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날의 비망록 / 조명래

 

 

타향 객지를 떠돌다가 늙고 지친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 페르귄트를 맞은 건 백발이 된 솔베이지였다. 페르귄트는 그날 밤 솔베이지의 무릎에 누워 눈을 감았다. 꿈에도 그리던 연인을 안고 ‘솔베이지의 노래’를 절절히 부르며 그녀도 따라갔다.

휴대폰 컬러링을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로 바꾼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늦잠을 깨우는 벨소리가 울려서 받으니 학창시절부터 격의 없이 지내고 있는 절친이었다. 심심한데 가볍게 동네 뒷산에나 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성격에 의리는 물론이고 책임감까지 강한 사람이다. 나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현직에서 물러나 유유자적하며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는 멋진 친구다.

 

작은 가방에 김밥 두 줄과 따끈한 커피까지 챙겨 넣고 휘파람을 불며 나섰다.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산을 오르다가 잠시 숨을 고르며 바윗돌에 앉았다. 한 줄기 바람이 낙엽 위에서 머뭇거리더니 살며시 다가와 이마를 스친다.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친구는 정상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입을 연다. 퇴직하면서 가족 몰래 비자금을 털어 증권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증시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는 속앓이가 심했는데, 최근에는 시원하게 치고 올라가고 있다며 목청을 높인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저녁을 사겠다나. 말투가 평소의 그에게 허풍 끼가 더해졌다고 느낄 정도로 시원하다.

정상에 도착했다. 김밥을 먹으니 소풍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화가 학창 시절 소풍 갔던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이자 미래인 인생 소풍으로 이어졌다. 근래 우리 대화의 주제는 건강이 중요하다는 말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늘은 자식에게 재산 물려줄 생각을랑 아예 버려야 한다는 말이 보태어졌다.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천천히 나눠마시고는 일어났다. 일망무제로 시원스레 펼쳐진 풍광은 그 자리에 남겨두고 올라왔던 길을 내려갔다. 약속이나 한 듯 동네 사우나탕으로 향했다. 탕 안은 한산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에 몸을 담그니 시원함이 뼛속까지 밀려든다. 잔주름 가득했던 피부가 매끈하게 펴진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가뿐해져서 나올 때는 짧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단골식당으로 잡아끄는 친구의 손길을 따라갔다. 주인아줌마가 반색하며 이맘때는 생대구탕이 별미라며 권한다. 팔공산 미나리 향에 바지락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 대구탕을 앞에 놓으니 한 숟가락 떠넣기도 전에 침샘이 반응한다. 목으로 넘어가는 국물 맛은 여전히 시원했다. 밥 한 그릇에 국 한 그릇까지 게 눈 감추듯 비우고 일어나는 등 뒤로 자주 들리라는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날아와 꽂힌다.

언제 또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헤어졌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맑아져서 그런지 곧장 집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아파트 공터를 지키고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생각에 젖는다. 더는 아무런 바람도 없지만 되돌릴 수는 없는 인생이 약간은 시원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갑자기 오늘 하루가 가장 멋진 날이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초겨울 산바람이 시원했고, 눈 앞에 펼쳐진 풍경도 시원했다. 말 못할 사연을 안고 끙끙 앓아온 친구의 고민도 시원하게 풀렸다. 전신을 품어준 사우나탕의 물도 시원했고, 생대구탕도 시원했다. 자주 오라는 식당 아줌마의 헛인사까지도 시원했다. 눈과 입, 그리고 피부를 비롯한 온몸이, 촉감과 미감은 물론이고 분위기까지 시원하다는 한마디 형용사로 몽땅 표현할 수 있었던 최상의 하루에 행복이라는 큰 상을 주고 싶다.

 

휴대폰 컬러링이 울린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 전화를 받으니 좀 전에 헤어진 친구였다. 페르귄트와 솔베이지의 기구하면서도 박복한 삶이 오버랩되면서 오늘 참 시원한 날이었다는 친구의 음성이 뒤따른다. 그래 맞아. 오늘 하루 참 시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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