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꼽는 독자들은 종종 내가 진실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의 편파성에서 기인한 과도한 칭찬이다. 내가 일부러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밝히려 하지도 않는다. 내가 표현하는 것은 단지 몇 가지 생각들로서, 인쇄인에게 넘기기에 충분한 정도의 것일 뿐이다.
내가 종종 남들을 분해하려고 하는것도 사실이지만, 사실은 내 자신에 대해서 수술칼을 갖다대는 것이다. 그것도 보다 냉정하게, 내가 자신을 가린 장막의 한 귀퉁이만을 들어올리면 예민한 정신들이 쏟아져 나온다. 만일 내가 자신의 전부를, 내 모습 그대로를 들춘다면 어떤 것일까?
때때로 사람들을 쫓아 버리기 위하여 이 방법을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나는데, 그렇게 해도 그때까지 나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비록 "뱀과 괴물 같은 놈"들일지라도 자신이 나의 친구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결국은 나의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런 와중에서 내 곁을 떠나간다면,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혼자 걸어가면 되니까. 그러나 당분간 나는 이 생각을 실행하는 것을 참을 용기가 없고 또 한편으로는 이 사회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고 나는 이것을 이미 서너 차례 말한 적이 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내가 우리의 '존경스럽고 올바른 생각을 하는' 동료시민들 사이에 불편한 느낌을 갖도록 할 수 있는 한, 내게 어떤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니, 왜냐하면 내 자신도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확실히 중국에는 '대가'와 '인도자'가 많이 있지만 나는 그 중에 들지 못하며 그들도 나의 신념을 어쩌지 못한다. 내 자신이 확신하는 결과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무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안내자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누구나가 아는 것이다.
문제는 이 최후의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제껏 그 중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 하며, 나를 중오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존경스럽고' 또 '올바른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원숙한 노년에 이르도록 살지만 경험 없는 나라는 존재가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을 해칠까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말을 모호하게 감추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니, 왜냐하면 내가 나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어쩌면 '불일치성'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즉흥적으로 글을 쓰며, 말들이 너무 자유스럽게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진실과 거리가 먼 생각은 없다.
나는 일련의 망설임과 불확실성으로 제약받고 있고 벌써 오랫동안 자신이 전사나 선구자를 이루는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서너해전의 일이라고 기억되는데, 한 학생이 내 책중의 하나를 사기 위하여 찾아 왔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내어 내 손에 쥐어준 돈은 그의 체온으로 따뜻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내가 펜을 잡을 때면 언제나 나는 그 학생과 같은 사람들을 해칠까 두려워한다.
나는 한 단어를 종이에 올리기 전에 오랫동안 망설인다. 내가 주저없이 말을 할 수 있는 때는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며, 비록 젊은 세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모든 망설임을 버려야 한다고 때때로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내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작가, 사회운동가, 사상가. 근현대 중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근현대 중문학의 아버지이다. 그의 소설들은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근현대 중국 문인 중 가장 존경받는 작가로, 현대 중화권 최고 작가들 역시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는다. 또한 그는 오늘날에 중국의 "민족의 영혼"으로도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