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내리네 김정화

 

 

 

검다온통 검은 세상이다검은 나무들이 검은 숲을 만들고 검은 하늘이 검은 강물 위에 내려앉았다달마저 숨은 그믐밤강을 에워싼 맹그로브 숲의 바람도 잠이 들었다몇몇 여행자를 실은 나뭇배 사공은 말없이 노를 저었다말레이 서쪽 반도 셀랑고르 강을 따라 반딧불이를 찾아가는 중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외딴집 근처 강 숲에는 지천으로 반딧불이가 많았다전깃불이 없는 시골집에 강가의 반딧불이가 모여들면 나는 잠도 잊은 채 꼬리에서 반뜩이던 조그만 등불을 눈이 시리도록 올려다보았다우리 동네 아이들은 개똥별이라고 부르고 윗동네 조무래기들은 까랑이라고 했다어른들이 부르는 반디나 개똥벌레가 반딧불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동네 광자 언니가 이름 붙인 땅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언젠가 나는 그 이름을 흉내 내어 지상의 별이라는 제목만 근사한 시를 긁적여 보기도 했다.

드문드문 보이던 촌락도 자취를 감춘 지 꽤 오래되었다배가 밀림 깊숙이 들어갈수록 물살은 험했고 물은 점점 깊어졌다갑자기 배가 휘청거리더니 강 한가운데 턱 멈춰 선다문득 아까 나루터에서 원주민 소년이 강에 악어가 산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입술이 바싹 탄다옆자리 중국인 노부부가 서로 바짝 당겨 앉는다다들 말이 없다정말 반딧불이를 볼 수나 있을까.

오래전 남호주에 있는 와인밸리에 간 적이 있다여름 해가 이울도록 광활한 포도 농원의 풍광에 빠졌다가 돌아 나오는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황톳길 언덕에는 황량한 바람만 불어댔다길을 놓친 여행자에게 불빛만큼 반가운 일이 있을까작은 마을길을 들어서자 갑자기 모퉁이가 환해졌다신기하게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커다란 창문에서 반짝이고 있었다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가게라고 했다한여름의 크리스마스트리도 놀라웠지만 어둠 속에 별빛을 모아놓은 듯한 그 이국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서 익는다이곳 밀림 풀숲에도 땅별의 기적은 일어날까.

사공은 한참 만에 배 바닥에 엉킨 그물을 걷어내었다다시 걸쭉한 물살을 가르며 배가 미끄러져 들어간다검은 하늘 아래 검은 강 위에 홀로 남겨진 배가 고요를 싣고 흐른다마치 암흑천지 세상에 홀로 떠가는 인생처럼이 낯선 강의 어둠도 내 인생의 여울목이라고 생각하면 괜찮다두려움쯤이야 숨 고르기 몇 번 하면 사라지는 것을가슴 밑바닥까지 치는 고요를 만나기가 어디 쉬운가내밀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두 번 없는 기회니까.

얼마쯤 더 갔을까줄기를 뻗어 강에 발을 담근 맹그로브 나무뿌리가 희끗하게 모습을 드러낸다그 위로 어둠을 걷어내는 은빛들이 물결치듯 일렁거렸다검은 물검은 나무검은 하늘 사이로 드러나는 것은 오직 하얀색희디흰 반딧불이가 검은 숲을 하얗게 태우고 있다한두 마리가 아니다수백수천 마리가 숲을 뒤흔든다경이로웠다나의 여행길에서 가장 성스러운 순간이다진정 그들이 땅 위의 별이다.

반딧불이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몸짓도 향기도 아닌 빛으로만 사랑을 속삭인다온몸을 밝히고 그 뜨거운 몸을 바쳐 구애를 한다. “그대여나에게로 오세요.” 그들에게 주어진 생명은 겨우 열흘 남짓일여 년을 풀숲과 땅속에 살다가 날개가 돋으면 비로소 단 한 번의 외출을 한다당연히 사랑도 단 한 번뿐이다.

짧은 생이 얼마나 기막힐까울 수 있는 시간조차 없기에 스스로 소리마저 삼켜버린 것은 아닌지눈물겨운 몸짓빛나게 끝나는 사랑이다그래서 우리는 반딧불이를 두고 슬픈 발광發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그 빛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당신도 사랑하고 있나요?”라며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별이 내린다지난날 호주의 와인밸리에서 보았던 인공의 별빛이 아니다검은 하늘의 흰 소낙별들이 모두 이곳 맹그로브 밀림 숲에 머리를 부딪고 산산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인간의 숨소리조차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고요.

셀랑고르 강의 별들이 태어나고 또 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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