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 김훈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내가 사는 마을의 곡릉천(曲陵川)은 파주평야를 구불구불 흘러서 한강 하구에 닿는다. 여름내 그 물가에 나와서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생각했다. 마침내 와서 닿는 것들과 돌아오고 또 돌아오는 것들을 생각했다. 생각의 나라에는 길이 없어서 생각은 겉돌고 헤매었다. 생각은 생각되어지지 않았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생각은 아프고 슬펐다.

바다는 멀리서 보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바다의 기별이 그 물가에 와 닫는다. 김포반도와 강화도 너머의 밀물과 썰물이 이 내륙 하천을 깊이 품어서 숭어 떼들이 수면 위로 치솟고 호기심 많은 바다의 새들이 거기까지 물을 따라 갯벌을 쑤신다. 그 작은 물줄기는 바다의 추억으로 젖어서 겨우 기신기신 흐른다. 보이지 않는 바다가 그 물줄기를 당겨서 데려가고 밀어서 채우는데, 물 빠진 갯벌은 ‘떠돌이 창녀 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서정주「격포우중」에서)와도 같이 젖어서 질퍽거린다. 저녁 썰물에 물고기들 바다로 돌아가고 어두워지는 숲으로 새들이 날아가면 빈약한 물줄기는 낮게 내려 앉아 겨우 이어가는데, 먼 것들로부터의 기별은 젖은 뻘 속에서 질척거리면서 저녁의 빛으로 사윈다.

가을은 칼로 치듯이 왔다. 가을이 왔는데, 물가의 메뚜기들은 대가리가 굵어졌고 굵은 대가리가 여름내 햇볕에 그을려 누렇게 변해 있었다. 메뚜기 대가리에도 가을은 칼로 치듯이 왔다. 그것들도 생로병사가 있어서 이 가을에 땅 위의 모든 메뚜기들은 죽어야 하리. 그 물가에서 온 여름을 혼자서 놀았다. 놀았다기보다는 주저앉아 있었다. 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이라고, 그 갯벌은 가르쳐 주었다. 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사랑’의 메모장을 열어보니 ‘너’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언제 적은 글자인지는 기억이 없다. ‘너’ 아랫줄에 너는 이인칭인가 삼인칭인가, 라는 낙서도 적혀 있다. ‘정맥’이라는 글자도 적혀 있다. ‘너’와 ‘정맥’을 합쳐서 ‘너의 정맥’이라고 쓸 때, 온몸의 힘이 빠져서 기진맥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름’이라는 글자 밑에는 이름과 부름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라고도 적혀 있다. 치타, 백곰, 얼룩말, 부엉이 같이 말을 걸 수 없는 동물의 이름도 들어 있다. 이 안쓰러운 단어 몇 개를 징검다리로 늘어놓고 닿을 수 없는 저편으로 건너가려 했던 모양인데, 나는 무참해서 메모장을 덮는다.

물가에서 돌아온 밤에 램프 밑에 앉아서 당신의 정맥에 관하여 적는다.

그해 여름에 비가 많이 내렸고 빗속에서 나무와 짐승들이 비린내를 풍겼다. 비에 젖어서, 산 것들의 몸 냄새가 몸 밖으로 번져 나오던 그 여름에 당신의 소매 없는 블라우스 아래로 당신의 횐 팔이 드러났고 푸른 정백 한 줄기가 살갗 위를 흐르고 있었다. 당신의 정맥에서는 새벽안개의 냄새가 날 듯했고 정맥의 푸른색은 낯선 시간의 빛깔이었다. 당신의 정맥은 팔뚝을 따라 올라가서, 점점 희미해서 가물거리는 선 한 줄이 겨드랑이 밑으로 숨어들어갔다. 겨드랑 밑에서부터 당신의 정맥은 몸속의 먼 곳을 향했고, 그 정맥의 저쪽은 깊어서 보이지 않았다. 당신의 정맥이 숨어드는 죽지 밑에서 겨드랑 살은 접히고 포개져서 작은 골을 이루고 있었다. 당신이 찻잔을 잡느라고, 책갈피를 넘기느라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느라고 팔을 움직일 때마다 당신의 겨드랑 골은 열리고 또 닫혀서 때때로 그 안쪽이 들여다보일 듯했지만, 그 어두운 골 안쪽을 당신의 살 속을 파고 들어간 정맥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고 사라진 정맥의 뒤 소식은 아득히 먼 나라의 풍문처럼 희미해서 닿을 수 없었다. 정맥의 저쪽으로부터는 아무런 기별도 오지 않았는데, 내륙의 작은 하천에 바다의 조짐들과 바다의 소금기가 와 닿듯이, 희미한 소금기 한 둘이 얼핏 스쳐오는 듯도 싶었고 아무런 냄새도 와 닿지 않는 듯도 싶었다. 환청(幻聽)이나 환시(幻視)처럼 냄새에도 환후(幻嗅)라는 것이 있어서 헛것에 코를 대고 숨을 빨아들이는 미망이 없지 않을 것인데, 헛것인가 하고 몸을 돌릴 때, 여름 장마의 습기 속으로 번지는 그 종잡을 수 없는 소금기는 멀리서 가늘게, 그러나 날카롭게 찌르며 다가오는 듯도 했다. 내 살아 있는 몸 앞에서 ‘너’는 그렇게 가깝고 또 멀었으며, 그렇게 절박하고 또 모호했으며 희미한 저쪽에서 뚜렷했다.

‘너’가 이인칭인지 삼인칭인지 또는 무인칭인지 알 수 없는 날엔 혼자서 동물원으로 간다. 동물들은 모두 다 제 똥과 오줌과 제 몸의 냄새를 풍긴다. 기린이나 얼룩말이 목을 길게 빼고 먼 곳을 바라볼 때, 그 망막에 비치는 세계의 내용을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기린의 눈의 안쪽으로 나의 시선을 들이밀 수가 없다. 올빼미의 눈과 독수리의 눈에 비치는 나를 나는 감지하지 못한다. 늙은 독수리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미동도 하지 않고 철망 밖을 내다본다. 백곰은 하루 종일 철망 안쪽을 오락가락한다. 그의 앞발은 무겁고 그의 엉덩이는 늘어져 있다. 백곰은 앞발을 터벅터벅 내딛어, 몸을 흔들며 철망 안을 서성거린다. 코를 철망에 비비면서 저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백곰의 눈은 반쯤 감겨 있다. 백곰의 동작은 대낮의 몽유(夢遊)처럼 보였다. 철망에 쓸려서 해진 콧구멍으로 피를 흘리면서, 백곰은 돌아오고 또 돌아간다. 수사자는 시멘트 바닥 위에서 저편으로 돌아누워 있다. 갈기가 흘려내려 바닥에 닿았고 돌아누운 옆구리를 벌떡거리며 숨을 쉰다. 귀 기울이면 사자의 숨소리가 들린다. 숨은 바람처럼 사자의 콧구멍으로 몰려 들어갔다가 다시 쏟아져 나온다. 숨이 드나들 때, 창자가 ‘가르릉’ 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늙은 사자의 숨소리는 불균형하고 숨쉬는 옆구리는 힘들어 보인다. 코끼리 발바닥은 발가락 다섯 개가 한 덩어리로 붙어 있고, 붙은 발가락에 제가끔 발톱이 박혀 있다. 공룡 시대부터 지금까지 그 발가락 다섯 개는 분화되지 않았다. 코끼리는 그 들러붙은 발바닥으로 둔중하게 땅을 딛는다. 다시 억겁의 세월이 지나야 코끼리의 발가락은 갈라지는 것인지, 발가락은 갈라짐의 먼 흔적들을 지닌 채 들러붙어 있다.

‘사랑’의 메모장에 왜 동물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인지 지금은 기억이 없다. 아마도 ‘사랑’이 아니라 ‘죽음’의 항목 안에 써놓아야 할 단어들이었다. 동물원에서 코끼리 발바닥과 기린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너’는 이인칭이 아니라 삼인칭임을 안다. ‘너’가 삼인칭으로 다가오는 날엔 내가 사는 마을의 곡릉천을 보러 간다.

다시 ‘사랑’의 메모장을 연다. ‘시선’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강’이라는 단어도 적혀 있다. ‘시선’을 적은 날은 봄이었고, ‘강’을 적은 날은 가을이었다. 봄에서 가을 사이에는 아무런 메모도 없었다. 메모가 없는 날들이 편안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시선’ 밑에는 ‘건너가기’라고 적혀 있고, ‘강’ 밑에는 또 ‘혈관’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농수로’도 있고, ‘링거주사’도 보인다. 불쌍해서 버리고 싶은 단어들인데, 버려지지가 않는다.

내가 당신과 마주앉아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당신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았고, 당신의 시선이 내 얼굴에 닿았다. 당신의 시선은 내 얼굴을 뚫고 들어와 몸속으로 스미는 듯했고,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목소리에 이끌려, 건너와서 내게 닿는 당신의 시선에 경악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부름으로 당신에게 건너가고 그 부름에 응답하는 당신의 시선이 내게 와 닿을 때, 나는 바다와 내륙 하천 사이의 거리와, 나와 코끼리 발바닥 사이의 시간과 공간이 일시에 소멸하는 환각을 느꼈다. 그것이 환각이었을까? 환각이기도 했겠지만, 살아 있는 생명 속으로 그처럼 확실하고 절박하게 밀려들어온 사태가 환각일 리도 없었다. 그리고 당신이 다시 시선을 거두어 고개를 숙일 때, 당신의 흘러내린 머리카락 위에서 햇빛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당신의 먼 변방에 주저앉은 나는 당신의 겨드랑 밑으로 숨어드는 푸른 정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당신의 푸른 정맥은, 낮게 또 멀리 흐르는 강물처럼 보였다. 나는 나주 남평의 드들강을 생각했다. 드들강은 넓고 고요하다. 들에 낮에 깔려 다가오는 강은 강가에 앉은 자의 몸속을 지나서 흘렀다. 저녁이면 노을이 풀리는 강물은 붉게 빛났고, 강물이 실어오는 노을과 어둠이 몸속으로 스몄다. 당신의 겨드랑 속으로 사라지는 당신의 정맥이 저녁 무렵의 강물처럼 닥쳐올 시간의 빛깔들을 실어서 내 몸 속으로 흘러들어오기를 나는 그 강가에서 꿈꾸었던 것인데, 그때 내 마음의 풍경은 멀어서 보이지 않는 바다의 기별을 기다리고 또 받아내는 곡릉천과도 같았을 것이다. 곡릉천은 살아서 작동되는 물줄기로 먼 바다와 이어져 있다.

내 빈곤한 ‘사랑’의 메모장은 거기서 끝나 있다. 더 이상의 단어는 적혀 있지 않다. ‘관능’이라고 연필로 썼다가 지워버린 흔적이 있다. 아마도, 닿아지지 않는 관능의 슬픔으로 그 글자들을 지웠을 것이다. 너의 관능과 나의 관능 사이의 거리를 들여다보면서 그 두 글자를 지우개로 뭉개버렸을 것이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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