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란 / 조현숙

 

 

 

병실의 밤은 누군가 불을 끄는 순간 불시에 시작된다. 오늘을 파장하는 하늘에서 노을을 쓸어 담은 어둠이 물체와 공간을 한 보자기에 싸안는다. 복도를 구르던 불빛이 문틈 사이로 실뱀처럼 기어들어 온다. 빛을 따라 병상의 모서리들이 각을 풀고 보자기 밖으로 제 몸을 드러낸다.

엄마는 등에 꽂힌 관 때문에 뒤척이지도 못하고 불편한 채 잠들었다. 그래도 얕은 숨을 푸푸, 뱉어내는 걸 보면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노령의 얇은 몸피로 힘든 수술을 이겨낼 수 있을까, 모두의 난제였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엄마의 어깨는 기울어지고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살 만큼 살았으니 지금부터는 덤으로 주어진 삶이라고, 어둠이 세상을 덮어도 새날은 밝아온다고 말들 하지만 ‘언제까지나?’라는 물음 앞에 두렵지 않을 자 있을까.

보호자 간이침대에 몸을 눕힌다. 여섯 개의 병상 아래로 여섯 개의 간이침대가 있다. 이 입원실에서 그걸 사용하는 보호자는 한 명을 빼고는 다 딸들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엄마를 모시고, 또 병을 알고 나서도 각종 검사를 하느라 수없이 병원을 드나드는 동안 알게 됐다. 아픈 부모님을 모시고 다니는 이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딸이라는 걸.

어쩌면 지금 우리는 포란 중이 아닐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 건 내 몸 위에서 엄마의 숨소리가 새근거리기 때문이다. 병상 다리 아래 죽, 누워 있는 우리. 탯줄의 근원들을 이렇게 든든하게 품고 있지 않은가. 생명줄로 이어진 이들이 무사히 알을 깨고 건강하게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을 어둠의 장막 위에 단단하게 그리는 중이다. 갓난아기인 나를 품었을 젊은 엄마를 상상해본다. 그때 엄마의 시간은 얼마나 빛나고 고왔을까.

아이는 걸어갈 길을 바라보고 노인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아기를 품을 때는 새 생명의 보드랍고 싱그러운 환희와 기대가 있지만 늙은 엄마를 보듬는 일은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애잔함을 담고 있다. ‘얼마나 많은!’ 가능성에서‘얼마나 더?’라는 한계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무엇을 모르고 사는 일이 더 많다면 그건 아직도 내 앞에 남은 시간이 많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병상 커튼 아래로 누워 있는 남자가 보인다. 대장암으로 입원한 옆자리 환자의 남편이다. 남자의 어두운 실루엣이 무섭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나와 남자가 지척에서 바닥에 나란히 누운 이 상황이 웃기고 이상하다. 혹시 남자와 눈이 마주칠까 봐, 벽을 향해 돌아눕는다. 좁은 침상에서 모로 눕느라 깔린 어깨가 저릿하다. 밤이 되면 빛을 감지하는 눈은 흔들리지만 굴절된 소리는 더 크게 들리는 법. 남자의 숨소리가 차가운 물방울이 되어 내 몸에 똑똑 떨어진다. 남자는 얼마나 더 이 시간을 수행할까. 나는 얼마나 더 이 아득한 시간을 또렷하게 느껴야 할까.

딸이 아니라서, 유일한 남자 보호자라서 그랬을까. 입원실에서 그의 행동거지는 눈에 띄었다. 아내를 수발하는 양이 워낙 극진하고 떠들썩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섯 명의 딸들은 남자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었고 그는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해 보였다. 어떤 이유로도 아내의 돌봄을 감당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남자는 아내의 배설물을 처리하고 아내의 자괴감을 끌어안고 아내의 고통을 위로하며 정성을 다했다.

그런 남자와 싸운 건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환자들의 저녁 식사가 끝나자, 남자는 운동을 시켜준다고 아내를 채근했다. 반면 아내는 통증이 온몸을 관통하는데 오줌주머니를 차고 움직이는 게 싫다고 주저했다. 이들의 실랑이를 구경하던 딸들이 남자를 편들어 아내를 재촉하자 지지에 신난 남자가 조심성 없이 엄마 병상을 자꾸 쳤다. 그때마다 엄마가 수술 자리를 움켜쥐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좀 조심해달라고 말했던 건데, 남자가 대뜸 소리부터 지른 건 정말 뜻밖이었다. 환자를 돌보다 보면 건드릴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벌컥 화를 냈다. 그렇게 사근사근하고 유쾌하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너무 의외의 반응이라 내 말이 잘못 전달됐다고 생각해서 설명을 보탰다. “엄마가 좀 전에 수술을 마쳐서 침대가 흔들릴 때마다 충격이 온다고 하니 조금만 조심해달라는 겁니다.” 남자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내 참, 병상 좀 친 거 갖고 항의하면 같은 병실에 못 있지.” 그쯤 되자 따지는 내 언성도 곱지 않았고 남자도 눈을 부라리며 당장 치기라도 할 기세로 다가왔다. 엄마가 내 팔을 잡고 그만하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보호자들은 숨죽인 듯 조용했다. 어이없었지만, 도리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TV에서 금계 수컷이 포란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금계는 자연 포란을 거의 안 한다는데, 그것도 수컷이 포란을 하니 기이한 일이었다. 더 놀라운 건 볏이 늘어지도록 3주 넘게 정성을 다해 알을 품었던 수컷이, 정작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니까 물어뜯어 죽여버린 일이었다. 동물전문가는, 수컷이 자기도 모를 어떤 본능에 이끌려 알을 품었지만, 막상 새끼에게 무얼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는 몰라서 빚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웅크린 남자에게서 그 수컷 금계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남자의 지극정성이 끝까지 가지 않고 언젠가 아내를 물어뜯는 일이 벌어지면 어쩌나, 그런 기우도 뜬금없긴 마찬가지다. 남자는 어떤 연유로 아내를 저리 품고 있는 걸까? 아니, 부부 사이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수상쩍게 남자를 바라보는 내가 이상한 거지.

고수련의 밤이 깊어간다. 이 밤은 하루의 수고와 소란을 멈춘 평화와 안식의 시간은 아니다. 어쩌면 남자는 너무 힘들었던 게 아닐까? 병실에 모인 여자들의 극진한 눈빛도 그에게는 또 다른 짐이 된 건 아닐까? 사실은 울고 싶은데, 누구라도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은데, 늠름하고 다정한 남편이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터질 것만 같은데, 때맞춰 내가 걸려든 건 아닐까? 누군가를 온전하게 품는 일은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 가족이라는 명분만으로, 인간이라는 도리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지리멸렬한 시간이 언제까지나 지속될지도 알 수 없다. 품고 또 품었다가 어느 순간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끈끈한 그 무엇이 툭 떨어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실뱀처럼 가늘고 차가운 빛이 내 가슴을 쓱, 훑고 지나간다. 음, 으음, 엄마가 잠결에 앓는 소리를 낸다. 벌떡 일어나 한쪽으로만 누워야 하는 엄마의 저린 어깨를 가만가만 쓸어준다. 가슴을 훑던 차가움을 떼어내고 포란의 깃을 따뜻하게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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