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 느린 당숙 / 김 용 택
여름엔 점심밥을 먹으면 모든 동네 사람들이 강가 정자나무 아래로 모여든다. 누가 오라고 하지도 않고 누가 부르지도 않고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네 사람들은 모두 밥숟갈을 놓기가 바쁘게 정자나무 아래로 끄덕끄덕 더위와 힘든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모여드는 것이다. 진메 마을 정자나무는 툭 터진 강가에 있기 때문에 그 그늘 아래 들면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선풍기 아래 앉아 있는 것보다 몇백 배 시원하다.
그렇게 정자나무 아래 앉아 잠자거나 쉴 때 이따금씩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칠 때가 있다. 비는 꼭 우골이라는 골짜기에서 묻어오게 마련인데 누군가 “우골에 비 묻었네” 하면 사람들은 하나둘씩 잠에서 부스스 깨어 잠을 쫓으며 저 비가 참말로 여그까장 소낙비로 올랑가 안 올랑가 미적미적할 때 소낙비는 어느덧 마을 끝 윤환이네 집을 넘어온다. 후드득 한두 방울 느티나무 잎을 때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으면 소낙비는 어느덧 쏴~ 내리고 사람들은 너도 나도 집으로 뛰었다.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후닥닥 집으로 뛰어가는데 그중에 아무리 소낙비가 장대같이 내려도 절대 뛰지 않는 어른이 한 분 있었으니 우리 당숙이었다.
당숙은 아버님의 한 살 아래 사촌 동생이었는데 무던히도 행동이 뜸직해서 동네 사람들은 그 당숙을 ‘늑대 중의 상늑대’라고 불렀다. 행동이 느린 사람을 늑대라고 불렀는데 그 당숙이 우리 동네에서 제일 느린 분이어서 그렇게 상늑대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이다.
당숙은 아무리 소낙비가 많이, 급히 쏟아져도 그 소낙비를 다 맞고 걸으면 걸었지 절대로 뛰는 법이 없을뿐더러 동네 사람 그 누구도 그분이 뛰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당숙이 지게를 지고 앞산을 향해 오르거나 들이나 산길을 가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한갓지고 평화로웠으며 느긋했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분에게는 세상에 급한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말도 느렸으며 별로 웃지도 않았고 살림에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모든 일에 느긋한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비가 오면 맞는 것이다. 비를 맞는 게 도대체 어떻단 말이며 안 맞으면 도대체 어떻단 말인가. 모든 게 그런 식이었다.
그 당숙은 아들 둘, 딸 셋을 두셨는데 그 큰아들은 나와 한 살 차이로 내가 형이었으며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었고 같이 자랐다. 그 여유가 산 같았던 당숙도 일찍 돌아가셨다. 다른 사람들 다 불맞은 뭣처럼 뛰어 집을 향할 때 혼자 깐닥깐닥 비를 다 맞으며 걷던 그 당숙의 성함은 김명옥이었다. 당숙은 우리 동네의 마지막 징잡이셨다. 그의 징소리와 그의 느린 몸짓이 어쩌면 하나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