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에 나와 서다 / 맹난자
공원 담장에 기대 나는 온몸으로 봄볕을 받고 있다. 전신으로 퍼져오는 이 나른함, 알 수 없는 이 안도감은 무엇일까? 다리에서 슬며시 힘일 빠지던 어느 날의 취기와도 같고, 수술실로 들어서기 전, 마취상태에서 맛본 짧은 순간의 황홀함과도 닮아 있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무거워진 눈꺼풀로 공원 표지석이 세워진, 늘 가서 앉던 벚나무 옆의 벤치로 간다. 풍랑 없는 기착지에 닻을 내린 거룻배처럼 무언가 홀가분하고 편안한 마음이다. 지난 추위가 혹독한 사람에게 있어 봄볕은 얼마나 큰 위안이던가. 나는 지금 그런 은총 속에 있다. 봄이 점점 더 좋아지는 이유도 아마 이 봄볕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가을은 중년의 계절, 고독한 나그네가 가을 소리를 누구보다 앞서 듣는다. 그것은 스산한 바람 탓이리라. 봄은 노년의 계절, 마음 시린 노인네가 먼저 봄볕을 반기게 되는데, 그건 선 자리가 음지陰地이기 때문이리라.
볕바른 양지에 앉아 나는 기분 좋게 눈을 감고 벚나무의 냄새를 찾아 더듬어 올라간다. 머릿속은 벌써 향긋한 벚나무 냄새로 가득하고 편편片片이 날리던 작은 꽃잎의 낙화, 눈을 감고 있어도 얼마든지 보인다. 구름떼 같이 만개한 벛꽃을 보러 나는 십여 년 동안 이곳에 왔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빛나는 시간을 기억하고, 생장소멸生長消滅로 이어지는 윤회의 고리를 지켜보았었다.
지금 저 나무에서도 수액을 실어 나르는 정령精靈들의 고단한 손길이 느껴진다. 올려다본 버찌나무의 몸피에는 어느새 작은 망울들이 부풀어 있고, 머지않아 그놈들은 예쁜 꽃을 피울 테지. 파릇하게 접힌 새잎은 자라서 선홍빛 단풍이 들리라. 나무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화를 계속한다. 그러나 춘하추동의 생장소멸로 반복되는 변화의 법칙, 그 자체만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변화하는 것 가운데 변하지 않는 불역不易의 이치. 나는 변화 속의 지속, 거기에서 시간의 불사不死를 본다.
죽은 듯 하던 나무가 소생하고 마치 구름과 비처럼 그 형태를 달리할 뿐, 끊임없이 존속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여기에 내 존재를 견주어 본다.
벚꽃이 한 번 피었다가 우르르 떨어지듯, 내가 한 번 태어났다 홀연히 사라지는 이 생멸법生滅法. 이것은 모습을 달리하는 현상일 뿐, 본질의 세계에서는 소멸도 없고 가감加減 또한 없다. 밤하늘의 달이 늘어나거나 줄어든대도 끝내 없어지지 아니함과 같다. 한 번 밤이 되면 한 번 낮이 되는 것처럼, 한 번 음지死가 되면 한 번 양지生가 된다. 순환상생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이법理法을 따라 나는 누구의 방해도, 지시도 없이 다만 변화할 뿐인 존재인 것이다.
새까맣게 잘 여문 분꽃 씨앗이 어느 날 '똑'하고 땅에 떨어질 때, 그 생명 속으로 들어가 분꽃으로 다시 태어난대도 무방하다.
봄볕 탓인가? 검붉은 밭이랑의 흙처럼 스멀스멀한 어떤 기운이 내 안에서도 일어난다. 생명의 활동일 테지. 지나가는 현상을 몸으로 감각하는 일, 이것이 살이 있다는 것일까.
천지의 도道는 바뀌지 않지만, 천지의 변화는 날마다 새롭다. 불역不易 속의 일신日新이다. 이제는 그만 남루를 벗고 고치에서 빠져나온 나비처럼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유리알 유희》의 주인공, 크네히트처럼 다섯 번째의 진화한 영혼으로 한 번 더, 그 다음은 세상에 올 일이 없었으면 한다.
눈부신 봄볕 아래 서니 그동안의 삶이 아득한 전생사前生事같이 멀게만 느껴진다. 이 따뜻한 나른함 속, 그대로 혼곤한 잠에 들어도 좋으리라. 무거운 눈꺼풀을 내려놓는다. 남의 집 담벼락 미에서 동사한 성냥팔이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왠지 나와 무관하지 않은 어느 전생의 일 같다. 그녀가 무수히 그어댄 짧은 성냥개비의 불꽃 속에서 만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꾸만 그 환영幻影에 마음이 간다.
약해진 시력 탓인지, 물안개같이 신기루같이 내 눈에 어른거리는 들판의 그림자. 사람의 손짓 같다. 구름같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에 잠시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봄의 대합실에서 바꿔 타야 할,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으로 나는 앉아 있다. 아! 이렇게 겨울 뒤에 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진실로 나와 악수할 수 있는 시간이 허여된다는 것은.
한 뼘씩 봄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