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 손진숙

 

 

추위가 물러간 즈음 봄비가 내렸다. 비 오는 날은 가급적 외출을 피하지만 시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우산을 썼으나 겉옷이 젖고 낡은 운동화 속에도 빗물이 새어들었다.

‘빗방울 전주곡’이 연주되는 우산을 고쳐 잡으며 올려다본 층수 낮은 아파트. 베란다에 독 3개가 불룩한 배를 내놓고 있다. 세 식구가 사는 걸까. 독 크기로는 아빠 · 엄마 · 아이로 보이고, 음표로는 도 · 레 · 미로 들린다. 단지 셋 뿐인 독이 썰렁한 것 같으면서도 단출하고 정답다. 그 곁 토분에서는 알로에 선인장이 팔 벌리듯 생기를 피우고 있다.

베란다에서 봄비를 감상하는 독을 보자,“요즘 된장찌개를 끓이지 않네.”라고 하던 엊그제 남편의 말이 생각난다. 마침 시장에 가는 길이니 달래를 사다가 향긋한 된장찌개를 끓여 식탁에 올려야겠다.

어릴 때 시골집 밥상 위에는 된장찌개가 빠지지 않았다. 읍내 장에서 특별한 반찬거리를 사 오지 않는 한 된장찌개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수없이 먹었던 된장찌개를 떠올리자 옛집 뒤란의 장독대가 선연하게 그려진다.

안방에 딸린 부엌에는 앞뒷문이 있고, 뒷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에서 가장 큰 단지가 된장 단지였다. 장을 담가 간장을 뜨고 남긴 된장을 잘 여미고 다독여 커다란 단지에 그대로 두고 먹었다.

매년 음력 이월 이맘때 장을 담그지 않았나 싶다. 가을에 콩으로 메주를 쑤어 처마 밑에 매달아 숙성시켰다가 한겨울에는 방 윗목에 쟁여 두었다. 장을 담글 때가 오면 아랫집 육티댁 할배에게 가서 장 담그는 날을 알아 오라고 심부름시켰다.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고 말수가 적은 할아버지는 상당한 학식을 갖춘 분이었던 것 같다. 손 없는 날을 택해야 할 만큼 장 담그기는 신성한 일에 속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독들이 오순도순 키재기를 하고 있는 장독대는 범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온 식구의 입맛을 좌우하는 특수 지대였다. 누가 경비를 서지 않아도 함부로 침범하면 안 될 듯한 엄숙하고 조심스러운 영역이었다.

장독 아래는 잔돌이 깔리고 둘레는 큰 돌로 경계를 지었다. 장독대에는 여러 용도의 돌들이 있었다. 부엌에서 앞쪽 잘 보이는 곳에 푸르고 노란 콩잎을 삭힐 때 누지르는 누름돌이 있고, 집안에 환자가 생겨 흰 죽을 쑬 때 쌀을 가는 풀매도 있고, 아이들 손발에 새까맣게 낀 때를 벗기는 때밀이 돌도 있었다. 동무들과 공기놀이를 할 때 공깃돌을 장독대에서 고르기도 했다. 장독대는 내가 아는 돌들의 집합소였고 진열대나 진배없었다.

장독대 한쪽 옆 토담은 기역자로 꺾이면서 탕자나무 울타리로 이어졌다. 늦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탱자가 장독대 주변에 떨어졌다. 어머니가 맏오빠를 임신했을 때 귤이 하도 먹고 싶어 장독대에 떨어진 탱자를 주워 즙을 빨아먹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머니의 음성에는 알 수 없는 비애가 느껴졌다. 그해 장맛은 탱자의 시고 쓴맛이 스며있지나 않았을까?

달구비가 내리는 날은 단지 뚜껑을 꼭꼭 닫아두었다가 밝게 갠 날 열어서 햇살과 바람이 머물다 가도록 했다. 그때 몰래 다녀간 쉬파리가 쉬를 슬어놓기도 했다. 간혹 구더기를 가려내는 어머니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아무려나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거나, 장을 못 먹지는 않았다.

장독대 옆에는 그리 넓지 않은 빈터가 있었고, 마늘과 고추를 심었다. 마늘이 내 손가락만큼 자란 봄날이었다. 어머니가 된장 항아리에서 생물체를 잡아내 놓으면 꼬맹이는 꼬물거리는생명체를 마늘밭에 풀어놓고 움직이는 양을 들여다보며 신기해했다. 그 광경을 본 어머니는 놀라는 표정으로 간이 크다고 했다.

음식의 짠 정도를 맞추는 간과 겁의 유무를 판단하는 간이 공교롭게도 같은 글자다. 그때 꼬마이던 나는 이미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 불구부정不垢不淨즉 깨끗함이나 더러움에 대한 분별도, 일체중생一切衆生즉 사람과 구더기에 대한 구별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불쑥 든다.

어머니 말대로 나는 간이 큰 게 맞을까? 간이 큰지는 모르겠지만 간을 많이 섭취하는 건 맞다. 남들보다 짜게 먹는 식습관이니 말이다.

어머니 세상을 달리하기 전, 마지막 통화 내용이 되살아난다.

“너 장 가져다주라고 형부에게 부탁해 놨다.”

차량이 없는 가난한 딸을 위한 끝없는 돌봄과 보살핌이었다.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어머니가 나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돈도 아니고 다른 무엇도 아닌, 장독대에 있는 장이었다. 한평생 치맛자락과 소맷자락을 스치던 장독대의 장은 어머니의 심장부나 다름없었다.

저녁 식탁에 올릴 달래 된장찌개가 봄 향기를 내며 보글보글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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