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간 우정(友情) - 이태준
남자를 만나는 것보다 여자를 만나는 것이 우리 남성은 늘 더 신선하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처럼 최대, 그리고 최적의 상이물(相異物)은 없다. 우리에게 여성은 완전한 이국(異國)이다. 다른 것끼리가 늘 즐겁다. 돌멩이라도 다른 것끼리는 어느 모서리로든지 마찰이 된다. 마찰에서 열이 생기고 불이 일고 타고 하는 것은 물리학으로만 진리가 아니다.
이성끼리는 쉽사리 열이 생길 수 있다. 쉽사리 탄다. 동성끼리는 돌이던 것이 이성끼리는 곧잘 석탄이 될 수 있다. 남자끼리의 십 년 정보다 이성끼리의 일 년 정이 더 도수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석탄화 작용에서일 것이다. 타는 것은 맹목적이기 쉽다. 아무리 우정이라 할지라도 불이 일기 전까지이지 한번 한끝이 타기 시작하면 우정은 그야말로 오유(烏有)가 되고 만다.
우정이란 정(情)보다도 의리의 것이다. 부자간의 천륜보다도 더 강할 수 있는 것이 우정이다. 인류의 도덕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완고할 수 있는 것이 우정이다. 이런 굉장한 것을 부작용이 그렇게 많은 청춘 남녀끼리 건축해나가기에는 너무나 벅찰 것이 사실이다.
한 우정을 구성하기에 남자와 여자는 적당한 대수(對手)들이 아니다. 우정보다는 연정에 천연적으로 적재들이다. 주택을 위해 마련된 재목으로 사원(寺院)을 짓는 곤란일 것이다.
구태여 이성간에 우정을 맺을 필요가 없다. 절로 맺어지면 모르거니와 매력이 있다 해서 우정을 계획할 것은 아니다. 매력이 있는데 우정으로 사귀는 것은 가면이다. 한 부모를 가진 한 피의 남매간이 아닌 이상, 제삼자의 시력이 불급하는 환경에 단둘이 오래 있어 보라. 그 우정은 부부 이상엣 것에라도, 있기만 한다면 돌진하고 남을 것이다.
현대 생활은 이성간의 교제가 날로 빈번해진다. 부녀자가 동쪽에서 나타난다고 눈을 서쪽으로 돌이킬 수는 없는 시대다. 그 대신 본질적으로 우정 원료가 아닌 남녀끼리 우정을 계획할 필요는 없다. 알게 되면 요즘 문자로 명랑히 사교할 뿐, 특히 우정이라고 지목될 데까지 깊은 인연을 도모할 바 아니요 또 그다지 서로 매력을 견딜 수 없으면 가장을 할 것 없이 정정당당히 연애를 정당한 방법에 의해 행동할 것이다.
그러니까 동성간이라는, 생리적으로 다른, 피차 적응성을 가졌기 때문에 제삼자의 시력 범위 외에 진출하는 찬스는 의식적으로 피해나가야 할 것이다. 남녀 문제에 있어 열 학식이나, 열 인격이 늘 한 찬스보다 약한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더욱 이성간의 우정, 이것은 흥분한 사상 청년(思想靑年) 이상으로 끝까지 보호 관찰을 필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