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들 대장간 / 이문자
풀무질에 쇳덩이가 익어간다.
벌겋게 달궈진 쇠가 모루에 놓이자 드디어 시작되는 메질.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리드미컬한 연주다. 앞 메 옆 메가 번갈아 치고 때리면 엿가락처럼 휘었다가 늘어난다. 대장장이가 집게로 잡아주는 방향에 따라 대충 매무새가 잡히다가 불 속에 들고 나기를 수십 차례. 두드리고 펴고 다듬기는 또 몇 번이던가. 찬물 담금질을 수없이 거쳐야만 온전한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시우쇠 한 도막이 명품 연장으로 탄생되는 순간이 감격스럽지 않은가.
글 대장간이 차려졌다. 글쟁이들이 차린 온라인 대장간이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단숨에 좌정하는 장인들! 이레 만에 지척에서, 수천수만 리에서 눈결에 달려와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야말로 인간의 IT 두뇌는 찬사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숨쉬기조차 힘들다고 지구촌 곳곳에서 아우성이지만 글을 벼리는 이 대장간은 연중무휴에 신명이 넘치는 명소가 되었으니 말이다.
수인사가 오가면 드디어 펼쳐지는 인문학 바다. 좌장이 빗장을 풀면 좌중은 멘토가 이끄는 대양으로 빠져들어 원 없는 유영이 시작된다. 이는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 지성의 보고요, 해원을 거침없이 누비는 극치의 춤사위라 이른다. 우아한 왈츠를 추다가 격랑을 일으키고, 때론 용오름으로 솟아올라 형언키 어려운 신비경으로 몰아간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감동을 쟁여 넣는 글쟁이들! 한국산문 심장부에 철철 마중물이 넘쳐나 글 대장간은 감격으로 출렁인다. 봇물처럼 터지는 지성의 샘물을 마시고 글밭이 이랑마다 옹골지고 풍성해지는 까닭이다.
초고가 합평자리에 놓이면 화자(話者)가 의미심장하게 운을 뗀다. 무엇을 만들고 싶었는지를… 필자의 글에 풀무질이 시작되고 또닥또닥 글을 벼리는 메질이 교차하며 글 대장간이 본격 가동된다. 글감에 주제가 잘 버무려졌는지 긴장과 안도감 속으로 진입하다 보면 냉기가 돌다가도 금세 따뜻해지는 자리. 내밀한 곳에까지 갈아엎어야 하는 글 쟁기질이기에 글 행간에 스민 숨결 하나도 놓칠 수가 없다. 어쩌다 불협화음이 섞일 때가 있지만 수장에 의해 아름다운 화음으로 평정되는 찰나는 유독 감동스럽다. 이게 글 대장간의 묘미인 것을….
모두들 내로라는 문사가 아니던가. 조용한 출발을 보이다가 광폭 행진으로 질주하는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질박한 소재를 진국으로 우려내는 감성 장인, 예리한 섬광을 발하며 매너리즘에 따끔하게 침을 놓는 생기발랄 묘수도 등장한다. 공인된 반열의 작품엔 글 대장간 멘토의 명쾌한 오케이 사인! 어쩌다 글감과 주제가 어긋나게 되면 강한 펀치를 견뎌낼 용기와 강심장을 지녀야 한다.
불과 쇠를 다루는 단조(鍛造) 공정에 노련과 정교함이 필수이듯 글 역시 대충일 수는 없다. 때리고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대장간 법칙처럼 글이 단박에 찍어내는 주물이 아니기에 그러하다. 하여 딴청을 부리거나 방심이라도 하였다간 정체불명의 짝퉁이 되기 십상인 것. 날렵한 호미 한 자루를 벼리려다 엉뚱하게도 아무짝에도 못 쓰는 폐기물이 나오고 마는 격이다.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가야 할 주인공이 배를 산으로 몰고 갔으니 이 낭패를 어찌할꼬.
합평의 대상이 돼보면 뜨거운 불길을 감당키 어려울 때가 여러 번이다. 어디든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서럽기도 하다. 벌로 주는 매질이 아니라 대장간의 메질이라 해도 당찬 결기 없이는 공연히 자괴감만 키울 뿐이다. 자존심 따윈 멀찌감치 팽개쳐버려야 스스로도 편안해짐을 알아 간다. 풀무질로 달궈진 쇠가 제대로 담금질을 거쳐야만 연장이 됨을 아는 터에 해머 수준의 메질과 호된 담금질을 기꺼이 받겠다는 뚝심이 그래서 필요하다. 글 한 편 한 편이 고뇌의 시간을 거쳐 독자를 만나는 순간이 엄숙함을 알게 되는 이치라고 할까. 수차례 담금질을 거친 글이 세상에 나가기 위한 수고쯤은 가슴으로 글을 빚는 글쟁이이기에 당연히 감수해야 할 과정이며 길인지도 모른다.
글 대장간에서 구경꾼으로 일관하리라 작정하고도 종종 탄사를 발할 때가 있다. 가슴 아린 화자에게 꽂힐 땐 주체하기 어려운 눈물이, 가슴 한쪽이 아려와 주인공에게 매료되기도 한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미주에서 촌음을 다투어 답지하는 현장감 생생한 글을 놓고 세계를 함께 숨 쉬며 아파하기도 한다. 생소하기만 했던 합평반이란 둥지. 객꾼으로만 있을 수 없어 이 시간이 기다려짐은 부끄럽지 않은 글쟁이로 태어나고픈 모두의 소망 때문이 아닐는지.
누군가가 글쓰기를 작가 자신이 지핀 불에 영혼을 태우는 다비식이라고 했다. 불구덩이에서 달궈진 쇠가 대장장이 손에서 명기(名器)로 태어나듯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혼을 불사르는 고뇌가 뒤따라야만 명작이 나옴을 알 터이다.
사내아이도 아니면서 시뻘건 쇳덩이가 호미로 탄생되는 게 신기해 할아버지 심부름을 도맡아서 했던 나의 유년! 갓 벼린 호미자루를 들고 집을 향해 앙감질 뛰기로 달려갔던 선연한 기억이 늘그막의 가슴을 다시 달구는지도 모른다.
흉금을 트고 함께 글을 벼려가는 곳. 이 대장간이야 말로 글쟁이들의 영혼을 불사르는 올곧은 산실이 아니겠는가. 이 시린 세월, 좋아라고 감성 대장간을 드나들고 있으니 행복한 글쟁이라고나 할까. 내 영혼의 빛나는 다비식을 위해 한 편 한 편에 사력을 다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