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콰지모도가 있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시장으로 갔다. 석 달 만의 외출이었다. 햇살이 눈부셨다. 씩씩하게 걸으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지만 모든 것이 낯설어 걸음이 자꾸 허방을 짚었다. 십수 년을 살아온 이 거리가 이렇게 낯설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낯설었다. 생선 가게를 기웃거리는데 누가 내 팔을 툭 쳤다. 전에 근처에서 비디오 가게를 하던 형님이었다.
그녀는 몇 년 전 이혼을 했는데, 그때 이미 가게마저 남편의 빚잔치로 넘어간 다음이라 갈 곳이 없었다. 한 겨울, 불도 들지 않는 우리 집 지하에서 지내다가 어느 날 말없이 사라졌다. 어디 가서 죽었으면 어째? 한동안 걱정을 많이 했다.
“아니, 형님! 살아 있었수?”
“그럼, 나야 잘 지내지.”
그녀는 근처 종합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청소부? 난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기운이 솟았다. 그래, 청소부 일을 한번 해보는 거야.
“형님! 나, 취직 좀 시켜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난 담담하게 그간의 얘기를 전했다. 그녀는 나를 연신 끌어안으며 자기가 이것저것 찬거리를 사 들더니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반신반의하며 겨우 사태를 짐작한 그녀는 결심한 듯 말했다.
“그래, 내가 취직시켜 줄게. 난 반장이야. 보수도 조금 낫고 일도 조금 수월해. 내가 소장에게 부탁해서 우리 병원 말고 자리를 알아볼 테니까 거기 가서 경력을 조금만 쌓고 와. 몇 달 정도만 일을 익히면 우리 병원에 반장 자릴 마련해 볼게.”
며칠 후 그녀가 시키는 대로 백화점으로 나가, 청소부 일을 시작했다. 저녁 여덟시에 출근해 새벽 네 시에 퇴근하는 밤 청소였다.
출근 첫날 강당에서 교육이 있었다. 강당에는 40여 명이 모였는데 대개 여자들이었고 연세가 65세는 넘은 노인들이었다. 젊은 사람이라곤 나와 선천적으로 몸이 틀어진 한 남자뿐이었다. 이 어른들이 힘든 일을 어떻게 할까. 경황 중에도 나는 묘한 책임감 같은 걸 느꼈다. 내가 어른들을 틈틈이 도와야 할 것 같은, 혹은 그들의 고된 삶을 위무해야 할 것 같은.
이윽고 현장에 들어가자 내게 소임이 맡겨졌다. 지하 5층에서 지상 8층까지 에스컬레이터 상행선을 닦는 일이었다.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돌려놓고 맨 아래 디딤판에 앉아 돌아가는 계단을 꼼꼼히 걸레질한다. 다음은 돌아가는 계단 옆의 금속판을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빡빡 문지른다. 그리고 물걸레질을 한 다음 마른 걸레로 물기를 없앤다. 그다음은 손잡이 벨트를 약품으로 닦아내고 거기에 왁스를 칠하는 일이었다.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세 시간 정도 작업하고 밤참을 먹으러 갈 땐, 속옷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밤참은 뷔페식이었다. 식판에 음식을 덜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까 강당에서 본 젊은 남자가 식판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그는 왼쪽 몸체가 오그라들어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팔과 다리가 뒤틀려 걸을 때마다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얼굴에는 화상의 상처인 듯 왼쪽 볼에서 눈까지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눈은 아예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그가 내 앞에 자리를 잡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그의 피부가 유독 맑고 희다는 것과 오른쪽 눈은 쌍꺼풀이 지고 예쁘다는 걸 발견했다. 입술은 붉고 눈동자는 검고 어린아이처럼 맑았다. 그는 연신 히죽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단말마의 비명처럼 고통스럽게 목구멍에서 새어 나올 뿐인 그 소리를 말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그가 이상스런 괴성을 질러댈 때마다 나는 움찔움찔 놀라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곁에 앉은 할머니가 너그럽게 웃으며 침착하게 통역을 해줬다. 나와 함께 일하게 되어 좋아서 그런단다. 식사가 끝나고 약 1시간 정도는 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휴게실은 넓은 온돌방이었고 이불과 베개도 꾀죄죄하지만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일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땐 여명의 하늘이 유독 맑았다. 넓은 10차선 도로는 텅 비어 있고 강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용기를 낸 내가 자랑스러웠다. 뿌듯한 무언가가 몸속으로 스며들어 나를 공중으로 날려 보낼 듯 부풀렸다. 삶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난 이끌리듯 강가로 나갔다. 강물은 여명에 몸을 뒤채고 있었다. 강바닥에서 아주 낮은 노랫소리가 올라왔다. 그 소리는 곧바로 내 혈관으로 흘러들었다.
낮 동안 잠을 자 둬야 하는데 난 흥분하여 며칠간을 자지 못했다. 이 기쁨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내 취직을 알렸지만 다들 한숨만 쉴 뿐, 누구도 흔쾌히 축하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조금 더 이 일을 잘하고 싶어서 며칠 후부터 다른 백화점에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유심히 살폈다. 어디에도 나처럼 얼룩 없이 깨끗하게 손잡이 벨트를 닦은 데는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하면 더 빛나게 더 깨끗하고 완전무결하게 그것을 닦을 것인가 궁리하느라고 낮 시간을 소비했다. 에스컬레이터 상행선!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나는 그것에 집착하고 열정을 불태웠다. 마치 신의 명령으로 난 수렁에 던져졌고,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의 첫 번째 임무나 되는 것처럼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해가 지기가 무섭게 일찌감치 일터로 갔다. 보름이나 되었을까. 친구가 근무 시작하기 전에 백화점 근처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는 조그만 꽃바구니를 가져왔다.
“취직 축하해.”
그와 식사를 하고 꽃바구니를 들고 탈의실로 갔더니 누군가가 의아하게 물었다.
“무슨 꽃바구니야?”
“예, 제가 취직한 거 축하한다고 친구가 사줬어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난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할머니들은 밤참을 먹으며 비닐봉지에 반찬을 쌌다. 대개는 독거노인들이었기 때문에 그 반찬을 가져다 먹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보안요원에게 들키면 봉변을 당하고 빼앗긴단다. 그래서 그들은 음식을 싼 봉지를 허리춤이나 속옷 속에 감춰 가지고 나왔다. 언제부턴가 그들은 음식 싼 봉지를 내게도 챙겨 주었다. 갈비찜이나 불고기나 장조림 같은 것들이었다. 여러 사람이 유독 나를 챙겼기 때문에 다 받아오면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아도 우리 가족이 포식할 만큼 충분한 양이었다. 게다가 지하 식품부에는 즉석 빵집이 있었는데 팔고 남은 빵을 전에는 고아원이나 갱생원 같은 시설에 보냈다는데, 그즈음에는 어쩐 일인지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렸다. 지하 식품부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은 그 몸이 뒤틀린 젊은 남자였다. 그는 맛있는 빵이 가득 든 검은 비닐봉지를 산타클로스처럼 어깨에 걸머지고 내가 있는 지하 5층으로 뛰어내려왔다.
“으아아! 이쁜 아줌마! 빠아앙!”
소리를 지르며 내게로 달려와 50ml들이 비닐봉지를 통째로 내밀었다. 곁에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들추려고 하면 막 밀치면서 우선 나부터 고르라는 것이었다. 난 망설이다가 몇 개를 골라 들었다. 그제야 그는 다른 사람들도 고를 수 있도록 그것을 뒤집어 쏟았다. 그런 날들이 한동안 계속되었고, 그러자 시간만 되면 다른 층에서도 빵을 얻어 가려고 지하 5층으로 모여들었다. 언제나 빵을 나누어 줄 권리는 나에게 있었으니 그 남자 덕분에 나는 뜻하지 않은 권력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은 슬슬 내게 빵 고르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생크림 케이크나 야채와 베이컨과 소시지가 들어 있는 빵은 상할 수도 있고 맛이 없다면서 그걸 자기들이 나누어 먹을 테니 나에겐 식빵이나 하드볼이나 단팥빵 같은 안전하고 두고 먹기 좋은 걸 가져가라고 권했다. 난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게실로 가는 길에 난 몇몇 할머니가 모여서 얘기하는 걸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조금 실성기가 있는 것 같어. 그렇지 않으면 시퍼렇게 젊은 것이 낮에 매장에서 일하지 왜 밤청소를 하러 왔겠어?”
“그래! 히죽히죽 웃으매 말처럼 뛰어 댕기는 것 좀 봐. 정상은 아녀. 그 빵도 식빵이 좋다니까 죄 그것만 움켜쥐지 않어. 흐흐흐!”
“그나저나 인동(인동은 그 젊은 남자 이름이었다)이랑 맺어주면 어떨까?”
“아녀, 시집은 갔대. 자식도 둘이나 있대.”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이었다. 이런 오해를 하다니……. 난 얼른 몸을 돌려 탈의실로 갔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유독 나만 챙기고 친절한 그들은 날 미친 여자로 알고 불쌍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탈의실에 웅크리고 있다가 휴식시간이 끝나 현장으로 갔다. 40명의 청소부는 매장 사이로 흩어지면 어디 박혀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난 8층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를 닦고 있었다.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그때, 노랫소리가 들렸다.
물 위에 떠 있는 황혼의 종이배/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5층이나 6층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하행선 에스컬레이터를 청소하는 그 여인임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데 낯빛이 백랍처럼 창백하고 너무 야위어 볼이 움푹 꺼졌고 코는 날카로운 매부리코였다. 무사의 칼처럼 위로 무섭게 치솟은 눈썹 밑에는 회색 빛 긴 눈이 푹 꺼진 채 숨어 있었다. 그녀는 늘 말이 없었고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맑고 청아하면서 슬픔을 자아냈다. 난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연신 쿨럭거렸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온몸에 전류처럼 흘러 다녔다. 작업 소장이 지나가다가 내게로 왔다. 난 얼른 표정을 바꾸고 짐짓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내 표정이 이상한지 소장은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내 서러움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얼렁뚱땅 노래하는 여인에 대해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일본 사람예요. 아저씨 일본 갔을 때 만나 결혼해 따라왔답니다. 아저씬 경찰이었다는데 퇴직한 다음, 무슨 사업인가 벌였다가 망했대요. 그러고 전신 마비가 와서 지금은 식물인간처럼 집에 누워 있답니다. 한때는 잘나가던 사람예요.”
그 뒤 언젠가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일본에서 오셨다면서요?”
그녀는 대뜸 핀잔조로 대꾸했다.
“뭘 남의 일을 쓸데없이 알고 싶어 그래요?”
그곳에서는 모두가 내게 친절했지만 누구도 내게 마음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도 나는 혼자 에스컬레이터를 닦고 있었다. 바로 아래층에서 으으으! 하는 괴성이 들렸다. 인동씨였다. 그도 혼자 바닥에 왁스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내지르는 소리였다. 나도 아아아! 팟팅! 하고는 엄지를 세워 보였다. 난 갑자기 기운이 솟아 열심히 계단에 붙은 금속판을 닦았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박박 문지르면 세미한 줄무늬가 나타난다. 마치 은수저를 치약으로 닦았을 때처럼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난 그 무늬의 은미한 결이 좋았다.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집을 지어야지. 예쁜 2층 집을 짓고 한쪽에는 계단을, 반대편에는 금속으로 된 미끄럼틀을 설치해야지. 그리고 그 미끄럼틀을 나는 매일 이렇게 닦을 거다. 날마다 그 금속판에 세미한 줄무늬를 만들 거다.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1층으로 내려올 땐 그 미끄럼틀을 타게 해야지. 난, 미래에 내가 지을 집을 설계하며 행복했다.
어른들은 이번에는 내가 인동씨를 좋아한다고 수군댔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난 그를 콰지모도라고 불렀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에게 주로 콰지모도에 대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더러 친구들과 통화할 때도, 난 콰지모도가 내게 유독 친절하다는 걸 빼놓지 않고 자랑하곤 했다. 아무도 그러는 나에게 맞장구를 치며 기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콰지모도는 계속해서 내게 빵을 갖다주었다.
석 달쯤이나 되었을까. 아들의 담임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들은 그때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이가 장래의 희망란에 청소부라고 썼더란다. 담임은 이상해서 아이에게 왜 청소부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엄마가 청소부 하는데요. 청소부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가져와요. 전 청소는 잘 할 수 있어요.”
난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며칠 후, 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전에 내가 가게를 할 때 찾아왔던 손님으로 부산에 사는 칠십 대 부인이었다. 그녀는 오래전에 흥정을 하다가 그만두었던 루비 반지를 찾았다. 가게가 통째로 넘어갔는데 그 반지가 내게 남아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순간 나는, “그럼요. 그런 큰 물건은 쉽게 나가지 않아요.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지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것을 사고 싶다고 했다.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있는데 남편이 그때 반지를 사주지 않은 걸 후회하며 이제라도 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백화점에 출근하지 않고 도매상을 하는 오빠에게 갔다. 오빠는 자초지종을 전해 듣더니 똑같은 중량으로 비슷한 품질의 루비 반지를 구해 왔다. 그것을 최고급 반지 케이스에 담아 들고 장미까지 한 아름 사서 안고 병원으로 갔다. 그녀는 반지보다 장미를 더 반겼다. 내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 고맙다 하면서 반지 값 말고도 웃돈을 얹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 루비 5 캐럿 반지 하나를 팔았더니 청소부 월급 일 년 치가 떨어졌다. 내가 큰 반지를 팔았다는 소문이 도매시장에 쫙 퍼졌다. 강남의 보석 가게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런 일자리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곧바로 강남의 한 보석 가게로 직장을 옮겼다.
석 달간의 청소부 생활은 끝이 났다. 하지만 난 아마도 죽는 날까지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일을 마치고 건물에서 나오면 여명의 하늘은 내 온몸에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고 나는 그 청량한 기운에 취하여 땀에 젖은 몸으로 가끔 강가로 나가곤 했다. 새벽 강은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흘렀다. 그때만큼 살아있음을 뿌듯하게 몸으로 실감한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