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박경대

 

 

 

아차’ 하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금세 장갑 밖으로 붉은 피가 배여 나왔다나도 모르게 내뱉은 작은 외마디 소리를 어떻게 들었던지 근처에서 일하던 J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장갑을 벗었다.

그날은 무척 더웠다얼려서 가지고 온 생수가 금세 녹을 정도였다칠월 한낮 볕에는 가리개 모자도 무용지물이라 오후 내내 얼굴이 후끈거렸다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잡초와 씨름을 하던 중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어지러워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그때 몇 결음 앞에 하프라인이 보여 그곳까지 풀을 뽑기로 하였다뒤뚱거리는 오리걸음으로 도착한 목표지점에는 쑥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한 손 가득 움켜잡고 호미를 내리꽂는 순간흰 라인에 반사된 강한 햇살에 머리가 아득해지면서 손을 쳐버리고 말았다.

몇 년 전오랫동안 취미 삼아 해오던 사진 촬영이 뜻대로 되지 않는가 싶더니 카메라를 보는 것조차 싫어졌다슬럼프에 빠진 것이다하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현상이라 큰 걱정을 하지 않고 무심히 지내고 있었다그러던 차언젠가 전원생활을 하게 되면 도움이 될듯하여 조경에 관한 공부를 일 년쯤 하였더니 자격증 하나가 생겼다그때 마침 멀지 않은 축구장에 잔디와 조경수를 관리할 요원을 뽑으니 원서를 내보라고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취직을 하기 위해 배웠던 것이 아니어서 흘려들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펄쩍 뛰었다느지막이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온종일 TV를 끼고 있는 남편이 답답하게 보였으리라그런 나를 내보내고 싶어 아내는 봉급의 다소와 근무내용을 막론하고 응시해보라며 연일 채근하였다결국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낸 원서였는데 운이 좋았던지 용케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이다잡초와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잔디 구장에 무슨 힘든 게 있으랴 생각했건만 예상외로 할 일이 많았다매일 물을 주고규격에 맞도록 잔디를 깎아야 했다비료도 수시로 뿌렸고 경기가 있었던 다음 날은 보식하여 상처투성이의 구장을 손질하였다또한땅심을 돋우고 숨수멍을 내주기 위해 천공과 모래 뗏맙을 넣기도 했다잔디를 관리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고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지만 가장 힘든 일이 잡초 제거였다.

날마다 들쑤시고 캐어내도 다음 날이면 또 어김없이 머리를 내미는 질긴 놈들이었다어느 바람결에 날아왔는지어디에서 묻어왔는지잔디 사이에 숨어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또끼풀과 쇠뜨기매듭 풀에다 냉이도 보이고 이름 모르는 들풀과 버섯까지 눈에 띄었다비료도 주지 않는 그들이지만 매일같이 돌보는 잔디보다 더 생장이 빠르고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왕성하게 자란 잡초를 캐낼 때면 후련하기도 했지만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깻잎 밭에 쑥이 나면 쑥은 잡초가 되고 쑥을 재배하는 곳에 깻잎이 싹을 틔우면 깻잎은 뽑히는 것처럼그들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싹을 틔웠더라면 보살핌을 받았을 텐데 자리를 잘못 잡은 탓에 미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잡초로 취급받아 뽑히는 풀은 셀 수 없이 많다그러나 사실 그들 중 상당수가 한방의 약재로 사용된다소리쟁이나 쇠비름 그리고 환삼덩굴은 고혈압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게다가 먹을 수 있는 잡초도 많다방가지똥은 물에 씻어 그냥 쌈으로 먹고 부침개를 해 먹기도 한다또한강아지풀과 토끼풀심지어 논에서는 골칫거리인 피까지 먹는다골골한 사람을 보고 피죽도 못 먹느냐 하는 말은 어렵던 보릿고개 시절에는 그것도 먹었다는 방증이리라.

이처럼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물론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어느 용도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다만 적당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면 버려지는 것이다모든 것이 그러한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하루가 멀다고 오리처럼 걸으며 잡초를 캐내는 작업이 힘들다금방이라도 호미를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무릎과 발목에도 고통이 느껴진다허리를 펴기 위해 일어나면 한없이 넓어 보이는 구장에 한숨이 절로 난다아지랑이 피는 구장을 보고 있으면 예전 한때 머룰렀던 아프리카의 대평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삼사십 대의 젊은 시절세상이 좁다 하고 활개를 치며 다녔던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이 무척 초라해 보인다손에 들려 있는 잡초처럼 나 역시 사회에서 별 쓸모없는 한갓 잡풀 신세가 되어가는 것 같아 착잡하다.

피 묻은 장갑을 벗겨내고 상처 난 검지가 드러났다오른손으로 지압하는 동안 J형이 손가락을 소독하려는 듯 생수를 부은 뒤 버리려던 쑥 몇 닢을 씻어 비볐다짓이긴 쑥을 상처에 붙이고 지갑에서 일회용 반창고 하나를 꺼내어 감았다. J형이 치료가 끝났다면서 싱긋 웃었다.

상처를 감싸고 있는 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성가신 잡초로만 여겼던 쑥으로 찢어진 손가락을 치료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문득 나 역시 이 쑥과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풀밭에 자라나는 여러 가지 들풀이 약초가 되느냐 잡초로 남느냐의 판단은 쓰이는 용도에서 결정되는 것이리라일하면서 나의 존재가 차츰 잡초처럼 되어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그처럼 나 스스로 이 일에 정을 붙이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는 이곳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잡초가 될 것이다이제부터라도 이 쑥처럼 나의 자리가 어디든 최선을 다하여 꼭 필요한 역초가 되고 싶다설령 긴 슬럼프가 끝나는 날이 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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