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진다, 꽃이 진다 / 김상립

 

 

 

지금 벚꽃으로 유명한 경주 보문호 둘레길이 꽃 잔치로 한창이다. 모두가 벚꽃으로 만든 세상 같아서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마저 꽃처럼 보이는 그런 날이다. 쏴-아 하고 부는 바람에 고운 꽃잎이 분분히 떨어진다. 구경 나온 사람들은 하얀 꽃잎이 내리며 그려내는 매혹적인 움직임에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주어진 삶을 다 누려보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가야 하는 그것들을 보면, 허무한 꽃의 일생에 적이나 마음이 측은하고 울적할 법도 한데 도리어 신이 나서 야단들이다.

눈이 부시게 곱던 꽃이 땅으로 내리자 말자 무참하게 짓밟힌다. 길가에 수북이 쌓인 꽃잎위로 크고 작은 자국이 선명하다. 사람들이 힘주어 누른 발자국이다. 아이 것도, 어른 것도, 죽 미끄럼을 탄 흔적마저 있다. 뿐인가? 꽃은 보문호수에도 내려 꼭 고운 물감을 호수 가에 풀어놓은 것 같다. 그 아름다운 그림에 넋을 놓고 있는데 돌연 ‘풍덩’소리와 함께 꽃잎들이 마구 흔들리며 흩어져 간다. 누군가가 제법 큼지막한 돌을 던진 것이다. 또 하나가 더 날아온다. 그러자 아이 하나 물가로 내려가 부러진 나무 가지로 꽃잎을 휘젓고 있다. 꽃잎이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정신을 못 차린다. 조금 더 아름답게 머물러 있어야 할 생명기운이 한 순간에 으깨어지고 부서지는 현장이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약하거나 못나 보이는 상대가 아름답거나 행복해 보이면 용심을 부리는 경향이 있는데, 꽃에게도 꼭 같이 그런다. 사람들은 꽃이 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꽃을 보지 않으면 당장 봄을 잃기라도 할 듯 수선을 떤다. 무리를 지어 자동차의 매연을 내뿜고 와서는, 고기를 굽고, 술 냄새를 풍겨댄다. 꽃을 꺾어 호주머니에 꼽기도 하고, 머리에 치장을 한다. 어떤 이는 무심코 꽃잎을 한 줌 따서 그냥 길가에 훌훌 뿌려댄다. 꽃의 수명이 얼마나 길다고 그 동안을 참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꽃에게는 기막히고 야속할 터이다.

아야! 하는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허망하게 목이 꺾여 죽어가는 꽃이,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흡사하다는 생각에 가슴 아프다. 사람들은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열심히 살겠다고 애써보지만, 사악한 손길에 걸려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황천길로 가기가 예사다. 인종과 종교의 갈등이, 이념과 가치관의 충돌이, 국가간의 알력이 전쟁과 테러를 불러오고, 그 틈새에서 죄 없는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어간다. 비행기와 자동차, 여객선 같은 문명의 이기가 사람들 목숨을 너무 쉽게 앗아가고,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을 내건 산업현장에서도 숱한 사람들이 이름 없이 지고 또 진다.

꽃이 산이나 들, 심지어 공원에서조차 원통하게 당하는 것처럼, 사람도 하늘과 땅, 바다에서까지 어이없이 당하고 만다. 사람들이 꽃에게 하는 짓을 사람끼리도 꼭 같이 되풀이 하고 있는 셈이다. 입으로는 생명의 존엄성을 버릇처럼 내세우지만, 돌아서면 남의 목숨에 그저 무관심하다. 돈이 중심이 되고, 이기심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허겁지겁 살다 보니 너, 나 할 것 없이 생명에 대한 외경심도 잃어버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 마저 사라진 까닭이다.

우리의 경우를 보면 더 답답하다. 어떤 큰 사고가 일어나면 사방에서 쏟아놓는 말들은 귀가 따갑도록 무성하지만 막상 마음을 다해 끝까지 책임질 사람은 좀체 나서지 않는다. 모두가 남 탓에 바쁜 까닭이다. 철저히 조사하여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겠다던 서슬 퍼런 관계기관이나 정치인들의 약속은 시간과 함께 흐지부지되고 관행이란 괴물이 다시 세력을 장악하기 일쑤다. 하루 24시간을 쉬지 않고 떠들어대던 방송들은 얼마 못 가 또 다른 사건을 찾아 카메라를 돌려버린다. 시민들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눈물 흘리지만, 목을 조이는 생업에 쫓겨 빠른 속도로 잊어간다. 그러다 또 사고가 터지면 세상은 양은냄비에 물 끓듯이 다시 부글거린다. 그 끓어오르고 식어가는 모양이 예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리도 똑 같은지, 언제까지 이런 반복이 계속되어야 멈출까?

다시 바람이 분다. 떨어지는 꽃잎이 눈 앞에 가득하다. 꽃의 몸부림도, 한숨도, 절망도 어지럽게 섞여 내린다. 사는 이치를 따지자면 꽃이 피고 지는 것이나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이 매한가지일 터이다. 나 역시 억울하게 당할 수는 없다고 무던히도 애썼던 지난 날들이 낙화 속에서 더욱 허무하다. 낮 뉴스는 지구촌에 또 다른 테러가 발생하여 많은 인명이 어이없이 가버렸다고 일기예보하듯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아, 바람에 꽃 지니 사람도 지네.

돌아나오며 ‘북풍한설 찬 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가곡 봉선화 노래를 가만히 불러본다. 억울하게 일찍 떠난 이들에게는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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