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 정희승

 

뱀은 난해하고 불가사의한 동물이다. 한마디로 미끌미끌하다. 내가 파악하려고 하면 교묘하게 빠져나가버린다.

자만심에 찬 나는 한때 뱀을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까짓 것쯤이야 마음만 먹으면 누워서 떡먹기라고 거들먹거렸다. 그러나 뱀은 어설픈 내 손아귀에 결코 들어오지 않았다. 완력이나 우격다짐은 물론 사탕발림 은근한 유혹 그 어떤 것도 통하지 않았다.

 

물론 잡았다고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던 적도 있었다. 정말 그때 나는 영물인 뱀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온몸이 꼭 째는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려보면 오히려 내가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뱀에게 칭칭 감겨 있었다.

보리가 패는 늦봄이었다고 기억한다.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에 풀숲에서 몸을 길게 늘어뜨리고 볕을 쬐는 꽃뱀과 맞닥뜨렸다.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더없이 매혹적이어서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탄성을 질렀다.

고와라! 여기에 봄을 찬미한 한 줄의 아름다운 하이쿠가 있구나! 

 

그러자 게으른 꽃뱀은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몸을 한 굽이 느리게 접더니 자신은 한 줄이 아니라 두 줄이라고 능청스럽게 딴청을 부리는 것이었다. 실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그래 너는 하이쿠가 아니라 대련對聯이란 말이지? 하고 얼른 방금 전에 한 말을 수정하였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능글맞은 뱀은 낭창낭창한 버들가지처럼 몸을 두 굽이 더 접으면서 나는 네 줄인데?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나도 질세라 오, 이제 보니 절구絶句로구나 하고 맞대응하였다.

뱀은 그렇게 나오리란 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번에는 네 굽이를 더 접어 여덟 줄로 몸을 변형시켰다. 나는, 이번에는 율시律詩로군! 하고 천자문 암송하듯 목청을 한껏 높였다.

 

그러자 반들반들한 뱀은 몸으로 구불구불 수많은 행을 만들며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집트 신전에 쓰인 신성한 문자처럼 쟁기질하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 오른쪽에서 다시 왼쪽으로 그렇게 현란하게 행갈이를 하면서.

굽이치며 유연하게 도주하는 점액질 텍스트!

 

이미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터라 순순히 도망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래, 약을 바짝 올려놓고 줄행랑 놓겠다는 심산이야? 단단히 심통이 나서 막대기 알구지로 몸통을 짓누르며 엄지와 검지로 꽃뱀의 대가리를 움켜쥐었다. 이제 보니 너의 진면목은 자유시로구나. 지금까지 나를 완전히 기만했어.

내 말에 동의라도 하듯 수많은 행들이 내 팔을 휘감으며 꿈틀꿈틀 요동쳤다. 이것 좀 봐. 너는 틀림없이 꿈틀거리는 자유시야!

 

정말 그때 나는 뱀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자 착각이었다. 내가 잠깐 방심하는 사이 미끌미끌한 뱀은 허물만 남기고 감쪽같이 내 손아귀를 벗어나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까보다 조금 밑쪽 찔레덩굴 옆에서 몸을 일자로 곧게 편 채 지그시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나는 이제 다시 한 줄인데?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막 허물을 벗은 터라 문장에 떨어진 복사꽃 세 송이가 유난히 붉게 빛났다. 화색을 되찾은 뱀은 가소롭다는 듯 혀를 널름거리며 다시 감미로운 박하 향을 뿜었다.

 

너는 기껏 헛물을 켠 거야. 내 허물만 움켜쥔 거라고. 자, 그럼 이제 슬슬 두 번째 연으로 미끄러져 가볼까? 이제 막 한 연을 끝낸 참이니까.

그제야 나는 뱀을 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영원히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정색하고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너는 누구야? 아니, 너는 무엇이야?

정체를 파악하려는 불온한 나의 질문에도 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자못 궁금한 모양이로군. 글쎄,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어도 그 아둔한 머리로 이해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알고 싶어 하니까 일단 가르쳐 주지.

 

나는 한마디로 결코 하나의 기표로 고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이야. 그러니까 끝없이 미끄러지며 변용하는 기표지. 의미를 생성하려는 연쇄적 미끄러짐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고유한 안면을 획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변신이니까. 발이 없는 자의 원죄라고나 할까?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어. 그리고 그 무엇도 될 수 없고. 이제 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 후후, 그런데 떨떠름하고 얼떨떨한 표정을 보니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 얼굴에 긴 의문표가 되똑하게 드리워져 있어. 이럴 대는 비유가 좋은 처방이야. 성가시겠지만 어쩔 수 없이 발을 달고 다녀야겠군. 시를 비유로 설명해 주는 게 좋겠어. 그러니까 나는 무한한 행, 무한한 연을 끌고 가는 단 한 줄의 시야. 아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담론과 흥미진진한 영웅담, 신비로운 전설, 두서없고 부질없는 잡담을 갈무리한 단 하나의 글자지.

 

단 하나의 글자라니? 너는 지금까지 최소한 한 줄의 언표였잖아?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다시 한 글자로 요약될 수 있단 말이야?

그래서 나를 잡을 수 없는 거야. 잘 보라고. 내가 어떻게 한 글자가 될 수 있는지.

뱀은 보란 듯이 천천히 긴 몸을 사려 똬리를 틀었다. 그리고 중심에 머리를 얹고 혀를 널름거렸다.

그제야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중심을 휘감고 도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토네이도란 말이군. 태풍의 눈은 詩眼을 의미하는 것이겠고?

많이 발전했군. 진실에 꽤 가까이 접근했어. 그러나 아직도 영감이 턱없이 부족해. 그런 세속적인 언어로는 결코 나를 다 표현할 수 없지. 시안은 한마디로 너무 오염되고 닳아서 주술적인 힘을 이미 오래전에 상실해버렸어. 신성한 힘을 지닌 다른 말이 필요해. 그런데 인간의 언어에는 그런 마땅한 단어가 없어. 의미의 손실이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풀어서 성명해 주어야겠군. 그러니까 모든 사태를 깜박이지 않는 눈으로 관망하면서, 이브를 유혹할 수 있고 심지어 천일야화를 들려 줄 수 있는 달콤한 혀를 가진, 신경이 살아서 끝없이 꿈틀거리는, 오직 신성한 한 글자야!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뱀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사악한 뱀의 눈과 마주쳤다. 나의 의중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꽥 감명 받은 것 같군. 그런데 안 좋은 버릇이 있는 것 같아. 하긴 교육은 언제나 고분고분하고 착한 아이로 만드는 경향이 있지. 방금 가르쳐준 그 한 글자에 다시 골몰하기 시작했다는 말이야. 후후, 그것만 제대로 파악하면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재삼 강조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니, 그런 태도로는 나를 결코 잡을 수가 없어. 잡히지 않으려고 간교한 꾀를 부리는 게 아니야. 제발 누군가가 나를 잡아줬음 좋겠어. 정말이지 나에게는 안식이 필요해. 쉬고 싶어. 부탁이야. 더 많은 정보를 알려줄 테니까 나를 꼭 붙들어줘.

 

뱀은 스르르 똬리를 풀었다. 그리고 입으로 꼬리를 물어 둥근 고리 형태를 취했다. 에우보로스 뱀이 된 것이다. 그거만으로는 미흡했던지 꼬리를 삼키면서 몸을 배배 꼬아 비틀었다. 그러자 뫼비우스 띠로 변했다.

 

보다시피 나는 또 이렇게 겉(형식)이면서 속(내용)이야. 그리고 끝이면서 시작이기도 하지.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히나?

시간을 갖고 어떻게 하면 나를 잡을 수 있을지 잘 궁리해 봐. 미안하지만 지금은 어림없어. 그 능력으로는 결코 나를 완전히 포획할 수 없다는 말이야. 그렇다고 지레 포기하지 마. 알구지로 짓누르는 솜씨도 좋았고 손아귀의 힘도 센 편이었어. 끝까지 희망을 잃으면 안 돼. 힘을 내라고, 기다릴게.

 

굴욕적인 참패였다. 어떻게 그렇게 무참하게 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너무나 비참해서 돌아와 이불을 둘러쓰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끙끙 앓았다.

 

그 후 나는 늘 뱀을 의식하며 살았다. 어떻게 하면 뱀을 잡을 수 있을까 고심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신통찮았다. 안, 참담했다. 여태껏 겨우 뱀에 묻은 먼지나 덧없는 뱀의 불만 움켜쥐었을 뿐이니까. 거칠고 질박한 석 새 무명이 어느 날 갑자기 결 고운 비단옷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자신의 초라한 능력에 절망했다. 차라리 뱀을 외면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었다. 외면하려고 해도 어디애서든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으므로. 단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는 그 그림자에 의지해서 살기 때문에 보지 못할 뿐이었다. 내가 읽는 모든 텍스트, 그 그림자인 기능에 순응하지 않고 텍스트 그 자체를 의심하고 몰입하면, 뱀은 거기에 어김없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힘겨운 노력을 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그림으로 어떤 이는 음악으로 또 어떤 이는 춤으로 뱀을 잡으려고 노심초사하였다. 저마다 그물은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다. 뱀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모두 고심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는데도 왜 뱀을 잡을 수 없는 것일까? 뱀은 잡아달라고 어디든 모습을 드러내고 모두 잡으려고 끊임없이 다가가는데도 왜 늘 어긋나는 것일까? 왜 잡히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일까? 도대체 잡음과 잡힘 사이에는 어떤 척력 어떤 심연이 있는 것일까? 어떻게 생가하면 그물이나 힘에 더 나아가 지혜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모르겠다. 넓이와 깊이 그리고 자성磁性을 거느리는 애정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도.

 

뱀을 누가 어떻게 잡든 통째로 잡을 수만 있다면 시샘, 질시, 유열, 불평등, 차이, 전망 그 모든 것들이 일시에 종식될 것이다. 예술가는 꿈을 꾸지 않고 그저 삶을 향유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아니, 더 이상 새로운 예술도 없으니 예술가도 사라질 것이다. 모두 예술을 살게 되리라. 예술이 결국 뱀을 통째로 포획한 전능한 땅꾼, 불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스클레오피스에 의해 오나성되었다는 의미이므로. 그때야 삶이 궁극의 예술이고 궁극의 예술이 곧 삶인 세계, 그 둘을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지복의 세계, 그러니까 모든 악이 소멸된 무하유향無何有鄕이 도래하리라.

 

사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다. 아니, 외면해 왔다. 에덴동산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추방될 때 그들 발뒤꿈치에 바짝 붙어서 따라왔던 그 뱀을. 이제는 직시해야한다. 여전히 그 뱀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을 잡지 않고서는 시원으로 회귀할 수 없다는 냉엄한 사실을. 그러고 보면 모든 예술가는 영원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몽상가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어설프고 무모한 시도를 하려 한다. 지금까지 전의를 불태우며 호시탐탐 그 기회를 노려왔다. 이 글이 바로 그 증거다. 나는 뱀을 잡기 위해 오로지 뱀에만 몰입했다. 뱀이 꼼짝 못하도록 단도직입적으로 뱀 자체를 거침없이 해독하고 폭로하였다. 뱀도 뜨끔했으리라. 시시로스는 실패하더라도 결코 비난받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도 숭고한 것이므로. 뱀아,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너를 포획해보마.

나는 원고지 그물을 넓게 펼쳐 뱀을 향해 힘차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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