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밥풀꽃 / 백송자
백범 명상길을 지나다 고개 숙인 꽃을 만났다. 말을 하려는 듯 도톰한 붉은 입술마다 두 알의 흰 밥풀을 머금고 있는 꽃이다. 나비는 더 많이 날개를 움직여 밥알을 문지른다. 꽃들이 서로 격려하며 정답게 무리 지어 있다. 낮은 산에는 부끄러워 있지 못하고 깊은 산속에만 숨어서 피었다. 꽃말이 ‘여인의 한이며 원망’이라는 며느리밥풀꽃이다. 나는 허리를 굽혀 꽃의 전설을 읽었다.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꽃잎에는 고단했던 삶의 이야기가 짙게 물들어 있다. 한 송이 며느리밥풀꽃으로 피어나야만 했던 여인들이 그 집에도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지매들의 얼굴이 꽃잎에 어른거렸다.
그 집은 우리와 먼 친척뻘이었다. 할매가 낳은 아들을 나는 아재라 불렀다. 그는 목수였다. 연장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연필을 귀에 건 채 문도 만들고, 서까래며 대들보도 다듬었다. 문갑이며 장롱도 그의 손을 거치면 격이 높은 혼수품이 되었다. 자투리 나무로 도마와 빨래방망이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 집 사립문을 열면 그의 몸에서 톱밥이 툭툭 떨어졌다. 어느 해 아재는 초가집에 방 한 칸을 더 들이며 연방 헤벌쭉거리며 웃었다. 마당에 초례청이 만들어지던 날, 동네 사람들 틈에 끼어 나도 아지매를 보았다. 아지매가 낳은 어들은 머리가 커서 동네 사람들은 대갈장군이라 불렀다. 곳간의 열쇠는 할매가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다.
할매의 목소리는 담을 넘었다. 아재가 없는 시간이다. 할매는 며느리가 밥만 축내는 밥벌레라며 구박했다.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 5월, 그녀는 대갈장군을 두고 영영 떠났다. 며느리밥풀꽃은 전설에만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한복판에도 피어 있었다고 사람들은 쑥덕거렸다. 며느리밥풀꽃 이야기는 한동안 시들 줄 모르고 우물가와 동네 사랑방에 피어났다.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 차마 끼지 못한 아재는 혼자 술만 마셨다. 신세타령을 늘어놓는 아재의 술주정이 담을 넘어 골목에 깔리곤 했다.
이런 술주정뱅이에게 시집온 여인이 또 있었다. 두 번째인 아지매도 아들 하나를 낳았다. 동생이 없던 나는 그 아이를 많이 업어 주었다. 훗날 형과는 달리 몸집이 작아 땅콩이란 별명을 얻은 아이다. 땅콩은 내 좁은 등에서 울기도 하였지만,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잠이 드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나는 그 집에서 홍두깨로 밀어 만든 국수를 먹었다. 아지매와 나는 한 상에서 우리네 인연처럼 길어진 면발을 후루룩후루룩 건져 올렸다. 가까이 보니 그녀도 엄마처럼 너부데데한 얼굴이었다. 땅콩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그녀는 없어졌다. 보릿고개를 간신히 넘긴 여름이었다. 그녀의 가출을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유복자인 아재를 여인의 몸으로 키운 할매의 분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그녀도 배를 곯았을 것이라며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동네 이야기꽃에는 단연 며느리밥풀꽃이 으뜸이었다.
내가 결혼할 무렵 그 집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들었다. 땅콩은 똘똘하여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불구하고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 김천 오일장 생선 좌판에서, 대구 서문시장의 선술집에서 아지매를 봤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때로는 우리와 두레상에서 밥을 함께 먹었던 할매와 아재, 대갈장군은 줄지어 떠났다. 공연이 끝난 연극처럼 그 집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다만 마당에는 개망초와 강아지풀과 쑥이 제 집인 양 의기양양해 하며 자랐다.
첫아이를 출산하고 친정집에 들른 날 해거름이었다. 아들이 잠투정하여 집 밖으로 나왔다. 모퉁이가 있는 고향집 골목길이다. 아들을 업고 두 손으로 아들 궁둥이를 토닥토닥하였다. 그 옛날 땅콩을 업은 나를 보았다. 옷의 무릎과 팔꿈치에 덧댄 헝겊이 반질반질하고 나는 단발머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길바닥에 닿을 듯 누비포대기는 내려가고 땅콩을 두 손으로 연신 받쳐 올리는 내가 낑낑거리고 있다. 한참 후 어릴 적 내 모습이 기득했던 눈을 뜨고 노을이 물드는 서쪽 산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들은 내 등에 얼굴을 묻고 잠이 푹 들었다. 그때 낯선 여인이 자꾸만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따가워 눈을 돌리다가 어, 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다. 아지매였다. 그녀는 대뜸 내게 땅콩의 안부를 찌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캐물었지만, 내가 말해 줄 이야기는 없었다. 그 후 나는 아지매를 보지 못했다.
백범 명상길에서 만난 며느리밥풀꽃을 가슴에 아름으로 담아왔다. 꽃은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리며 붉은 입술에 묻은 밥풀을 털어낸다. 밥알 자국이 수정처럼 빛난다. 내가 알고 있는 아지매를 비롯한 많은 여인의 삶을 꽃대로 밀어 올리며 피어난다. 꽃은 깊은 산속이 아닌 사람들 곁에 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햇살과 바람을 끌어안는다. 여인의 한을 풀고 원망하며 고개 떨군 꽃이 아니다. 보릿고개가 없는 세상에서 며느리밥풀꽃은 우리 가까이에 피어난다. 며느리밥풀꽃의 꽃말을 다시 쓴다. 화해와 사랑으로.
큰아들이 결혼한다. 30여 년 만에 식구가 느는 셈이다. 둥그스름한 며느리의 얼굴은 미간 사이가 벌어졌으며 목소리도 거칠지 않고 맑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미간을 찌푸릴 일은 없을 것 같다. 볼이 미어지도록 밥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밥을 앞에 두고 딴생각을 하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다. 앞으로 그녀와 함께 하는 밥상은 늘 따뜻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내게 봄빛으로 다가온 며느리는 새순처럼 싱그럽다. 덩달아 나도 연둣빛 수채화를 그린다.
이제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시어머니의 길을 걷는다. 첫발을 내디딘다. 설레는 마음과 함께 묵직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시어머니의 자리는 결코 윗자리가 아니다. 가족 개개인은 수직이 아니라 수평의 관계다. 이런 마음을 갖고 우리가 살다 보면 사랑과 화해의 꽃잎으로 며느리밥풀꽃은 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