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big deal) / 박경대

 

 

사자들의 파티가 끝이 날 무렵 차량이 몰려들었다. 철수를 결정하고 차를 돌리는 순간 머리가 뜨끔하여 만져보니 손에 피가 흥건히 묻었다. 정수리 부분이 찢어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언제 다쳤는지는 기억에 없다. 콘솔박스에서 휴지를 찾아 지그시 눌렀다. 상처가 크게 생겼으나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슬며시 웃음까지 나왔다. 원했던 영상을 건졌기 때문이었다.

동아프리카의 새벽은 예상외로 쌀쌀하였다. 한 장의 담요 속에서 새우처럼 웅크린 채 잠이 깨였다.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둘러보니 주위는 아직 칠흑같이 캄캄했다. 시각을 가늠할 수 없었다. 들판 멀리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의 외마디 괴성과 하이에나들이 다투는 소리가 아침이 깨어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머리맡에 둔 시계를 보니 야광침이 네 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비록 테이블 위에만 비치는 전기라도 들어오려면 삼십 분이 남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열흘이 넘었으나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잠이 깨였다. 하긴 한국은 오전 10시 즈음이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손을 더듬어 서랍 속의 양초 한 자루에 불을 댕겼다. 텐트 속은 금세 밝고 따스한 빛으로 채워졌다.

무심히 누워 희끄무레한 텐트의 천장을 보고 있었다. 방안을 날아다니는 곤충의 그림자가 마치 꿈속에서 본 동물들의 움직임 같다. 이렇게 무료한 시간이면 전날 촬영하던 순간이 생각났다. 잘 찍혔을까 하는 걱정과 결정적인 순간을 놓친 안타까움에 오늘은 어떨까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하루걸러 좋은 순간을 만났으니 괜찮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를 해보았다.

전기가 들어오니 주위의 텐트들이 일제히 떠들썩해졌다. 사파리를 떠나는 사진가들의 부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카메라를 준비하는 나의 손도 바빠졌다.

어둑어둑한 마당 한쪽에서 운전기사 에반스가 손을 흔들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오늘 사파리코스는 네 마음대로 가보자고 하니 어깨를 으쓱하더니 과장된 목소리로 “OK”를 외친다. 에반스는 다른 차량들과 함께 출발하였다. 뒷좌석의 나는 실눈을 하고 하늘의 독수리 떼를 쫓고 있었다.

맹금류는 1km 전방의 잠자리도 찾을 정도로 시력이 좋다. 사파리 도중 그들 무리가 한곳을 맴돌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그 아래에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독수리는 동물사진가에게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한다.

해 뜰 무렵, 대규모의 버펄로 떼가 흙먼지를 일으키고 지나갔다. 그 무리 앞에는 사자들이 달아나고 있었다. 다가가면 도망가고 다시 가까워지면 멀리 가버리는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무리의 숫자가 많으니 사자도 맥을 추지 못했다. 거리도 멀었지만 욕심나는 장면이 아니었기에 구경만 했다.

소시지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였다. 멀리에서 차량 두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 있었다. 무심코 그들이 향하는 방향을 망원경으로 살펴보았더니 사자 몇 마리가 뒤엉켜 있었다. 저런 장면은 수없이 보았다면서 눈을 떼려는데 사자들의 중간에서 기린의 목이 불쑥 튀어 올라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어이쿠’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곳까지는 약 7~800m가량 되었다. 길이 무척 험하였으나 흥분한 나의 모습에 에반스는 웅덩이와 갈대밭을 가리지 않고 직선으로 내달렸다. 지프가 마치 널뛰듯 했다. 차량 천정에 머리가 부딪히고 목에 건 카메라는 턱을 쳤다.

현장에는 놀라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암사자 세 마리가 기린 한 마리를 물어뜯고 있었고 기린은 사자로부터 달아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기린의 다리에는 이미 큰 상처가 있었다. 피 맛을 본 사자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도망간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기린은 오랜 시간 서서히 죽어 갔다. 기린의 몸부림이 잦아들자 사자도 공격의 강도가 약해졌다.

생명이 죽어가는 현장은 무척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땅에 올 때부터 그런 생각은 지워버리기로 다짐을 하였다. 야생의 세계에서 그들의 행동은 인간들이 단순히 하는 생리적인 현상, 예컨대 물을 마시고 화장실 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많은 필름을 사용하였다. 삼사일 후에 촬영지를 옮길 예정이었는데 이곳에서 리얼한 장면을 찍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극적인 상황이 끝나갈 무렵 무전 연락을 받은 사파리 차량들이 몰려왔다. 나는 일찍 도착하여 충분히 촬영한 뒤라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피나는 머리를 지압하며 로지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 웅덩이가 보이자 조금 전 달리면서 차의 지붕에 머리를 부딪친 생각이 났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나 상황이 종료되니 머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일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하이에나가 가젤 한 마리를 얻기 위해서는 숨이 차 기절할 만큼 달려야 하고, 임팔라가 호수의 물을 마실 때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악어 또한 목마른 임팔라가 나타나길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래! 귀한 사진을 한 장 얻었는데 이것쯤이야’ 하며 상처에 대범해졌다.

저녁식사 중 이빨이 욱신거려 거울을 보니 어금니 하나가 깨어져 있었다. 참아보려 하였지만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다음날 아침, 어쩔 수없이 치과를 찾아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나이로비로 향했다. 그 한 컷 작품은 상처의 대가로 치른 잊지 못할 빅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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