면, 깊이는 문학의 철학성을 담아낸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새로움이 문학의 쾌락적 기능을 수행한다면, 깊이는 문학의 도덕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재차 부연하지만, 예술은 기존의 것을 답습하지 않기에 늘 새로워야 한다. 거기에 깊은 의미까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창작은 고통스럽고 어렵다.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의미 부여가 없고, 대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가 없는, 일상의 소박한 나열은 잘 쓴 일기 정도(신변잡기)라 할 수 있다. , 작품으로서 예술성(문학성)을 논할 수 없다.

 새로움과 깊이는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 깊이가 없는 새로움은 언어유희며, 새로움이 없는 깊이는 허풍이기 때문이다.

 “꽃은 식물의 성기다. 여름의 꽃들은 그 치매한 천진성으로, 세상을 향하여 저들의 향기로운 성기를 자지러지게 벌린다. 그 천진성이 버거워 여름의 꽃밭에서 나는 늘 몸 둘 곳 없어 했다.”(김훈, ‘풍경과 상처’, 문학동네.2,165)

 꽃이란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의미 부여한,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이렇게 도발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하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피리 죽창, 악기와 무기는 꿈과 욕망의 양쪽 극한이다. 겨울 수북의 대숲에서 나는 악기의 꿈과 무기의 꿈이, 선율의 혁명의 꿈이, 한데 합쳐져 오직 거대한 침묵으로 눈을 맞고 있는 장관을 보았다. 악기의 꿈과 무기의 꿈은 결국 다르지 않다. 안중근의 총과 우륵의 가야금은 결국 같은 것이다. 악기는 시간의 내용을 변화시키고 무기는 세계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관여한다. 악기의 꿈은 무기 속에서 완성되고 무기의 꿈은 악기 속에서 완성된다.”(김훈, ‘풍경과 상처’, 문학동네.2,100)

 대나무를 보고 악기와 무기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은,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작가의 깊은 통찰력과 사유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민태원(1894~1935)청춘 예찬”, 김진섭(1903~미상)매화찬”, 이양하(1904~1963)신록 예찬”, 피천득(1910~2007)수필같은 유명한 작품들은 에피소드가 없이 대상에 대한 깊은 탐색과 사유로 일관한다. 그러나 수필 대부분은 에피소드에 의미 부여로 이루어진다.

 참고로 학창 시절 문체를 배울 때 간결체의 예로 황순원의 소나기”, 만연체의 예로 김진섭의 매화찬”, 강건체의 예로 민태원의 청춘 예찬”, 우유체의 예로 이양하의 신록 예찬”, 화려체의 예로 정비석의 산정무한을 암기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각설하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개 문학으로서의 수필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에피소드 즉, 짤막한 토막 이야기에 의미 부여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설명과 묘사가 잘 되어있어도, 에피소드에 의미 부여가 얼마나 새롭고 깊이 있느냐에 따라 문학성이 좌우된다. 그 의미 부여란 아름다움을 창조함은 물론 궁극적으로 인류애를 지향하는 것이다.

 뇌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공간 기억과 시간 기억이 만나면 스토리가 된다고 한다. 소설은 이야기 그 자체지만, 수필도 비록 짧은 얘기지만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다. 이 짧은 이야기 속의 공간과 시간에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공간이 어느 민족 공동체 속이든, 시간이 어느 시대든,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인류애를 고양시켜야 한다.

 

 6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국정교과서로 공부한 세대가, 수필이 신변잡기로 오해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이라 생각되는 것은 피천득의 인연이다. 다음으로 김태길의 글을 쓴다는 것이다.

 “인연에는 신변잡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개인적 자아만 있지, 사회적 자아는 없다. 개별성만 있지 보편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의 배경이 된 시대는, 일제의 수탈과 억압이 극에 치달은 시기였다. 이웃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유민(流民.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도는 백성. 유랑민)이 가장 많이 발생하던 시기였다. 말이 좋아 유민이지, 기지떼다. 같은 시대를 산 윤동주는 시()가 쉽게 쓰이는 것조차 부끄러워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께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어진 시중에서),

 “인연에는 지식인으로서 공동체에 대한 일말의 연민도 없다. 이웃이 착취와 폭압에 신음해도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끝이다. 이런 글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건강한 사회적 자아가 내면화된 사람이라면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순 없을지라도, 최소한 시대에 대한 고뇌와 번민이 있어야 했다. 그게 없기에 정신 상태가 유아기에서 성장을 멈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글이 문학적으로 무슨 교훈을 줄 수 있는가.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인연> 중에서.

 세 번의 인연을 평생 그리워하면서 왜, 이웃에 대한 인연, 공동체에 대한 인연은 소홀히 했을까. 아사코와의 개인적 인연에만 집중하기엔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내면의 갈등이 그려져 있었다면, 문학으로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깊은 사유가 없는, 철학성이 없는, 내용의 서정적인 면 하나만으로 문학성을 대변할 순 없다. 이런 허접한 신변잡기를 한국 수필 문학의 정수라 배운 우리 세대가 불쌍할 뿐이다.

 

 수필이 문학으로서 논의 되려면 나 자신을 소재로 하더라도, 철저하게 대상화(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개인적 자아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나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잘난 점보다는 못난 점을, 성공보다는 실패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의 공감과 감동, 성원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의 장점, 잘난 점, 성공담을 다루면 자기 자랑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사기가 쉽지 않다. 수필에서 작가 자신의 자기 자랑은 금기 중의 금기다. 문학이 집중하는 곳은 실패하고, 아파하고, 흔들리고, 상처받고, 눈물을 흘리고. 이런 지점이고, 여기서 온몸 저리도록 느끼고 하염없이 사유하는 것이다. 문학성은 이곳에서 태동하는 것이다.

 신변잡기로 흐르지 않고 문학으로서의 수필로 논의 될 수 있는 훌륭한 작품 한 편을 소개하겠다.

 

 

                   그대는 무슨 꽃이고 싶은가.

 

                                                                                   국화 리

 

 

 북미주 이대 동창회 모임에서 부군들에게 질문했다.

 “아내를 꽃으로 비유한다면?” 남편은 한참 생각을 했다. 나는 옆에서 장미는 아니고 수선화? 찔레꽃? 아니면 할미꽃, 이라 할지 기다리는데 그는 선인장! ‘이라고 대답했다. 실망보다 의문이 생겨서 선인장에 꽃이 있어? 본 기억은 있긴 한데? 남편왈 무척 신기하고 우아한 꽃이었거든.” 박정옥 <나는 선인장꽃> 중에서

 

 내 여고 동창이 쓴 짧은 글을 읽으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인장 하면 아픈 가시가 떠오르지, 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편이 가시 있는 선인장 같은 아내와 산다? 모인 사람들이 그 아내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의 아내와 같이 나도 머리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그 친구는 의사였다. 깡마른 중간치 키에 일하는 것밖에 관심을 두지 않는 여자처럼 보였었다. 남편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일 년에 한 번씩 모이는 크리스마스 동창 파티에 친구는 가끔 남편과 함께 오곤 했다. 우리는 동기였기에 늘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남쪽 동네에 살았고 나는 북서쪽에 떨어져 살아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동기 모임도 있지만 멀리서 살아서 그녀는 가끔 참가했다.

 우린 그녀를 느낌으로만 안다. 이성적이고 조목조목 낮은 목소리로 따지는 성품은 아닐까. 그녀는 선인장처럼 가시가 있었을까.

 내 주위에 남편에게 애교 있고 다정한 친구는 많지 않다. 나이 들어서는 남편들이 대화의 중심이 되지 않지만, 젊었을 땐 친구끼리 남편 흉을 많이 보았다. 부부 사이에 맺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이들 키우며 이민살이가 힘들어서 부딪쳤던 사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인장 친구는 풀리지 않은 의문을 남긴 채 한동안 잊었다. 그런데 선인장꽃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그곳은 로스앤젤레스에서 20마일 동쪽으로 위치한 Arcadia 동네의 arboretum 식물원이었다. 코비드 19사태로 집안에 감금되었을 때 이곳은 인터넷 예약을 하고 방문할 수가 있었다.

 사월 중순 봄날(20204)에 우리는 집에 갇힌 손자·손녀를 데리고 드넓은 식물원으로 갔다. 백여 년 이상 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다. 나무들에는 명패가 달려있어 아름드리 큰 나무 사이를 걸으며 이름을 불러주기도 했다. 장미꽃 화단, 일본정원, 중국정원도 있었고 빈약했지만, 한국정원도 만나 보았다.

 식물원을 몇 시간 걷다가 선인장 공원에 멈추었다. 나에게 의문을 주었던 그 선인장들이 끼리끼리 자라는 화단이었다. 구경하다 보니 선인장마다 색다른 꽃들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닌가. “너도 꽃을 피우는구나!” 하는 정도였던 선인장들이 아니다. 백여 종이 넘는 갖가지 모양의 다양함에 놀라웠다. 항아리같이 큰 것, 뱀처럼 긴 것, 나무 기둥 같은 키다리, 새끼손가락 같은 가냘픈 것들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싶었다. 꽃의 크기와 색깔이 하도 다양해 놀라웠다. 지금도 크고 붉게 빛나던 여왕 같은 자태의 활짝 핀 선인장꽃은 뇌리에 선명하다. 친구 남편은 그 꽃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우아하고 신비한 꽃을 피웠던 것이다. 내 친구는 남편 눈에 여왕 같은 모습이었을까. 놀랍다.

 

 그 당시에 내 남편이 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그는 나를 무슨 꽃이라 했을까. 이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은 지 20여 년이 되었다. 결혼하고 수년 동안은 그는 나를 보고 마누라점수는 50점이지만 인간성은 120점이라고 하곤 했다. 그때까지는 눈에 콩깍지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상상했던 나는 무슨 꽃이었을까. 인간성 좋은 꽃을 떠올려 보아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경북 구미 시골에서 자랐다. 그 집 마당에는 백일홍, 봉숭아, 맨드라미, 나팔꽃들이 피었었다. 뒷산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는 곳이었다. 곱살스러운 여성미가 없는 나는 그 집에 빨간 벼슬 달린 맨드라미 같은 여자였다는 회상을 한다.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내 인간성 점수도 날개 없는 추락하고 말았다.

 그는 딴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홧김에 서방 본다는 말처럼 나도 남자들과 데이트했다. 50점짜리 마누라가 무슨 남편을 원할 자격이 있겠는가? 마음을 바꾸고 혼자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싱글 라이프를 신명 나게 살아보자, 라고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나에게 버거운 남편이 나는 필요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25년을 산후에 그는 나를 배신했다. 지금 그는 3번째 여자와 살고 있다.

 세월이 흘렀고 그에 대한 기억도 가물거린다. 요즈음 콩 볶는 냄새를 흘리는 친구가 몇 있다. 그들 부부를 보면서 나의 50점 아내 점수가 그에게 미안했다. 70점은 돼야 했었는데. 나를 떠난 그가 이제는 밉지 않다. 그는 나에게 두 딸을 준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꽃 얘기가 나오니 그가 생각났다. 지금 그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추억이나마, 좀 향기가 풍겨오는 꽃이었으면 좋겠다. 친정엄마가 첫딸을 낳고 지어준 이름 국화는 나의 필명으로 쓴 지 오래다. 그와 25년을 살고 두 딸도 장성했으니, 그에게 좀 향기로운 꽃으로 남아야, 우리 아이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잎이 많아 그늘이 좋고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까지 온몸에 휘감던 꽃. “너희 엄마는 아카시아꽃 같은 여자였어그 말을 스스로에게 날리고는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대는 무슨 꽃이고 싶은가”, 이 수필은 실존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지만 무겁지 않고 경쾌하다. 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상태를 점검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작중 화자의 서정적 자아가 개별성(개인적 자아)과 보편성(사회적 자아)을 확보했기 때문에, 신변잡기가 되지 않고 문학으로서 논의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 사생활을 진솔하게 말해 개별성을 확보하면서도,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실존에 대한 물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이기에 보편성을 확보한다. 결국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사회 문제, 정치 문제는, 크게 보면 실존에 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다음은 작품에 대한 감상이다.

 

 “그는 딴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홧김에 서방 본다는 말처럼 나도 남자들과 데이트했다.”

 

 상처를 승화시킨 자의 시크함이랄까. 시니컬함이랄까. 숨기고 싶은 자신의 약점조차도 남 얘기하듯 한다. 어찌 보면 도발적이고 대담하며 거침이 없다. 젊은이 못지않은 패기까지 느껴진다. 자신을 철저하게 대상화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언사다. 이 부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예술은 상처로 빚는다라는 당위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쿨하면서도 따스하고. 이지적이면서도 너그럽다. 그야말로 자유분방하고 활기차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는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 지나가는 것이니/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그대는 무슨 꽃이고 싶은가", 이 작품 속에서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를 만났고. 헤르만 헷세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골드문트를 만났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깊으면서 넓은 이들의 영혼과 조우 했다.

 

 “마음을 바꾸고 혼자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싱글 라이프를 신명 나게 살아보자, 라고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나에게 버거운 남편이 나는 필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얽매임 없이 삶을 즐기고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으로서의, 소위 말하는 조르바 정신이란 걸 보게 된다.

 

 “나를 떠난 그가 이제는 밉지 않다. 그는 나에게 두 딸을 준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좀 향기로운 꽃으로 남아야, 우리 아이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이곳에선, 삶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순화시키는 골드문트를 만나게 된다.

 

 또한, “스치듯 지나친 닌자 아가씨는 모르긴 몰라도 호기심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세속적 가치를 추종하지 않는 자의식이 강한 여성일 것 같다. 사회적 질서나 통념에 맹목적으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낭만주의자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책임질 일 앞에 여성성을 내세워 모면하거나 회피하려 들지 않고, 당당하게 정면으로 맞서는 독립적이고 도전적인 아가씨일 것이다. 선택되어지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하고, 따라가기보다는 자기 길을 스스로 가는 자존심 강한 여성일 것이다.” 필자의 졸작 크로키일부가 떠올랐다.

 

 한편, 도정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저녁 내내 되뇌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울림이 큰 예술작품을 만나면 그 감동에 잠까지 설치게 된다. 내 저물어 가는 기억의 저편에 이내처럼 사라지는 이름들을 다시 호명하게 해줘서 고맙다. 이 글이 아니었으면, 알렉산드르 푸시킨, 니코스 카잔차키스, 헤르만 헷세, 도정환, 조르바, 골드문트, 이런 이름들을 언제나 떠올릴 수 있었을까. 이 이름들로 하여, 반짝이는 내 감성의 윤슬이 눈부시다. 나를 풍요롭게 해 줘서 감사할 뿐이다.

 

 작가의 문운이 왕성하길 빈다.

 

 *이내(명사):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크로키

 

 

 근교 아침, 아들을 배웅하는데 위층에서도 한 여학생이 자전거를 끌고 내려왔다. 같은 층 옆집은 서로 인사하고 지내지만, 위층 집들과는 전혀 인사가 없으니,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한다. 일찍 나가는 걸 보면 부지런한 대학생 같아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직장인인지 대학생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앞모습은 볼 수 없었고 뒷모습만 잠깐 보았기 때문이다.

 아. 그 모습,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모습에 나는 마음이 막막해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한참 동안 보았다.

 머리는 뒤로 묶은 채 긴 다리의 윤곽이 드러나는 청바지에 흰 티셔츠 차림은 너무도 심플해서 꾸민 흔적이 없어 보였다. 단정하나 화려할 것 없는 그저 스포티한 차림이었지만 가슴을 먹먹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젊음의 에너지랄까, 젊음에서 발산하는 어떤 기운이랄까, 그림으로 치면 맑디맑은 담채화(淡彩畵), 향기로 치면 라일락, 자태로 치면 피어나기 바로 직전의 목련꽃 봉오리... 도대체 뭐라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입은 빛바랜 청바지는 시간이 주던 쇠락과 무정함 대신 새로움과 가능성만으로 탄력이 넘쳤다. 또 그녀가 탄 새빨간 자전거는 문명이 주던 가식과 복잡성 대신 정직성과 단순성으로 어디든 달려갈 태세였다.

 자연스러움과 순수함 속에 깃들어 있는 어떤 것과도 비견될 수 없는 눈부신 아름다움. 젊고 풋풋한 모습에 싱그러운 생명력이 아침햇살만큼이나 찬란했다. 감히 어떤 사특함도 끼어들 수 없는 순결함, 그 자체가 줄 수 있는 감동과 감격. 섹시함 같은 성적 매력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그러나 뭐라 말할 수 없는 순정한 아름다움, 그 자체가 가슴을 아득하게 한 것 같다. 분위기는 좀 다르지만, 송수권의 시 여승에서 보았던 아름다움 같았다. 마지막 구절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 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는 마음 같았다면 이해가 될까 싶다. 여성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감동적일 수 있다는 걸, 오십 중반 늦은 나이라도 보게 돼서 감사하다.

 

 꽉 막힌 고속도로.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출근 시간 LA로 진입하는 고속도로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그 틈바구니 속에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 중인 아가씨를 보다. 오십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이라 놀랍고 신기했다. 검정색상의 가와사키 닌자 ZX-14를 타고 검정색 바지와 재킷을 입고 자그마한 백팩을 메고, 검정색 장갑, 구두, 플페이스 헬멧을 착용했기에 얼굴은 전혀 볼 수 없었다. 흡사 닌자 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주인공 같았다. 그러나 날씬한 몸매와 한데 묶은 듯 등 뒤로 가지런히 흘러내린 찰랑대는 생머리는 그가 여자임이 분명했다. 온통 검정색에 어디 한군데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신비롭기까지 했으며 그가 아가씨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백인 아가씨 일까, 동양 아가씨 일까. 히스패닉 아가씨 일까. 이미지는 환상이지만 때론 실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할 때 그 닌자는 쏜살같이 차 사이를 빠져나가 버렸다.

 아쉬웠다.

 그녀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만 진하게 남았다. 남자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오토바이를 건장하지도 않은 여자가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아무리 자유분방한 미국이라도 여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은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운동은커녕 축구장조차 들어갈 수 없고 운전조차 할 수 없는 중동 국가들이나, 유교적 관습이 지배적인 동양 아가씨들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나마 미국이니까 볼 수 있는 풍경일 뿐이다.

 스치듯 지나친 닌자 아가씨는 모르긴 몰라도 호기심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세속적 가치를 추종하지 않는 자의식이 강한 여성일 것 같다. 사회적 질서나 통념에 맹목적으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낭만주의자 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책임질 일 앞에 여성성을 내세워 모면하거나 회피하려 들지 않고, 당당하게 정면으로 맞서는 독립적이고 도전적인 아가씨일 것이다. 선택되어지기 보다는 자신이 선택하고, 따라가기보다는 자기 길을 스스로 가는 자존심 강한 여성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고 싶은 여자인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태를 빠르게 그린 그림 크로키(Croquis)가 글로도 가능할까를 오늘, 처음 생각하다. 능력 밖이지만 하이쿠(17자로 된 일본 단시) 같은 형식으로 아침에 보았던 느낌을 속사화처럼 쓰고 싶었다.

 

 

 “크로키”, 이 글을 완성하는데도 오 년이 걸렸다. 문재(文才)가 둔재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글은 삼 문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일 문단은 텍사스 오스틴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쓰기 시작했으나,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어 중단되었다, 이 문단은 그 후로 삼 년이 지나, LA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쓰기 시작했으나 역시 진전시킬 수 없었다, 이 년 후에야 마지막 문단이 떠올라 드디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각각의 경험을, ‘순간성을 매개로 해서 크로키와 하이쿠로 결합하면 되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우연이 떠올랐다.

 뇌과학적으로 창작이란 서로 다른 기억을 연결해서 새롭게 재조합하는 것이라 한다. 고로 창의성은 정보가 많을수록 유리하다고 한다. 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이 설파한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다라는 명언이 생각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같은데, 아는 만큼 창작의 세계는 새롭고 깊으리라.

 이 글 역시, 오스틴과 LA에서 순간적으로 보았던 광경을 크로키란 그림과 하이쿠란 단시(短詩)를 연결해 재조합했기 때문에 창의적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은 모 일간지 공모전에 가작으로 당선되었다.

 수필에서 작가가 체험한 사실을 그대로 써야만 한다면 이 작품은 거기에 어긋난다. 한날한시 한 공간에서 경험하지 않은 일을, 한 날 한 공간에서 경험한 것으로 작품화했기 때문이다. 엄밀한 사실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허구적 진실이란 문학 용어가 있다. 소설 이론에 나오는 얘기다. 소설이 거짓말인지 알지만, 거기엔 허구적 진실이 들어 있으므로 읽는 것이다. 수필의 에피소드도 상상력(fiction)으로 쓰되 허구적 진실만 있으면 되지 않는가. 수필도 문학 장르 중 하나고 예술작품인데 왜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 안 되는가. 수필이 문학이 예술이 신문도 아닌데,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사실을 중시해야 할 이유는 없다.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

 허구가 진실을 향할 때는 예술이 되고, 허구가 이익을 향할 때는 사기가 된다. 작가가 표절로 사기 치는 때도 있으나, 이 경우를 제외하면 작가가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소설가가 거짓말쟁이가 아닌 것처럼 문학적 허구(거짓말)와 실존적 자아의 정직성과는 별개다. 고로 수필이 발전하려면 사실성에 얽매이지 말고, 에피소드에 허구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다음은 에피소드에 허구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작품을 소개하겠다. 직접경험은 전혀 없고 상상력으로만 에피소드를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해, 한 편의 수필을 만들었다. 자료조사는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서 했다.

 

 

                                   발디 산의 돌

 

 

 LA 인근에 발디라는 산이 있다. LA에 거주하는 한국 산악인들에게 발디는 북한산으로 불린다고 한다. 발디 높이가 3,068m이니, 835m에 불과한 북한산과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거의 서울 전역에서 북한산을 볼 수 있듯, 발디봉 역시 LA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늦은 겨울이라 해도 되고, 이른 봄이라 해도 되고, 양자역학 용어론 중첩이라 해도 무방한 토요일 날. 발디 산을 왕복 세 시간 정도만 등산할 요량이었다. 햇빛은 찬란하고 따스했으나, 바람은 투명하고 꽤 차가웠다.

 산행을 하다가 돌을 잘못 밟아 미끄러졌다. 다행히 크게 넘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식겁했다. 친구에게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고 하니 그러자 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이 아니니 그 자리에 널브러져 앉은들 민폐가 될 일은 없었다. 배낭에서 가지고 온 오이를 꺼내 친구와 나누어 먹으며, 무심코 내가 밟았던 돌을 보았다. 아뿔싸,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오 학년 무렵 우리 집 바깥마당 한 귀퉁이엔 축대를 쌓고 남은 돌무더기가 있었다. 초여름쯤이었다. 윗집 형과 돌을 갖고 놀았는데 그 모양이 자루만 붙어 있으면 장작을 쪼개도 될 것 같은 영락없는 도끼 같았다. 날카롭게 날 선 것이 위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양이 신묘한 탓에 악동들은 이걸 갖고 놀았고 그만, 내 팔이 열 바늘이나 꿰매는 큰 부상을 당했다.

 옆 동네에 진짜 의사는 아니었으나 김 의사라는 분이 사셨다. 병원도 없는 시골 마을에 의사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이분은 농고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과수 농사를 짓다 군대 가서 의무병이 되고 월남 파병이 되었단다. 의사가 절대 부족한 전쟁터에서 군의관이 시키는 대로 부상병들을 직접 수술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나중엔 수술 속도가 진짜 의사인 군의관과 비슷했다 한다.

 하여튼 돌쇠 같은 이분은 인근 마을 사람들에겐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존재였다. 농사 일 하다가 다치거나 감기. 몸살 등 어지간하면 다 이분에게로 갔다. 지금으로 치면 불법 의료행위지만 공공의료시설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던 70년대, 의료공백을 훌륭하게 메꾸어 주었던 분이 아닌가 싶다. 더더욱 이분은 치료해 주고도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마움에 보리. . 고구마 등등을 갖다 주거나, 또는 김 의사 과수 농사일을 직접 거들어 주는 등, 자기 형편대로 감사 표시를 했다 한다.

 아버지와 김 의사분이 내 두 다리와 팔을 끈으로 꼭꼭 묶고 입에는 손수건을 물리고는 생으로 열 바늘을 꿰매었다. 얼마나 아팠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 마취 안 하고 수술하면 빨리 낳고 흉터가 조금밖에 남지 않는다고 했다. 추측하건대 마취제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실제로 내 팔에는 흉터가 조금 남아있다. 그 돌 모양과 지금 내 발밑에 있는 돌 모양이 너무나 똑같았다. 50여 년 만에 보게 되는 돌이지만 그 형태며 질감이며 색감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암갈색이라 해도 좋고 적갈색이라 해도 상관없다. 예나 지금이나 장작을 패도 될 만큼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는 것도 변함이 없다. 어쩌다 이 돌이 여기 아니, 미국까지 왔나 싶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 사고로 나는 부모님에게 엄청나게 혼났다. 너무도 미웠고 원망스러웠던 돌이었는데, 오래간만에 뜻밖의 곳에서 만나니 희한하게 반가웠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흉터가 남을 미움이나 원망도 세월이 지나니 용서가 된단 말인가. 세월이 약이란 말은, 죽을 것 같이 힘든 일도 반드시 아무니까, 사실은 별 게 아니란 말인가.

 내가 그 돌을 주워 가방에 넣으려 하니 친구가 깜짝 놀라며, 왜 그 위험하게 생긴 돌을 가방에 넣어 가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우리 집 화단에 잘 모셔 놓으려 한다네.” 그리고 혹시, 밉고 용서 못 할 사람이 생기면 이 돌을 보며 지나고 나면 별 게 아니야, 그러니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대범 하라고, 너그러워지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오라, 사연 있는 돌이니 반면교사로 삼으시겠다. 좋은 생각이군.”이라며 친구가 맞장구쳐 주었다.

 

아무리 발길에 차이는 게 돌이라지만 때론 값지고 의미 있는 돌도 있었다.

 우선 원시인들에겐 요긴한 생활 도구였고, 내 어릴 적, 마을을 드나들 때마다 애건 어른이건 이웃의 안녕을 빌며 서낭당 당산나무 옆에 던지던 소원의 돌은 흔할지라도 고귀했다.

 임진왜란 중 행주대첩 때 권율 장군을 도왔던 아낙들 행주치마 속에 있었던 구국의 돌은 숭고했다.

 80년대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외치며 던지던 대학생들의 돌과, 강자 골리앗과 맞짱 뜨던 약자 다윗의 돌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을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 쳐라" 일갈했던, 통렬한 자기 성찰을 촉구하던 예수의 돌은 고결했다.

 이 모든 돌 들은 지금도 어느 광장 땅속이든, 냇가든, 들판이든, 산기슭이든, 어딘가엔 있을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안도현의 시가 떠오른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의미 있는 돌이 되었던 적 있었던가? 부끄럽게도 나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 살피며 살아왔다. 돌이켜 보면 김 의사 같은 분이 뜨거운 사람이거나 의미 있는 돌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발디 산의 돌은 직접경험을 비틀고 간접경험을 덧붙여 엮은 에피소드에, 의미 부여를 한 글이다. , 에피소드를 완전 소설 쓰듯 쓴 수필이다. 고백하자면 발디 산 근처도 가본 적이 없고, LA 와서는 등산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재미수필가협회 회원 서재에 올린 글 중 한인 타운 미용사”, “산타 모니카 우체국에서”, “낭만 가이(Romantic Guy)등이 이러한 방법으로 쓴 글이다. 다만 에피소드가 허구지만 진실을 향하기 때문에 문학,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김태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순전히 자기 성찰의 도구로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철학으로서의 글쓰기지 문학으로서의 글쓰기는 아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문학으로서의 수필을 체험과 사색의 기록이어야 한다/ 사실에 어긋남이 없도록 써야 한다./ 일부의 사실을 전체의 사실처럼 과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로 오해하게 된다. , “스스로의 내면을 속임 없이 솔직하게 그린 글에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는 내용은 수필이 허구적 진실을 추구하는 창작으로서의 문학의 길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지만, 김태길의 글 쓴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반성의 방편이지 창작으로서의 수필 쓰기는 아니란 말이다. 창작에 왜 사실이 강조되어야 하는가? 상상력이 강조되어야지. 이 글을 통해서 사람들은 수필을 사실에 입각해서 진솔하게 써야 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아니다, 수필은 창작으로서의 문학이고 따라서 사실보다 상상력이 중요시 되어야 한다. 이 글 때문에 수필이 문학으로서 발전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이 되었다고 사료된다.

 문학이란 교훈으로서의 도덕적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감동과 탐미적 체험으로서의 쾌락적 기능이 동반되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수필이 발전하려면 상상력, 허구(fiction)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