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천득

 

 

잠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엄마 젖을 물고 잠든 기억은 없고, 엄마 옷고름을 내 손가락에다 감고 잠이 들던 것만이 생각난다. 한 번은 밤 나들이를 갔다가 졸음이 와서 엄마를 못살게 굴었는데, 업혔던 처네끈이 끌러지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어느 틈에 집에 와 있었다. 또 어떤 날 밤 집안 식구들이 잔치 준비 하느라고 부산한 통에 나는 밀가루 반죽으로 새를 만들다가 더운 아랫목에 쓰러져 자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도 이부자리를 깔지 않고 옷도 벗지 않은 채 쓰러져 자는 잠이 참 달다. 이런 때 자리를 깔고 흔들어 깨우는 것 같이 미운 것은 없다. 그때는 벌써 잠은 달아난 것이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남이 늘어놓으면 눈을 감고 있다가 자버리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런 배짱은 없지만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곧잘 잠을 잔다. 찬미 소리에 잠이 깨면 천당에 갔다 온 것 같다. 나는 회의석상에서도 조는 수가 일쑤다. 한참 자다 깨어도 토의는 별로 진전이 없고 여전히 갑론을박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동안에 어떤 사항이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이라면 나중에 자연히 알게 된다. 나는 언젠가 어떤 노름판 한구석에서 단잠을 잔일이 있다. 밤참이 들어왔다고 잠을 깨워도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었다. 또 언젠가는 요정에서 취한 친구들이 떠들어 댈 때 나 혼자 기생의 무릎을 베고 단잠을 잤었다.

 

밤 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셨다면 멋있는 것 같기도 하나, 이런 향락은 자연과 인생이 주는 가지가지의 기쁨과 맞바꿔야 되는 것이다. 잠을 못 잔 사람에게는 풀의 향기도 새소리도 하늘도, 신선한 햇빛조차도 시들해지는 것이다. 잠을 희생하는 대가는 너무나 크다. 끼니를 한두 끼 굶고는 웃는 낯을 할 수 있으나, 잠을 하루 못 잤다면 찌푸릴 수밖에 없다. 친구가 산책을 거부하거든 그가 전날 밤 잠을 잘 못 잤다고 인정하라. 작은 일에 신경질을 부리는 때에도 그리 알라. 마음과 몸이 아무리 지쳤다 하더라도 잠만 잘 자면 이튿날 거뜬히 일어나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잠 못 드는 정취를 나라고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런 심정이라든지, "밤중의 만정 명월이 고향인 듯하여라" 같은 아취는 잠 못 자는 사람이 아니고는 모를 것이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을 생각할 때 잠 못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밤이 너무 아름다워 나룻배를 타고 맨해튼과 브루클린 사이를 밤새껏 왔다갔다한 애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을 방해하는 큰 원인은 욕심이다. 물욕, 권세욕, 애욕, 거기에 따르는 질투, 모략 이런 것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수가 많다. 거지는 한국은행 돌층계에서도 잠을 잘 수가 잇다. 나는 면화를 실은 트럭 위에서 네 활개를 벌리고 자는 인부들을 본 일이 있다. 그때 바로 그 뒤에는 고급 자가용차가 가고 있었다. 그 차 속에는 불면증에 걸린 핼쑥한 부정축재자의 얼굴이 있었다.

 

잠자는 것을 바라보면 연민의 정이 일어난다. 쌔근거리며 자는 애기, 억지 쓰다가 잠이 든 더러운 얼굴, 내가 종아리를 맞고 자는 것을 들여다보고 엄마는 늘 울었다고 한다. 입을 벌리고 자는 여편네 얼굴은 밉기도 하지만 불쌍하기도 하다. 잠이 채 깨지 않은 여인의 전화 받는 음성은 애련하기 짝이 없다. 잠은 모든 욕심에서 해탈된 상태이므로 독재자가 자는 꼴도 불쌍할 것이다. 옛날에 나이트는 적이라도 자는 것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짧은 수명에서 잠자는 시간을 빼면 훨씬 짧아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잠이 얼마나 흐뭇하고 달콤한가를 생각지 않고 하는 말이다. 어렸을 때 나는 절 구경을 갔다가 극락세계를 그려놓은 벽화를 보고 연화대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는 한가한 곳이라면 아니 가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만약 천국에 잠이란 것이 없다면 그곳이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나는 정말 가지 않겠다. 내가 보스턴 미술관에서 본 수많은 그림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둘 있다. 그런데 둘 다 자는 것을 그린 그림이다. 하나는 밀레의 그림으로 농부들이 들에서 낮잠 자는 것을 그린 것이요, 또 하나는 누구의 것인지 잊었지만 잠을 자는 소녀와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소년을 그린 것이다.

 

왜 구태여 이 두 그림이 기억에 남아 있을까? 나는 그때 향수병에 걸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때였으므로, 잠을 자고 있는 그들의 건강한 모습이 끔찍이 부러웠던 까닭인가보다. 잠은 근심을 잊게 하고 자는 동안만이라도 슬픔을 잊게 한다. 잠이 없었던들 우리는 모두 정신병자가 되었을 것이다. 전문 의사의 말을 들으면 정신병에 가장 효과가 있는 요법은 잠을 재우는 것이라도 한다. 너의 슬픔 그 무엇이든지 잠 속에 스러질 거다. 그리고 잠은 서대문형무소에도 온양호텔에도 다 같이 찾아오는 것이다.

 

시계추를 멈춰놓고 잠이 들어보려고 애쓰는 사람과 자명종 시계를 서랍 속에 집어던지고 다시 잠이 들어버리는 사람에게는 행복에 큰 차이가 있다. 커피는 물론 홍차, 코카콜라까지도 아니 마시고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외로워지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것조차 아니 피운다. 이는 신생활운동을 위하여서가 아니요, 오직 잠을 위함이거니……. 학교가 늦었다고 일으키면 쓰러지고 또 쓰러지던 그런 잠을 다시 자볼 수는 없을까?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 잠은 괴로운 인생에게 보내온 아름다운 선물이다. 죽음이 긴 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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