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앞에서 / 유혜자
그림에 대한 식견도 없으면서 가끔 친구들과 함께 그림 전시회를 기웃거려 본다.
국민학교 5학년 겨울 피난 시절, 노환으로 누워 계시던 외종조부께 자주 놀러 갔다. 문 밖에선 겨울나무가 마구 몸부림치고 쌓인 눈을 털어 내리는 바람 소리가 문풍지를 울게 해도, 키 높은 병풍 옆은 안온해서 좋았다.
활 쏘는 그림 속에서 화랑도의 세속 오계와 풍류를 떠올리고, 효녀 심청이가 나왔다는 연꽃 그림을 보려고 키 높은 병풍 그림 앞에서 발돋움하면 문 밖에선 낮닭이 홰를 치며 울기도 했다. 원두막에서 참외를 먹다가 떨어뜨려, 엎드려 주우려는 꿈에서 깨어나 보면 피리를 불며 나를 내려다보던 신선도.
할아버지께서 잠드신 머리맡에 펼쳐 있던 병풍의 그림을 다 기억할 수 없어 안타까울 때도 있다. 부여 낙화암의 삼천궁녀 비사를 배울 때 병풍가운데쯤 있던 절벽 그림이 생각나고, 수학여행 때 골안개가 자욱한 산속에서 지나 온 산봉우리가 안 보여 아쉬울 때,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지난날 병풍 앞에서 귀를 틔우고 시야를 넓히고 싶던 욕심을 상기하기도 했다.
지금 나는 내 앞에 우뚝 솟은 풍악(惡)의 웅장한 그림을 보며 조금 뒤로 물러섰다. 먼 산의 어렴풋이 드러난 능선의 아름다움, 중간 부분에서 앞으로 다가오는 산의 육중한 가슴, 그리고 산기슭에서 붉게 피어난 단풍과 간간이 섞인 소나무의 청청함.
어느 날이었던가. 오랜만에 할아버지 방에 들러 보니 병풍 몇 폭이 접혀 있고 산을 향한 뒷문 쪽이 틔워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상에 오래 계신 할아버지는 창 너머 구름결에 눈을 보내며 무언가 자연에 대한 대화의 운을 틔고 싶으셨나 보다. 그 때 문틈으로 뒷산을 내다보니 뒷산기슭의 나무들이 우우하고 우는 것 같았다.
천 년이나 산다는 학의 그림을 가까이 보며 그 장수함을 부러워 하셨을까? 하얗게 센 이마 위에 숨가쁘게 펄럭이던 등잔불의 그림자, 이불을 포개어 귀까지 덮으시던 할아버지의 귓가에 겨울 나무의 울음은 어떤 의미로 울렸을까?
동양화, 그 중에서도 산수화는 아무리 현대 기법으로 다듬었어도 눈 덮인 산속과 초가집 그림을 보면 전설이 떠오르고 지금은 주인공이 없는 할아버지 댁의 빈 사랑 생각에 추연해진다.
그 해 겨울이 거의 지나고 봄이 멀지 않던 2월, 바깥 기동을 못하던 할아버지는 뒷산에 눈이 첩첩이 쌓여 까치도 못 날던 날 아침, 운명하시고 말았다. 차가운 눈 속에서도 피어난다고 해서 애써 가꾸시던 매화의 봉오리가 곱게 벙글고 병풍 폭의 매화도 피어 있건만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아 툇마루에 앉아서도 허무하던 기억.
12폭의 그림 중에서 몇 폭의 그림이 잘 떠오르지 않아 안타깝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집착이 가서 정작 구경하러 온 전시회의 그림을 몇 개씩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나는 다시 발길을 멈춘다. 신라의 솔거가 황룡사 벽에 소나무를 살아있는 것처럼 잘 그려서 새가 앉으려다 떨어졌다는 얘기에 감탄한 일이 있다. 나는 그 생명력 있던 그림을 상상하다가 한 그림 앞에 우뚝 서고 말았다. 바로 이거다. 옛날의 그림이 사실적인 생동감이었다면 요즈음 그림은 또 다른 창조로 우리의 서정을 부를 수 있는 게 아닌가? 나무가 새를 부르는 영감보다 더욱 높은 차원의 맥락이, 화가가 그린 영상과 우리 영혼사이에 이어질 수 있는 예술의 극치, C 화백의 역작 앞에서 머뭇거린다.
우리는 높은 예술의 감동 앞에서 차분히 기억해 보며 결코 남의 것이 될 수 없던 잊혀졌던 순간들이 숨 쉬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문외한이기 때문에 색채만 있고 형상이 없는 것 같은 현대화를 보며 남겨지는 의미를 아쉬워한다. 그래서 그림 보기를 꺼리는 내 앞에 이따금 화사하게 혹은 신비롭게 꾸며진 화폭이 눈에 뛸 때 나는 그림 전시회에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춘하추동의 열두 달을 병풍 속에 담아 작은 세월과 우주의 축도(縮圖)로 어느 인생의 머리맡에서 증인이 되기도 하고, 울타리처럼 지켜준 병풍, 화려한 색채도 없이 담묵과 엷은 색채를 곁들인 것으로 격이 높은 그림도 아니었다고 기억된다. 그러나 나는 그 작은 우주 안에서 할아버지가 가끔 갈아 놓으시던 묵향처럼 은은한 정서의 향기가 내 의식 속에 배어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그 분의 생애는 12폭 병풍에 그려 둘 만큼 훌륭했거나 다채로운 모습이 아니었지만, 병풍 앞에서 들려 주신 얘기가 내게는 권선징악의 교훈이었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의 일깨움이었다. 충 · 효 · 예 · 지 · 신의 토막 얘기를 들으며, 나는 인간의 빛나는 모습과 향기를 찾아 산수도에 보이는 좁은 길 같은 오솔길을 찾아 헤매는 버릇을 지니며 자라게 되었다.
결코 병풍안쪽에서만 아늑하게 살아갈 수 없는 너무나 넓은 우주 안에 우린 살고 있지만, 대단할 것도 없는 꿈을 이룩해 온 나만의 밀실인 병풍안쪽에서 우주의 충만한 생명의 신비를 담았던 그림들을 보며, 자연과 인간사에 애정어린 눈길을 다소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한 일이다.
우리가 타고난 12폭의 능력 중 접혀 있는 폭을 펼치고, 보다 다양해진 형상 앞에서 끝없는 먼 지표를 향해야 하는 자기 계발의 의무가 과제로 안겨 온다. 어릴 때 12폭 병풍 앞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었던 동심을 회복할 수 없어 멀기만 한 길.
그림을 보며 아직도 신비한 욕심을 찾으려는 미술 감상의 실격자로서, 고차원의 빛깔로 이미지를 구축한 힘찬 예술 앞에서 당황하기도 한다. 이따금 옛것의 환상에 빠져서 엉뚱한 그림 앞에 멈춰 있는 나를 두고 친구들은 내가 무척이나 그림 애호가인 줄 알고 먼저 전시회장에서 나가 버리기가 일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