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여행 / 이정호
벨기에 브뤼쉘에서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했다. 대부분이 농촌 풍경이고 드문드문 건물이 기차 창가로 보였다. 암스테르담 역은 상당히 컸다. 역으로 나가니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사람들이 바다 근처에 앉아있고 멀리 배들이 보였다. 암스테르담의 첫 인상은 바로 앞에 바다가 다가와 도시가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많은 자전거들이 다녔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따로 있다. 나이든 분들도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호텔로 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다. 호텔은 Park Inn by Radisson Amsterdam City West 인데 큰 호텔이었다. 옆에는 카지노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고흐 미술관으로 향했다.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고흐의 자화상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파이프를 물고 밀집모자를 쓴 자화상,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등이 보였다.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눈 빛, 불안해 보이며 우수에 차있는 그의 모습이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모델료를 지불할 돈이 없어서 자기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위 층으로 올라가니 고흐 동생 테오의 부인인 요한나의 큰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녀에 의해 고흐의 작품이 비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그린 많은 그림을 보았다. 때로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그림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었다. 한국말 오디오도 선택할 수 있었다. 안내원에게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사진을 보여주며 이 그림이 여기에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그 그림은 뉴욕에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 고흐 미술관이 세계에서 고흐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고흐의 자손들은 고흐로 인해서 상당한 재정적 수익을 얻고 있다.
고흐 미술관에서 나왔다. 점심으로 중국음식이 먹고 싶었다. 휴대폰에 가까운 중국식당을 검색하니 여러 개가 나타났다. 편리했다. 우버를 타고 바로 그곳으로 갔다. 하지만 문이 닫혔다. 우버 기사는 차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다른 중국 식당을 물어보았다. 상당히 친절했다.
점심을 먹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구경할 수 있는 운하를 타러 갔다. 표는 미리 사 놓았다. 배 타는 곳으로 가니 앞쪽에는 맥주회사 하이네킨 체험관이 있었다. 시간이 있으면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배를 타는 곳에서 기다리니 한국 청년이 다가왔다. 유럽을 여행 중인데 한국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우리를 보니 반갑다고 했다. 한국에서 취업이 돼서 그 기념으로 여행을 하고 있단다.
오디오 안내가 나왔다. 암스테르담 운하는 약 90개의 섬, 그리고 1,500개의 다리가 있으며, 운하의 총 길이는 약 100km 라고 한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걸쳐 공사가 진행됐으며 이 운하로 인해 네덜란드는 상당한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배에서 바라보는 물결과 나무들, 그 뒤로 보이는 빌딩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가 살았던 집도 지나갔다. 얼마 있다 운하위에 떠있는 집들이 나타났다. 비키니 차림의 젊은 여자가 자기 집 패티오 의자에 앉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약 1시간 정도 운호 투어였다.
그곳에서 나와 꽃시장으로 향했다. 네덜란드의 국화는 튤립이고 풍차와 꽃이 연상된다.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싶었다. 생화와 조화가 섞여 있었다. 앞쪽에는 양파같이 생긴 작은 알뿌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만발하게 핀 많은 꽃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상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가게는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고 골목 하나를 지나니 끝나 버렸다. 풍차 앞에 만발한 꽃을 보려면 시기에 맞추어서 그런 지역으로 가야 될 것 같다.
우리는 담 광장으로 향했다. 수많은 비둘기 떼들이 광장 가운데에 둘러 앉아 있었다. 이곳은 암스텔 강을 둑으로 막아 생겨났으며 도시의 중심지로 번성해 왔다고 한다. 암스테르담 왕궁, 신교회 등의 주요 명소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동쪽으로 흰색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이다. 룩셈부르크에 있는 다름 광장이나 브뤼셀에 있는 그랑 플라스 광장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광장과 연결되어 있는 주변 거리로 가니 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고 안네 프랑크의 집으로 향했다. 여기는 시간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온라인으로 미리 예매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니 아쉽게도 표는 매진이 되었다. 다만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안위를 삼아야 했다. 이곳은 안네 프랑크가 1942년 7월 6일부터 1944년 8월까지 25개월간 나치를 피해 살던 집이다. 건물을 돌아가니 유리창에 안내문이 있었다. 안내의 사진이 있었고 오른쪽에 'explore & discover Anne's World' 문구가 보이며, 안네 프랑크와 다른 7명이 다락방에서 숨어 지내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나라이다. 한반도의 20% 정도 크기이고 인구도 남한의 30%정도이다. 한 때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세계최대 무역국이기도 하였다. 또한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국가이다. 유럽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하였고 중독성이 낮고 인체에 피해가 적은 마약을 허용하며 성매매가 합법이어서 홍등가가 있으며 안락사가 허용된다.
또한 우리나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친근함이 있고 월드컵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준우승을 3번 달성한 축구를 잘 하는 나라이다. 암스테르담 도시는 운하로 둘러 싸여 있어서 아름답고 자전거를 많이 탄다. 길을 다닐 때에는 자전거를 조심하여야 한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지만 방심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대개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창문을 통해서 암스테르담 어느 역을 바라보았다. 기차가 도착하고 떠난다. 마치 우리 인생이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오고 간다. 멀리 하늘의 뭉게 구름이 보인다. 푸르른 숲과 나무가 보인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아름답게 나타났다. 천국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가야 한다. 이곳과 작별을 하여야 한다. 또 오고 싶다.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은 곳이다.
저는 '고흐 미술관'만 본 암스테르담을 선생님은 여유롭게 담으셨네요.
다시 찾고픈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