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조경희

골목은 아침에 나보다 늦게 깬다. 오직 멀리서 멍멍 개 짖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제일 먼저 아침에 골목에 들어서는 사람은 아마 조간을 배달하는 신문 배달원일 것이다.

골목길과 벽 하나의 사이를 둔 거처에 사는 나는 아침부터 골목에서 벌어지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나의 청각(聽覺)은 신문 배달부가 신문을 집집마다 문틈 새로 집어넣는 부스럭하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게 된다. 먼 곳에서 종소리가 들려오고 날이 새기 시작하면 골목은 차츰 시끄러워진다.

신문배달부의 다음에 나타나는 사람의 발자취는 반찬 장수들이다. 어리굴젓이니 새우젓이니 조개젓을 사라고 소리소리 지른다.

한두 마디만 소리를 외쳐도 알아들을 사람은 다 알아들으련만 소리를 질러야만 물건을 팔게 되는 것인지 소리를 지르며 지나간다.

부드러운 목소리 거센 목소리 가는 목소리 기운 빠진 목소리…. 목소리만 들어도 나는 그들의 모습을 분간할 수 있다. 그만큼 그들의 목소리는 이 골목 안에서 낯익은 목소리들이다.

대개 그들의 물건이란 값나가는 것이 못된다. 젓갈 장수 외에도 무장수니 두부장수니 엿장수니 모두 십 원 안팎에서 흥정이 되는 물건들이다. 그밖에도 칼 갈라는 사람 구공탄 찍는 사람이 소리를 외치고 지나가고 있다.

내가 이 골목 안에서 산지도 2년 가깝게 되지만 그들의 직업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두부장수는 두부 장수를 하고 있다.

일원짜리 돈의 값을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골목 안에서 뿐일 것이다. 또한 일원짜리 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이 골목 안 장수들일 것이다.

이 골목 안에 오래 살아가는 동안에 골목 안 사람들이 한식구 같이 되는 것처럼 장수들도 어느 틈에 가까워진 것이다.

외상의 미덕(美德)을 발휘하는 곳도 이런 곳일 것이다. 얼마 많지 않은 밑천이지만 외상거래가 선다.

나는 낮에는 대개 밖에 나가 있으니까 낮일은 잘 모르지만 골목길이 가장 시끄러울 때는 아마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할 무렵일 것이다.

여자들의 웃음소리를 실은 지프차가 클랙션 소리를 울리면서 지나간다. 술주정꾼들이 소리소리 고함을 지르면서 지나간다.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가 없는 날 저녁은 교교한데 가끔 '메밀묵 사려' 하는 처량한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야경꾼의 딱딱이 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골목 안의 풍경은 이 정도로 막을 내리게 되는 셈이다.

나는 이런 골목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일일이 바라다보는 목격자다. 골목 안에 나타났다 꺼지는 이런 인물들 속에서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시드니 킹슬리라는 작가의「데드 엔드」라는 연극을 본 생각을 한다. 이 작가는 일전에 상영된 「탐정 야화(探偵 夜話)」라는 영화의 원작자와 같은 사람이다.

이 작품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미국의 골목 안을 무대로 해서 그 골목 안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데드 엔드'라는 말은 막다른 골목이란 의미인데 이 작품은 막다른 골목을 무대로 해서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절박(切迫)한 심정을 그린 작품이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어느 나라에나 골목은 있는 것이고 골목이란 이름 있는 큰길과는 거의 생리를 달리 하고 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여행을 할 때는 그 나라의 뒷골목을 찾아가보라는 말을 한다. 골목 속에 파고 들어가 보아야 그 나라와 국민의 생활 실정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만 하더라도 서울을 알려면 서울의 뒷골목을 알아야 할 것이다. 종각 뒷골목과 명동 뒷골목은 그 생리를 달리하고 있다.

어느 골목을 가면 누구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듯이 골목은 이미 우리의 생활과 결부되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골목은 오랜 역사를 말하고 싶어 할는지 모른다. 숱한 역사의 인물들이 지나간 발자취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제 때 같은 캄캄한 시대에는 골목은 즐겨 비켜서 갈 수 있는 피난길이었을 것이다.

군자(君子)는 대로행(大路行)이라 한 것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길을 말함이 아니요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말했을 것이다. 군자는 대로행이라 한 이 말을 따르려는 현대의 군자들은 종종 앞의 큰길보다 뒤의 좁은 골목길을 걷기를 즐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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