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마지막 기차역 / 이종화

 

 

이번 역에선 누가 내릴까. 문이 열리자 승객들은 눈치를 보며 서로의 등을 떠밀었다. 몇 사람이 쫓겨났다. 기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출발했다.

입사 첫날, 나도 이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직장은 참 시끄러운 곳이다. 진실은 대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고, 소문과 험담엔 은밀한 날개가 달렸다. 누군 누구의 동문, 누구 고향 친구는 누구, 누구는 누구와 같은 교회, 누구 부모가 누구고 그 누구와 누구가 서로 돕는 사이란 말이 삽시간에 퍼졌다. 줄타기 선수들이 짠 촘촘한 거미줄에 참과 거짓은 한데 뒤엉켰다. 다음 기차역에서 누가 내리게 될지 그 거미줄을 보면 알 듯도 했다.

시간이 흘렀다. 나도 제법 많은 역을 지났다. 입석으로 탔지만, 저 끄트머리에 내 자리도 나는 걸까. 어느 날, 막 열차에 오른 젊은 승객들이 털썩 복도에 주저앉았다. 앉을 자리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차를 ‘헬(hell)’이라 불렀다. 나이만 앞세워 권위를 지키려는 선배들을 ‘꼰대’라고 힐난했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조금만 더 버티면 자리가 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 기대는 모든 갈등의 출발점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몇몇 승객들은 기차가 이만큼이라도 달릴 수 있는 건 그래도 자기들 덕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 날 그 고생을 하고 겨우 편히 앉을 자리 하나 마련한 게 그렇게 부당한 것이냐고도 했다. 그러자 기차 안에선 욕설이 오갔다. 승객들은 고함을 질렀고 세대(世代)로 편을 갈라 싸웠다. 어디 내가 탄 이 기차만 그러겠는가. 앉고 싶은 사람 많고, 내리려는 자 적은 객실. 권력은 이 기울어진 열차를 마구 흔들어대며 사람들을 요리조리 움직였다.

젊다고 꼭 생각이 젊은 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한 게 변화가 아닌 자리뿐이었다면 기차 안은 좀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자리에는 제법 많은 편의(便宜)가 뒤따랐다. 스낵카트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허기를 채운다. 서 있는 승객은 사 먹어야 했지만, 앉아있는 승객은 손만 뻗어 거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앉아있지만 자기 돈으로 음식을 사 먹는 노신사도 있었고, 이제 좀 앉게 되었다고 카트가 제 것인 양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그들 대신, 공짜 음식을 집어 듬뿍 챙겨주는 요령꾼들이 보였다. 꼰대 것을 챙기는 척 결국은 자기 몫을 슬쩍 취하는 저 젊음을, 과연 꼰대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신념은 홀로 세우는 것. 앞선 세대, 상대 진영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리를 채워선 안 될 것 같다. 삶과 직장, 이 사회와 타인에 대해 한 사람이 정립한 가치 체계가 자리이고, 카트를 이용할 권리가 아니라 그걸 온전히 지켜낼 책임이 바로 자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주머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내 스낵카트로 향하는 저 노신사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빵 한 조각에 커피 한 잔. 향유할 수도 있지만 결코 누리지 않는 사람. 늙도록 곧은 저 영혼이 차창 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음식을 씹는 모습이 내게는 더없는 위안이 된다.

어차피 마지막 기차역은 누구에게나 오는 법. 앉아도 불편하고 아니 앉아도 불안한 우린 지금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자리에 대한 미련, 그걸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차를 지낼만한 곳으로 바꿀 수도 없고, 스스로 마지막 기차역을 정해 영예롭게 내릴 시간도 영영 놓치게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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