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이 그립다 / 나태주


 

 

언제부턴지 하나의 꿈처럼 러시아에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 내게는 톨스토이의 나라요, 푸시킨의 나라요, 도스토옙스키의 나라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러시아의 문학작품에 열광했을까. 정확한 이유야 내가 밝힐 일이 아니지만, 여하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러시아 문학작품을 좋아하고 품을 좋아하고 또 러시아 작가를 친애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특히 푸시킨의 시가 좋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란 시. 처음으로 이 시를 본 것은 중학생 때 외갓집 마을의 이발소 벽에서였다. 조잡한 페인트 그림 안에 쓰여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잖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그냥 가슴으로 좋았던 문장이다. 나중에야 초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금고기란 동화도 푸시킨의 동화집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돼 많이 기뻤다. 이뿐이랴. 19세 때 가슴 두근거리며 읽었던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내 어찌 모른다 할 것이며, 세계적 문호 톨스토이와, 유려한 산문시의 작가 투르게네프를 또한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결단코 한번은 가리라 마음먹고 지역의 문학 동호인들을 모아 이번에 러시아 여행을 결행했다.

4 6일의 패키지여행. 그 짧은 여행으로 어찌 러시아를 충분히 알았다 할 수 있을까만, 나름대로 러시아의 문화와 문학적 토양을 접할 수 있어 많이 기뻤다. 우리가 본 도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두 도시. 명색이 문학여행이었던 만큼 그 두 도시에서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를 보았다. 정확하게는 그들의 기념관을 보았고, 도스토옙스키의 무덤을 보았다. 느낌이 많았다.

역사 속 문인들을 매우 정중히 모시고 있었고 자료 정리나 안내가 수준급이었다. 특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감이 아주 높은 것이 인상 깊었다. 방문객에게 약간은 막무가내였고 고압적인 태도까지 보였다. 러시아 사람들은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이 비교적 많지 않아 누구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며 자긍심 또한 높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참 거리가 먼 얘기다.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의 기념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두 기념관이 아파트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 벌써 아파트 구조인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여러 개의 방에 생존 당시의 유물과 함께 비화가 머물고 있어 생동감을 주었다. 더구나 푸시킨 기념관에서는 우리말이 나오는 개별 안내기가 제공돼 푸시킨 시대로 돌아가 작가의 생애와 고뇌를 함께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동행한 소설가이며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는 조동길 교수는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고골의 외투에 나오는 다리와 광장을 여러 차례 지나면서 감개무량해 했다. 역시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감회는 다르다. 저녁 시간에 본 유명한 발레 백조의 호수 역시 놀랍고 좋았다. 무용극 가운데 주인공으로 나오는 백조와 흑조 역을 1인이 2역을 했는데 까치발 들기로 무대 중앙에서부터 가장자리까지 가는 솜씨는 다만 가슴을 쓸어내려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내게 감동을 준 것은 러시아의 때 묻지 않은 건강한 자연이었다.

8시간 비행기로 날아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은 밤 9. 그런데도 바깥이 훤했다. 6시간 시차, 뒤로 간 시간. 6월과 7월이 백야라는데, 바로 그 백야 철에 우리가 간 것이다. 버스에 실려 호텔을 찾아가는 내내 창밖으로는 붉은 노을의 구름과 하늘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저녁노을인가! 그것도 백야의 밤 9시에 보는 러시아의 저녁노을. 선명한 피 빛깔이었다. 피곤하고 지친 눈이지만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어 눈을 부릅뜨고 보고 또 보았다.

그렇다. 이걸 보려고 그 먼 길을 비행기 타고 온 것이 아닌가. 우리에게도 이런 눈부신 저녁노을이 있었고 구름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나고 만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가운데는 1961년도 이희승 선생이 편집하고 민중서관이 발행한 국어대사전이 있다. 최초로 우리말을 가장 질서 있게 정리한 사전인데, 이 사전에는 공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애당초 공해란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제는 공해란 말을 시작으로 스모그, 매연, 연무란 말을 거쳐 미세먼지의 시대가 됐다. 도대체 우리는 1년 가운데 며칠을 푸른 하늘을 보면서 사는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만약에 천진하고 정직한 우리 아이들을 시켜 하늘을 그려 보라고 주문하면 그들은 회색 물감을 들고 하늘을 그리지 않을까. 더욱 가슴이 답답할 따름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러시아에는 흰 구름이 있었고 푸른 하늘도 그대로 있었다. 우리가 어려서 풀밭에 염소를 풀어놓고 팔베개로 벌러덩 누워서 바라보던 푸른 하늘의 바로 그 흰 구름이다. 먹구름도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금세 후드득 소나기를 몰고 오는 먹구름. 먹구름은 건강하고 힘이 셌다.

키가 큰 하늘에 키가 큰 흰 구름과 먹구름. 역동적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내 어두워졌다. 분명 우리의 하늘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고 우리의 구름이 씩씩하지 못한 것이다. 이걸 어쩌랴. 귀로, 비행기 안에서 며칠간 보지 못한 한국의 신문을 펼치니 거기에 달라이 라마의 책이 소개돼 있었다. ‘한국인은 풍요롭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진정 흰 구름이 그립다. 건강하고 씩씩한 먹구름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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