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시간이 흐른다 / 려원

 

 

깊은 숨을 내쉬고 싶은 날 숲으로 간다. 이른 새벽, 나무와 나무 사이로 비쳐오는 한 줄기 햇살 아래, 사람들이 행렬이 이어지는 숲길은 성지 순례자의 길처럼 보인다.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 들려오고 진한 흙내음이 코 끝에 스며온다. 잎사귀에 맺혀있던 물방울들이 후드득 머리 위로 떨어진다. 물은 머금은 나무의 기다란 몸통은 온통 검은색이다. 초록과 검정이 기묘한 대비를 이루는 여름 숲길은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숲으로 이끄는 것은 오래전 유전자에 각인된 숲 사람의 기억일까?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판타레이(panta rhei)’를 이야기했다. ‘판타레이’는 ‘모든 것은 흘러간다.’라는 의미다. 그의 말처럼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듯 시간도 삶도 흘러간다. 어제 걸었던 그 숲길을 걷고 있지만 같은 숲길은 아니며, 어제의 숨결과 생각과 발자국들은 이미 초록과 뒤엉켜 숲속 어디론가 흩어졌다.

숲에서 곧게 뻗은 나무를 찾기는 어렵다. 휘고 뒤틀린 나무들이 햇빛 한줌을 더 받기 위해 두 팔 벌리고 서 있다. 지난해 태풍을 맞고 쓰러진 나무들 위로 균류의 식탁이 차려졌다. 우연히 뿌리 내린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나무들, 딱딱하고 거친 수피를 온몸에 두른 나무들은 견딤의 달인, 혹은 성자처럼 보인다.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들은 날마다 움직이는 꿈을 꾸고 있다. 숲에서 흩날리는 것들, 흔들리는 것들, 속삭이는 것들, 꿈틀거리는 것들은 모두 나무가 꾼 꿈이다.

휘어지고 등 굽은 나무들의 몸 어딘가에는 아주 오래전 이곳에 살았던 숲 사람들의 꿈, 목소리와 몸짓, 열망과 좌절의 흔적들이 남아있으리라. 숲 사람들은 나뭇가지로 은신처를 만들고 네 발로 달렸으며 나무줄기를 그러안고 타올랐을 것이다. 숲의 몸짓과 언어를 유전자에 새기며 숲에 대한 감사와 두려움, 외경심을 품은 채 살아갔을 숲 사람들. 그들이 꾸던 꿈은 모두 어디로 흘러갔을까.

숲은 사람들에게 풍요를 주었지만, 끝없는 숲 너머의 세계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번쩍이는 불빛을 따라 숲을 떠났고 숲에서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숲을 떠난 인간의 꿈은 순정했던 그 시절 꾸던 꿈이 아니다. 본디 길이 아니었던 곳에 길이 생겨나고 길을 따라 마을이 들어섰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더 넓은 길이 생겨났고 길 끝에 철옹성 같은 담을 세우고 비탈을 깎아 거대한 회색 나무들을 심었다. 회색 나무들이 우점종이 되어버린 도시, 하늘은 회색 나무들이 만들어낸 스카이라인에 찢겨있다.

깊은 땅속에서 뿌리로 소통하던 초록의 연대는 사라지고 회색 소음들, 끝을 알 수 없는 회색의 번짐, 회색의 무심한 표정만이 거리에 가득하다. 세상의 모든 끓어 넘치는 것들 사이 더 가난해진 사람들이 태양이 녹아내린 아스팔트, 욕망의 용광로처럼 보이는 길을 걷고 있다.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온 초록의 기억이 마음을 휘젓고 지나간다.

마음 가득 울음이 들어찬 날,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날, 생의 어느 길목에서 놓아버린 꿈을 되찾고 싶은 날은 발걸음이 저절로 숲으로 향한다. 초록 잎사귀와 가지들이 그려내는 순정한 하늘이 펼쳐지는 곳, 나무들이 꿈을 꾸고 숲의 전령인 새들이 나무와 나무 사이 바람의 길을 내는 그곳. 숲의 자궁으로 회귀한다. 숲에 가까워질수록 잃어버린 것들이 하나둘 기억의 무덤에서 되살아난다.

큰 것, 작은 것, 풍성한 것, 빈약한 것, 눈에 잘 띄는 것, 잘 띄지 않는 것들이 숲에서는 저마다의 질감과 색채, 향기로 존재한다. 살아있는 것들, 더 이상 살아있지 안은 것들이 꾸던 꿈들이 모여 있는 숲은 꿈들의 자궁이고 사라진 꿈들의 무덤이다. 숲은 어디로든 열려 있고 모든 것들은 숲의 속도에 맞춰 흐르고 있다. 숲의 시계에 내 몸의 시간을 맞추자 초록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회색 한 조각을 더 움켜주기 위해 초록을 밀어낸 시간은 어설픈 변명과 자기 합리화, 기만과 위선의 시간이었다.

숲의 심박동 소리는 오직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태고의 북소리다. 숲의 목소리를 잊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은 닫혀있고 소음에 익숙한 사람들의 귀는 숲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바람에 나무들이 포효하는 소리, 열매들이 뒹구는 소리, 꽃들이 꽃잎을 펼치는 소리, 개미 걸음 소리, 거미줄 치는 소리, 쇠똥 굴리는 소리, 풀들의 속삭임, 땅 위로 드러난 뿌리의 울음소리 그리고 오직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숲의 모국어, 침묵….

돌아보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당위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압박 속에 떠밀리듯 살아온 시간이었다. ‘더’ 잘하고 싶은 욕망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전진, 하지만 수많은 ‘더’의 계단을 올라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삶의 길을 느릿느릿 걸었어야 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을 좀더 오래 바라보았어야 했고 고개를 숙여 뿌리가 그려놓은 생의 지도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흔들리는 나무 끝에 둥지를 튼 새들의 절박함을, 태풍에 쓰러지면서도 서로의 손을 붙잡아주던 따스함을,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가도 흙 한줌을 단단히 움켜쥐던 뿌리의 강인함을 잊지 말았어야 했다. 피고 지고 떨어지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어떤 형태로든 변해가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 숲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오래전 누군가의 꿈이 스며있음을, 그 꿈들 가운데에는 이미 가슴에 식어버린 나의 꿈도 있음을 알아차려야 했다.

내 안의 것들을 비우고, 일상에서 묻어온 삶의 분진들을 털어내기 위해, 오래전 언젠가 숲에서 잃어버린 꿈의 파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부르는 숲의 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순례자가 되어 나무와 나무가 만들어 낸 신전으로 들어간다. 앞사람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고 뒤따라오는 이를 위해 길을 내어준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서둘러야 할 이유도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다. 숲의 침묵 속에 누군가의 들숨과 날숨이 뒤섞이고 바람과 염원이 뒤섞인다.

숲에는 여전히 숲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은 오직 ‘지금’에서 ‘지금’으로 이어져 있다. 햇살 한 조각을 등에 없고 본래의 나를 만나는 시간 초록은 어느새 가슴에 푸른 꿈을 심어놓았다. 갑옷처럼 두르고 있었던 위선과 부질없는 욕망이 각질처럼 길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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