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 고考 / 정진권
일찍 아버지를 여윈 내 친구 박 형은 부모의 슬하에 사는 나를 늘 부러워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두 분을 다 잃은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가 늘 부러웠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저께 그 어머니의 상고를 당했다. 그래 퇴근길에 잠깐 둘러보았다. 대문에는 볼 밝힌 등이 매달리고 그 아래에는 짚신 몇 켤레가 놓여있었다. 고인은 살 만큼 산 분이니 모두 호상이라고 했다. 낮 문상 온 친구들과 소주잔을 나누며 그런 말을 했다. 그러나 박 형은, 젊은 나이에 혼잣손으로 철없는 어린 삼 남매를 기른 그 어머니를 생각하는 듯 간간이 흐느꼈다.
나는 좀 취기를 느끼며 일어섰다. 그런데 돌아오는 차 속에서였다. 이상하게도 그 대문 앞 불 밝힌 등 앞에 놓여 있던 짚신이 자꾸만 눈에 어리었다. 왜 짚신을 놓아두는 걸까? 저승 갈 때 신으라는 걸까? 저승으로 가는 길도 정말 있는 걸까? 차창 밖에는 찬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보고 온 적이 없는 그곳. 아무도 걸어 보고 온 일 없는 그 길.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오랜 세월을 두고 믿어온 것이 설마 거짓이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짚신을 신고 일어서는 고인의 환영이 눈앞에 떠올랐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나도 어려서 짚신을 신었다. 처음으로 짚신을 신을 때는 뒤꿈치가 벗겨지고 피도 나왔다.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 모른다. 맨발로 새 짚신을 신어도 괜찮을 때까지는 서너 번도 더 뒤꿈치가 벗겨져서 아주 굳은살이 박여야 한다. 고인은 혹 짚신을 신은 일이 있었을까? 농촌에서 자란 분이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만에 신어보는 새 짚신이 편할 리 없다. 버선을 신었어도 발아 아플 것이다. 머리카락 흩날리며 첫발을 떼어 놓는 고인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옷고름과 치맛자락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머잖아 그 위로 다리를 저는 고인의 모습이 겹쳐 왔다.
나는 어렸을 때 짚신을 신고 나무를 하러 다녔다. 아침 먹고 가서 한 짐, 점심 먹고 가서 한 짐, 날마다 두 짐씩 해 날랐다. 푸나무를 한 짐 해지고 내려오는 산길은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때로는 돌부리에 차여서 넘어지기도 했다. 잔디에 미끄러져 지게와 함께 구르기도 했다. 그러면 애써 칡으로 묶은 나뭇단이 풀어져 산산이 흩어졌다. 기가 막혔다. 저승길도 혹 그렇게 괴로운 길은 아닐까? 빈 몸으로 가는 길이긴 하지만, 노인이 고달플 것만 같았다. 어디 잠시 쉴 데가 없을까?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고인의 후유 하는 한숨 소리가 안타깝게 들려왔다.
내가 어렸을 때는 베 짜는 집이 많았다. 우리 집에서도 할머니와 어머니가 베를 많이 짜셨다. 그 베틀에는 짚신짝이 외톨로 한 짝 매달려 있었다. 흔히 말하기를 짚신짝도 짝이 있다지만, 베틀에는 외짝밖에 없었다. 한 짝은 어디 가고 외짝만 남았을까? 저승길 가는 많은 나그네들이 보였다. 그 속에는 아는 얼굴 하나 없이 외로이 섞여가는 고인의 모습도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물가물 저 앞에 누가 가는지, 다리를 저는 고인의 발걸음이 급해지는 듯했다. 옆도 보지 않고 걸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고인은 힘이 빠져 우두커니 서고 말았다.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좀 자라서 짚신을 삼아 보았다. 짚신을 삼으려면 짚을 물에 축여서 떡메로 쳐 두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신을 삼던 사랑방에는 언제나 호롱불이 희미했다. 나는 어렸을 때 거기서 어른들이 신 삼고 새끼 꼬고 가마니 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저승길은 멀다는데 고인은 신 삼을 줄이나 알까? 사랑방은 있을까? 있어도 낯선 얼굴들일 것이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빙 둘러 모르는 얼굴들. 다른 남정네가 신 삼는 걸 흘금흘금 바라보며 서투르게 손을 놀리는 고인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신은 본래 혼자 삼는 것이니 거들 수는 없다. 외로운 모습이었다.
이윽고 차가 동네 어귀에 닿았다. 하늘은 어느새 개고 푸른 별들이 총총했다. 나는 걸으면서 고인을 또 생각했다. 그 사랑방에 혼자 남겨둘 수가 없었다. 사랑방의 호롱불은 여전히 희미했다. 고인이 한숨을 쉬며 손을 놓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리 쥐요, 내가 삼을게. 고인이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그리도 매정하게 정을 끊고 앞서 떠난 그 얼굴 그 손길이 아닌가? 이튿날의 새 아침, 새 짚신을 신고 두 분이 나란히 걸어가는 싱그러운 이슬 길이 보였다. 저승을 일컬어 유계幽界라고 하지만, 그분들이 함께 가고 있는 그 길은 밝기만 했다.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날 밤 자리에 누웠을 때 마음이 퍽 홀가분했다. 저승길에 외롭던 박 형의 어머니가 이제는 조금도 외롭지 않고 그저 든든한 마음으로 길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 형의 아버지도 외롭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이제는 조금도 외롭지 않고 그냥 반가운 마음으로 길을 가게 되지 않겠는가? 아내는 그 남편보다 일찍 떠나지 말 일이다. 먼먼 저승길에 누가 짚신을 삼아 주겠는가? 그렇다고 늦게 떠날 것도 아니다. 이승의 베틀에 혼자 매달려 외짝 노릇이 어디 그리 쉬운가? 장례가 끝나면 박 형과 술이나 한잔하면서 두 분이 만난 이야기를 전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